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르담 경찰서 하룻밤 유치기
영국의 SWAN HUNTER 조선소 에서 태어난 “그로발 H호”는 태어난 지 10년 만인 1981년 말에 우리나라로 시집오게 되어 인연을 맺게 된 배이지만, 한국인들의 심성으로는 용납하기 어려운 백조 사냥꾼이란 이름의 조선소에서 태어났기 때문인지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첫 항차부터 만들어 내어 자신도 다치고 승조원들도 괴롭게 하는 심술을 부렸다.
우리나라로 국적을 바꾼 후 첫 화물을 선적한 항구인 캐나다 로버츠뱅크를 떠난 재취항 첫 항차에 그만 기관실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한 사람을 희생 시켰고 H호 자신은 기관실 포함 전 거주 구역이 소실되어 북태평양의 겨울 바다를 OCEAN TUG에 이끌리어 힘들게 포항으로 건너 왔던 것이다.
선체에 쓰여 있는 선명을 가려가며 숨다시피 도착한 포항에서 실려 있던 석탄을 모두 내려준 후 또 다시 예인 되어 일본의 요코하마 I.H.I. 조선소에 입거하게 되었다.
석 달이 넘는 기간에 걸쳐 기관실과 거주구역에 대대적인 수리를 시행하고 한 번 더 새로운 이름인 H호로 개명 된 후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동경만을 1982년 4월 28일에 빠져 나올 때 위치 보고를 하는 H호 더러 “TOKYO MATIS(동경만 선박 통제소)”에서는 그런 이름의 배가 입항한 적이 없었는데 언제 입항하여 들어갔었느냐고 물어 왔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재인수의 첫 항차는 공선으로 인도양을 건넜고 희망봉의 나라 남아공화국의 RICHARDS BAY에 들려서 석탄을 만선한 후 유럽의 두 항구인 네덜란드의 로텔담과 독일의 브룬스뷰텔 두 곳에 짐을 부리기 위해 대서양의 동쪽 언저리(아프리카 서쪽 해상)를 따라 북상한 것이다
도버 해협을 도선사의 보조 없이 자력으로 통과하였고 6월 25일 드디어 도착한 첫 기항지 로텔담에서 입항수속을 끝내 갈 무렵이었다. 입항 사흘 전부터 도버 해협을 자력 조선한 피로가 아직 남아 있긴 했지만 본선의 동정에 민감해 있을 회사로 무사 안착과 그간의 상황을 전화 보고하려고 대리점으로 나가려는데 푸른색 기사복 차림을 한 대여섯 사람들이 승선하더니 그중 대표자가 나를 찾아와서 서류를 내밀며 읽어본 후 서명을 해 달란다.
자신들은 네덜란드 세관 직원이며 본선을 수색하러 왔다는 이른바 서치반-밀수를 방지하기 위해 수색 조사하는 팀-이었다.
동석 중이던 대리점원(벨기에 인으로 이곳 네델란드에서 대리점 업을 하고 있었음)도 할 수 없다는 태도였기에 그들이 내민 서류에 서명하여 협조 한다는 태도를 표명하면서 공무로 대리점 방문을 하려는데 상륙 할 수 있는가를 물으니 자신들의 일 과는 상관없이 상륙해도 된단다. 일항사를 불러 업무 지시를 한 후 기관장과 함께 대리점원의 차를 타고 배를 떠났다.
시내 가운데로 들어서니 고색창연한 빌딩들을 등지고 아름드리 가로수가 무성한 초록빛으로 도로 가를 길게 이어져 있어 보도는 마치 초록 천장을 가진 터널 같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가로수가 저 정도의 크기로 자라나려면 최소 이백 년 이상은 걸렸을 터인데…”
부러움과 시새움이 복합된 감탄의 한숨이 절로 나오는 풍경이었다.
대리점 사무실에 들렸다. 장거리 전화로 본사에 무사 안착과 궁금해 하는 사항에 대해 보고 및 연락 사항을 통화하여서 한시름을 놓은 후, 가벼운 마음으로 사무실을 나왔다. 처음 찾아온 곳이라 아는 곳도 없고 찾아 갈 곳도 마땅치 않기에 대리점 부근의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걸어 보다가 배에 가서 저녁식사를 한 후 다시 상륙해 보자며 귀선 길로 들어섰다.
현문 사다리를 조심스레 올라 갑판 위로 발을 들어 놓는데 기다리고 있던 당직자가 불안한 표정으로 쫓아와서 황급히 말을 건넨다. 본선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마약이 발견되어 나를 만나려는 경찰 관리들이 내방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란 말인가? 어리벙벙하나 조급한 마음으로 서둘러 방으로 가니 사무실에서 서성거리던 두 명의 형사가 나를 따라 방에 들어선 후 들고 있던 봉투에서 누렇게 변색이 된 신문지-알파벳으로 된 신문이나 영어는 아니었음-로 싸여진 꾸러미 뭉치를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순간 아프리콘(남아공화국에서 백인들이 사용하는, 영어와 네델란드어를 섞어 만들었다는 언어)으로 된 신문일까? 하는 생각이 떠오름은 우리가 거쳐 온 곳이라곤 그 곳 밖에 없어서였다. 그런 생각을 확인해 보려고 신문지에 손을 대려는 순간 형사는 황급히 나를 제지하며 지문이 찍히니까 만지면 안 된단다. 머쓱했지만 다행이다 싶어 안도의 숨을 살포시 쏟았다.
그가 장갑 낀 손으로 신문을 헤쳐서 내용물의 일부를 꺼내더니 미리 준비하고 있던 투명한 프라스틱으로 된 주사약 앰플 병만큼 커 보이는 작은 튜브에 집어넣고 뚜껑을 닫으며 보여준다. 안에 다른 작은 튜브가 들어있는 이중 구조였다. 퇴색한 갈색 황토 흙 부스러기 같은 모양새의 작은 덩어리들이 액체 중에서 흔들리며 흩어졌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때 말랑말랑한 바깥 튜브에 올려진 손가락에 힘을 가하니 안쪽 튜브가 깨어지며 양쪽의 액체가 섞이기 시작한다. 갑자기 황토색 작은 부스러기들로부터 아주 맑고 아름다운 분홍색의 색실이 엮어 나오듯 가닥가닥 풀려 나오기 시작한다.
잠시 후 튜브 속은 온통 농익은 자두 때깔인 심홍색의 액체로 가득 차 버렸다. 마약이란다.
마약을 판별 해내는 시약반응의 색깔이 그토록 처절한 아름다움이라 놀라 있는데 자그마치 1 kg 이 넘는 양의 마약 덩어리라고 이야기를 해 와서 또 다시 나를 경악하게 만든다.
배 이름을 두 번씩 이나 바꿔가며 우리 선원들이 승선하고 나온 것이 이제 겨우 두 달밖에 안되었고 기항했던 곳이라곤 대대적인 수리를 시행한 일본의 요꼬하마와 석탄을 싣고 떠난 남아공화국의 리차드베이 두 곳뿐인데 그런 우리 배에 <마약밀수>라는 흉악한 범죄 행위를 한 선원이 있단 말인가? 분노한 마음으로 아무리 살펴도 그런 어마어마한 범죄 행위를 할 것 같은 선원은 도통 떠오르질 않는다.
두 사람의 경찰 중 검사광경을 보여주던 이가 조용히 나를 방 한쪽 끝으로 데리고 가더니 그런 일(마약밀수)을 함직한 선원이 있으면 이야기 해보라지만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나는 그저 그런 일 할 사람은 절대로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조사를 위해 선장이 경찰서까지 동행 해야겠다 기에 공식적인 조사만 그 곳에서 마치면 그 즉시 배로 돌려보내 주겠거니 쉽게 생각하고 그 들이 타고 온 차에 함께 올라 경찰서를 향해 떠나기로 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별다른 분위기를 느끼지 못해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대리점을 통해 회사와도 연락할 수 있는 조치는 일항사와 기관장에게 부탁하고 떠난 것이다.
한 40분 좋게 달린 후 주차장에 차를 넣고 차문을 내리면서부터 그들의 나를 대하는 태도가 갑자기 달라진 것이 느껴진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딱딱한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이 나란히 선 가운데로 나를 위치시킨 샌드위치 마크를 하며 그들이 의도 하는 방향으로 몰이 하듯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잘 포장(鋪裝) 되어있는 네모진 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매끈하니 닳아 있는 보도(步道)를 따라 걷도록 입을 꾹 다문 채 어깨 짓으로 밀어내는 그 두 사람의 형사들 가운데 서있던 나는 타의에 꼼짝 못하여 밀리듯 앞쪽에 보이는 건물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보도블록의 끝 쪽에 외벽이 돌로 싸여 서있는 오래되어 보이는 5층 건물이 경찰서였다. 문을 들어서니 넓은 로비로 트여있는 중앙 카운터에 유니폼을 입은 경찰관이 출입자들을 체크 하고 있었다.
자기들 말(네델란드)로 무어라고 이야기 한 후 그 곳을 통과하여 승강기에 오르게 한 후 4층에서 내릴 때 까지도 나는 계속 그들의 가운데에 끼워있는 형편이었다. 밖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어떤 방으로 안내한 후 잠시 기다리라 하더니 한참 만에 나타나서는 유치장에 구류될 것이므로 소지품을 꺼내고 혁대를 빼어 내라고 한다. 주머니 속의 물건과 혁대를 받아 봉투에 넣어 봉 한 후에 그 위에 서명을 받아 챙긴 후 앞장을 서더니 따라 오라는데 이번에는 한 층을 걸어서 올라간다. 전자식 여닫이문을 마이크와 스피커로 확인을 받은 후 통과하니 그곳 카운터에 있던 정복 경관에게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나를 유치장에 인계했다며 그들은 내려가 버렸다.
내가 왜 이곳에 와 있어야 한단 말인가? 순간 유치장에 갇혀야 하는 어떤 조그마한 죄를 정말로 짓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며 주눅 들은 마음을 더욱 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이들이 알기를 원하는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걱정할 것 없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으면서 스스로 침착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베개와 담요 그리고 시트커버를 지급 받게 하던 인계 받은 경찰관이 제일 첫 번째 방으로 안내하여 앞서 들어가라며 손짓을 하기에 들어섰다. 순간 문이 닫히며 철컥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밖에서 문이 잠겼다.
평생 처음 겪는 막다른 공간에 갇혀지는 일에 머뭇거리며 지급 받은 물품을 그대로 손에 든 채 잠시 망연자실하니 서있었다. 잠시 후 마음을 다잡으며 방안을 살피니 바로 왼쪽 벽에 식탁으로 쓰임직한 작은 직사각형 판자가 덕지덕지 때가 묻었는지 검은색 되어 붙박이로 달린 것이 보였다. 그 맞은편 바닥에는 뚜껑도 없는 새까만 변기만이 앙상하게 엿 보이는 변소가 출입문짝도 없는 문턱 안으로 위치해 있고, 그 변소 문 앞을 두세 발자국 지나 안으로 더 들어간 곳에 바로 침대가 놓여 있다. 이윽고 침대 위에 들고 온 물건들을 올려놓았다.
소지품을 영치할 때 마지막으로 보아 둔 시간이 오후 5시였는데 그로부터 한 시간 가량 지났을 것 같다. 실내는 아직 빛이 들어오는 곳이 있어 어둡지는 않았다. 천장 위로 채광을 위한 두터운 유리가 드문드문 박힌 스카이라이트가 있어 희미한 빛이 새어 들고 있었던 것이다.
출입문의 건너편인 외벽엔 창문이 만들어져 있던 것을 막았으나 공기 소통이 되도록 처리해 놓았는지 그리로 도시의 작은 소음이 치솟아 와서 전달되고 있었다. 모든 벽은 하얗게 칠해 있었지만 오랜 시간 그대로 방치된 듯 때로 바라진 상태였고 그나마도 성한 곳은 뾰족한 물건으로 긁어낸 낙서로 가득 차 있었다.
무슨 말을 쓴 것일까? 다가서서 읽어 보려 했으나 영어, 불어, 독어 등 그래도 내가 조금은 알만한 알파벳이 섞여있으나 이해 할 수 있는 단어라고는 한자도 없는 그야말로 까막눈 낙서판이었다. 채광창을 통해 스며들던 빛이 점점 엷어지며 어둠이 찾아오는데 저 아래 한길로부터 들려오던 자동차의 아련한 경적음 소리에 섞인 비둘기들의 구구 거리며 날갯짓하는 소리가 지금쯤은 배로 돌아가 쉴 시간이라고 나의 귀소 본능을 자극하며 울적한 마음을 만들어 준다.
비둘기 집이 옥상 어딘가에 있는 모양으로 제법 어두워 질 때까지 계속 처량한 소리를 내며 부산을 떨어 주어 유치장의 분위기를 더욱 우울한 침잠 속으로 잠기게 하고 있었다.
뱃속에서 꼬르륵 하는 신음 소리가 울려 나온다. 그러고 보니 아침 식사 후 변변한 끼니를 갖지 못했다는 게 상기되긴 했지만, 배고픔은 결코 느껴지지 않았다. 완연한 어둠이 찾아 왔고 비둘기 소리도 잦아 들 무렵 갑자기 불이 밝혀진다. 천정에 바짝 올라 붙어있던 30 와트짜리 알전구에 불이 들어 온 것이다. 이렇게 유치장에 들게 될 것으론 상상도 하지 못하고 떠나온 배의 사정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한다. 내일 오후 출항 예정인데 그전에 배로 돌아 갈수 있을까? 배에서는 어떻게 일들을 처리하고 있을까? 생각은 다시 그들 세관 감시팀이 발견 했다는 물건의 진짜 주인이 누구 일까?로 달려간다. 얼핏 봤던 그 물건을 싸고 있던 신문지가 꽤 오래된 신문지 같던데 그렇다면 우리들이 인수하기 전에 승선하고 있던 선원들이 숨겨 두었던 게 아닐까?
무어라고 들리는 방송소리에 이어 이윽고 소등 시간이 되었는지 전깃불이 깜빡하니 나가버린다. 어둠 속에서 꼬리를 무는 상념에 잠겨 있는데 밖에서 잠을 쇠를 따는 소리가 철컥 나더니 문이 열리며 배에서 나를 데려온 형사가 나타나서 나오라고 한다. 유치장이 아닌 사무실로 데려가는데 그래도 그가 그 안에서는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본 인연이라고 반가운 마음이 들어서기에 피식 실소를 한다. 그 동안 잘 생각해 보았느냐 물으면서 마약을 발견한 곳이 기관실이니 기관부 선원 중 의심이 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열거해서 말해 보란다. 본선은 인수 첫 항차이며 일본에서 대대적인 수리를 하였고 리챠드베이에서 인수 후 처음 화물을 실은 후 이 곳이 최초로 입항한 항구인데 그런 일 할 시간도 없었거니와 마약 우범 지역에 기항한 것도 아니니 그런 일 할 선원들은 전연 생각해낼 수 없다.
속 답답한 심정을 모두 말 할 수가 없으니 통역 할 수 있는 사람을 데려와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니 자신도 영어가 외국어 이긴 마찬 가지라면서 아무런 결말이 나지 않았으니 유치장에서 그냥 자고 아침에 다시 조사를 해야겠단다. 다시 감방으로 돌아와 어느 정도 흥분상태도 갈아 앉고 나니 오히려 사필귀정을 믿는 마음이 굳어지며 새롭게 여유로운 마음조차 생긴다. 만약을 위해서 잠이라도 잘 자 둬야 한다는 생각이 났지만 옷을 벗고 싶지도 않고 담요 역시 덮고 싶지가 않아 옷 입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출입문 가운데 있는 감시 렌즈 구멍을 빠져 나온 한 가닥 복도 불빛만이 어둠 속에 드리워져 수런대던 소란함을 취침시간의 조용함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눈이 떠졌다. 담요도 덮지 않고 고스란히 누워 잠들었던 모습을 유치장의 어둠 속에서 확인할 때 희끄무레한 빛이 천정으로부터 스며 들어오고 다시 활기 찬 새벽녘 도시의 소음도 들려오기 시작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덮지도 않았던 담요를 개며 침구를 대충 정리 하는데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세면하러 나오라고 독촉을 한다. 토끼장 같은 감방을 양 옆으로 둔 복도 가운데를 주욱 따라 걸으며 좌우를 살피니 양쪽 감방 문들은 아직 잠긴 채지만 기상한 유치인들의 부산한 인기척들이 철창 너머로 느껴진다. 나 혼자만을 특별하게 세면장으로 먼저 보내주는 느낌이 들었다.
복도가 끝나는 곳에는 수도꼭지가 삼면 벽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달려있는 세면장이 있었다. 그곳의 외부 벽으론 정식의 창이 달려있어 채광과 통풍을 할 수 있도록 되어있지만 창 바깥쪽으론 굵은 쇠창살로 막아 추락 사고를 방지하고 있었다. 그 창을 통해 아래 쪽 한 길 위를 오가고 있는 차들의 모습이 어슴푸레 한 새벽의 여명 속에 보이는데 몇 시간의 유치 감금된 상황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울컥하며 바깥 세상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해지면서 피식하니 멋쩍은 실소가 새어나온다.
까칠한 입 속에다 수돗물을 몇 모금 머금고 입가심을 해본 후 낯을 씻고 돌아오는데 좀 전까지 닫혀있던 감방 문들이 열려지며 이번에는 그들이 복도를 혼자 걸어 지나치고 있는 나에게 시선을 보내며 몰려나오기 시작한다. 문득 주위 분위기가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슬그머니 머리를 돌려 둘러본다. 어딘가 모자라는 듯한 어기적거리는 몸짓하며 영판 없이 어느 영화 속 한 장면을 내 앞에 연출 시킨 것 같은 사시의 눈 모습 까지 닮아 있는 거한이 감방을 나서는 사람들에게 무어라 소리치며 정렬시키는 동작을 하다가 지나가는 나를 보고 히죽이 윙크 해가며 웃어 준다. 순간 으스스한 전율이 목덜미를 타고 들어서기에 얼른 내 방으로 들어섰다.
시커먼 보리 식빵 두 쪽과 역시 새까만 불랙 커피 한잔이, 그래도 짙은 커피 향을 뿜어내며 울퉁불퉁한 흠이 길게 파인 탁자 위에 아침식사로 달랑 놓인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엊저녁 잠들기 전 까지 꾸르륵 거렸던 뱃속의 소리는 이미 멈춰 있었지만 식욕마저 그 소리 따라 함께 가버렸는지 전혀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실 어제 낮부터 죽 굶어왔지만 시각적으로도 그 시커먼 빵을 들고 싶은 마음은 동하지 않았다. 잠시 후 누군가 나타나 그대로 남아있는 식탁을 보며 식사를 안 하겠다는 나를 의아해 하면서도 얼른 치워 들고 나가 버린다.
오늘 일은 어떻게 진행이 될까? 배에서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일까? 초조한 마음을 추수리려고 주위의 사물을 살펴보려는데 이젠 낯이 익어버린 그 형사가 나타났다. 담요 등의 지급품을 들고 따라 나오라더니 엊저녁 지급 받았던 장소로 데리고 가서 들고 나온 베개 등을 모두 반납 시키란다. ‘그러면 그렇지 이제 이 곳을 나가게 되는구나! 하는 안도의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 그런 모습을 보이면 당장 취소시킬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에 표정을 담담한 척 꾸미며 태연한 모습으로 그를 따라 나서 반납소 앞에 서니 그제야 배로 돌아가게 결정이 되었다고 말을 해준다. 어제의 역순으로 4층으로 내려가 돌려받은 소지품 중 손목시계를 꺼내서 시간을 확인하니 7시 50분이다. 순간 틀림없이 배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어이없게도 허기가 솟구치며 속이 허전한 공복감이 맹렬히 찾아왔다. 나를 배로 돌려보내기 위한 준비에 바빠 있는 그 형사에게 커피 한잔 할 수 있겠냐니까 친절하게 자판기로 다가서더니 한잔 뽑아다 준다. 내가 지불 하려는 돈도 받지 않으면서....
경찰서를 빠져 나와 배로 향하는 차에 오르고 나니 더욱 마음의 여유가 생겨 차창 밖의 풍경을 감상도 하고 물어도 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배 앞에 도착했다. 모두들 오후 출항준비에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현문 사다리를 뛰다시피 올라서는데 현문에 모여 반갑게 맞이하던 선원들 중 조리장이 미리 준비하고 있던 두부를 불쑥 내밀며 소리친다.
“선장님 두부 드셔 야지요?”
이런 경우면 먹어야 되는 우리네 풍속이긴 하지만, 잠깐 흠칫하는 마음이 들어서서 얼른 받아들지를 못한다. 그래도 받아서 한 움큼 베어 무는데,
“선장님 그 두부가 지금 배에 남아있는 마지막 두부였습니다.”
라고 조리장이 말했다.
-후기-
이번 일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회사는 로텔담 현지의 선주 대리점을 추가로 지정하여 제반 사항에 신속 대처토록 하였고 최악의 경우 사건 조사를 위해 72 시간 까지 길어 질 수 있는 선장의 유치 처리로 인해 출항 지연도 있을 수 있으므로 선장면허 소지자의 출장을 즉시 시행 하여 본선의 출항에 지장이 없도록 대비도 하였었다. 그 마약을 싸고 있던 신문지가 1년도 넘는 지나간 날짜의 네델란드 신문이란 점이 밝혀졌다. 따라서 승선한지 2-3 개월밖에 지나지 않는 본선 선원들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물건이며 매선으로 우리들과 교대한 먼저 타고 있던 홍콩선원들의 물건이라는 판단이 되었기에 하룻밤만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지고 귀선 할 수 있었다. 하역작업도 그날 오후 예정시간 까지 차질 없이 끝나서 차항인 독일의 ’브룬스뷰텔‘ 항으로 가려던 운항 예정대로 무사히 떠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수리 완료 후 요코하마를 82. 4. 28 출항하여 남아공화국 리차드베이에서 석탄을 싣고 네덜란드의 로텔담에 동년 6월 25일 입항하며 겪었던 실제 상황이었다. ‘그로발 H’호 에는 1982년 4월 6일 일본 요코하마항 IHI 조선소에서 재취항 첫 선장으로 승선하여 1983년 7월 4일 삼천포에서 하선할 때 까지 승선 근무하였다.
(웹진바다에서(해양사회인문연구회) 제 33호 2016.04.30. 17:33 에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