-태풍 속으로 사라져 간 옛 동료를 생각하며-
나는 승선 생활을 하면서, 항구에 매어 있을 때(입항 중일 때)는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 항상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생활했지만, 일단 항구에 기항한 목적을 모두 충족시킨 후, 마무리도 깨끗이 짓고 출항을 하게 되면, 다음 목적항에 도착할 때까지의 항해 기간은 오히려 홀가분하니 편한 마음으로 생활을 해왔다.
언젠가 그런 식으로 생활한다는 내 이야기를, 가족과 친척 여러분들이 모인 집안의 모임에서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계셨던 친척 지인 모든 분들은 전부가 하나 같이,
-자네는 천생 뱃님(뱃놈)이구만! 하는 말로 고개를 끄덕이는 긍정의 반응을 보이셨다.
그렇다. 지금까지 내 승선 생활은 육상에 닿으면 항해 중에 밀어 두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해야 하고, 이런 일들을 매듭짓기 위해서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는 번거로움을 가지며 바쁘게 지내왔던 것이다.
사람들과 토닥거리며 함께 사는 게 세상살이인데, 사람 만나는 일을 번거로움으로 치부해보는 태도 자체가 조금은 비정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그렇긴 해도 진짜로 항해 중이란 환경은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이 없는 제일 편안하고 신경도 덜 쓰이는 분위기라는 걸 몸으로 체득하며 살아온 경험이, 그런 체질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주었던 모양이다.
어쨌든지 사관 시절을 그리 보내고 선장이란 직책에 들어서면서 그런 마음 가짐의 환경은, 배를 옮겨 승선할 때마다 교대하려는 배를 찾아 항구로 가는 버스나 기차 등의 탈것 안에서 제일 먼저 내 머리 속에 떠 올리는 생각은, 그 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승선 중인 선원들 사정을 가장 알고 싶은 항목으로 꼽게 되었으니, 사람들과 부대낌을 무조건 싫어하는 비정상적인 생활 태도라는 매도만큼은 당연히 면해 줘야 될 듯싶다.
선상에서 생활을, 선원 동료 간의 선내 분위기가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는 인화에 두면서부터, 새롭게 승선하려는 그 배의 인화 등급은 몇 점 정도나 될까? 만약 자그마한 우려라도 곁들여진 상태라면, 회사 인사부서에서 승선 전 참고사항으로 브리핑 해준 사관과 직장 등 중요 멤버의 이름과 경력을 되돌려 곰곰이 살피는 일이 수월찮은 일로 다가서곤 하였던 것이다.
무사히 교대 선에 도착, 마지막으로 인계인수서에 서명함으로 교대를 마친 후엔, 출항 전까지 서둘러 가며 선원들 간의 인화라는 큰 분위기를 파악하는 일로 며칠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항구에 머무는 시간이 그렇게 흘러 출항할 무렵이 되면, 어느새 나의 주의력은 일단은 새롭게 항해하는 도중의 기상상황을 향해 다시 바빠지는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선내의 이일 저 일이 완벽히 끝났다 해도, 대양을 건너는 일을 완수해야 하는 항해의 완성이 달성되지 않는다면 모두가 부질없는 일로 끝나는 게 아닌가? 이런 항해의 완성을 아무 탈 없이 달성하기 위해 제일 먼저 알아야 할, 바다 위에서의 가장 큰 변수가 기상 상황인 것이다. 세상 살면서 기상-날씨-을 제일 먼저 떠 올리며 살아간다는 이야기에, 뭐가 그럴까? 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여럿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내일 소풍 가려는데 비나 오지 않을까? 걱정해보는 어린아이들의 소박한 걱정과 같은 육지에서의 일이라면, 차라리 애교로 보고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잔잔한 날씨라 해도 내 발 디뎌 살아가는 발판이 언제나 흔들리는 험한 곳-선상-에서의 이야기이니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뜻에 무관한, 아니 반한, 타의에 이끌려 삶의 터전이 온통 뒤틀린 흔들림에 빠져들 때 느껴야 하는 공포와 피곤함은 경험 안 해 본 사람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늘이 노란 기분이다!라는 건, 힘듦을 나타내는 으뜸 표현이지만, 그보다도 더 힘든 깜깜함 속에서, 머릿속은 새 하얗게 바래 놓고, 어디 한 곳 기댈 곳조차 찾기 힘든 휘저어진 혼돈 속에서, 탈출구마저 막힌 미로의 답답함이 겹쳐진, 이런 모든 상황은 기상이 악화되어 배를 사정없이 흔들어주는 와중에 생겨나는 일이다. 그야말로 악천후에 걸려들면, 멀미는 아예 없어진 지독한 공포만이 가슴을 짓누르는 형태로 변하는 것이다.
이러니 미리 피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려면, 기상 상태에 관심 갖는 게 결코 이상할 것 없는 항해 중인 선내 생활의 전부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 항해 중 당연히 느낄 수 있는 고립된 사회 안의 외로움이나 그리움이란 인간이 가진 감성적인 열정은 잠깐 도외시하면서라도 안전한 항해의 완성에 노력 경주를 하다 보면, 다른 일은 생각할 여지도 많지 않고, 생각할 겨를도 그리 없으니, 역설적으로 항해가 더없이 편안하다는 말 또한 결코 틀린 것은 아닌 거다.
그러니 바다 생활에서 중요한 건? 어떤 걸 꼽아야 할까? 손꼽아 볼 때 인위적인 것에서는 인화를 맨 앞에 두겠지만, 자연적인 것에선 기상상황을 제일로 치면서 생활해야 할 거라고 내 경험은 우기는 것이다.
이번 귀항하는 항해 길에서도 때 이른 태풍을 만날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오는데, 해상 기상에서 가장 악명 높은 것이 바로 태풍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열대성 저기압이므로 그에 대비한 피항 방법도 염두에 두며 항해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금항의 그 바닷길 위에는 몇 년 전 우리의 동료였던 선원이 태풍을 만나 타고 있던 배에 감싸 안긴 채, 바닷속으로 사라져 간 곳이 있다. 무궁화 호와 대양 하니 호라는 배가 있었다. 그 두 배는 햇수를 달리 한 어느 여름날에 그 바닷속으로 사라지듯 파묻혀 버린 비운을 만났기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의 국화꽃 던짐을 선물로 받게 되었지만, 그것만으로 모두에게 잊힌 보상을 받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중에서도 대양 하니 호는 나와 교대한 후배 선장이 그렇게 바꿔 타고 호주에 기항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태풍을 만나 배와 함께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영원으로 사라져 버린 슬픈 인연을 남긴 배다. 당시 승선 중이던 모든 승조원은 한 사람도 구함을 받지 못한 채 우리와의 인연을 마감하였기에, 이제 그들의 흔적은 부산광역시 영도구 태종대 부근에 있는 <순직선원위령탑>에 가서야 만날 수 있는 역사 속 기록으로 남겨져 있을 뿐이다.
지금도 문득 그들 생각이 되살아나면
떠오르는 당시 나이로 웃는 얼굴일세
명복을 안부 삼아 빌어주는 이내 심사
짠한 비감 옅은 눈물 되어 피어 오르고
닦아줄 손 뒷짐 지워 가만히 응시하니
어느새 흘러 넘치는 회한의 그리움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