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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 포기

아버지로서 어느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날.

by 전희태
무지개16.JPG 배를 탄다는 일이 무지개를 쫓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해양대학 기관학과 3학년으로 우리 배에 실습 차 승선한 실습기관사가 임의로 하선하여 귀가하겠다는 말을 했다며 기관장이 보고해 온다. 우선은 왜 그런 행동을 하려는 지를 알아보려고 방으로 부르고 기다리는 동안 한 젊은이의 생애가 걸린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무거운 마음부터 들어선다.


방으로 들어서는 실기사를 찬찬히 살펴본다. 그리고 왜 임의로 하선하려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 선박 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아 배 타는 것을 포기하고 육지로 올라가 인터넷을 하련 다는 좀은 얼토당토아니한 이유를 대고 있다. 깊이 고민하고 생각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 가벼운 태도로 자신의 일생을 좌우할 일에 임하고 있는 모습에 실망부터 들어선다.


안 그래도 요사이 발령을 받았던 사람이 부임을 거부하는가 하면 잘 있던 사람도 느닷없이 내리겠다고 떼를 쓰는 기관부 사관의 잦은 교대 사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인데, 학생 주제의 실기사가 혹시 그런 풍조에 편승해서 멋 모르고 저지르려는 것은 아닐까? 의심도 들게 하는 가벼운 태도이다.


해양대학에 진학한 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고 그냥 시험을 보았는데 합격이 되었고 졸업 후 3년만 배를 타면 군에도 안 가는 생활이라는 말이 솔깃하여 그냥 다니기로 하였고 어언 3학년이 된 것이란다.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현역 근무도 마친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듣기도 보기도 싫은 말이요 태도이다.


목표도 제대로 세우지 않은 채 말만 앞세운 진학으로 세상을 우습게 보는 그 태도에 고까운 맘이 드는 걸 자제하면서 그래 학교를 그만 두면 무엇을 하려고? 하고 물었을 때, 그냥 돌아오는 대답이 인터넷을 하겠단다.

너무나 자신의 앞날을 쉽게 생각하고 좀 괴로운 일만 만나면 피해가려는 전반적인 요사이의 젊은이를 그대로 빼어다 놓고 있는 실기사를 보며, 그나마 남아 있던 만류의 말을 해주려던 마음일랑 싸악 걷어버리고, 덕담 대신 따끔한 발언을 해주기로 마음먹게 만든다.


-자네가 지금 내린다는 걸 막으려고 내 방으로 오라고 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아닐 수도 있겠네.

-단지 나와의 사이에 그나마의 작은 인연이 있어 같은 배를 타게 됐는데 그 인연을 귀중히 여겨 말하는 것이다.

-지금껏 배를 타는 생활을 해오면서 자네와 같이 중도에 배를 떠난 사람을 종종 보았지만 나중에라도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자네도 이번에 내리면 지금보다 몇 배나 더 노력을 해야 그런 이야기를 안 듣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새 그 친구 얼굴에는 얼마든지 자신이 있다는 표정으로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있다. 다시 물음을 던진다.

-학교는 어찌하려고?

-휴학계를 낸 후 편입 시험을 보아서 원하는 학과에 편입학을 하려고 합니다.

-이 배가 싫다고 떠나는 결정을 쉽게 내렸는데, 학교에 휴학 계를 내고 시작한다는 뜻은 그럼 편입학이 실패할 경우 다시 학교로 돌아가겠다는 이야기야?

부정을 안 하는 것이 그럴 모양이다.


-자퇴 원서를 제출하고 뒷정리를 깨끗이 해놓은 후 시작하는 배수의 진을 친 비장한 각오로 공부를 해도 성공 여부는 장담할 수없다고 나는 여기는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기가 힘들어 싫다면서 떠난 사람이라면 다른 곳에 가서도 또 싫다면 꼭 같은 일을 되풀이할 수도 있는 거야,

-인생은 유행가처럼 쉽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라네, 그러니 함부로 허비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사실 배를 떠났던 사람이 육상에서 멋지게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지금껏 들어 보질 못했다네.

-거의가 실패한 모습이나 이야기가 제삼자를 통해 흘러 들어오곤 했었지.

이미 자신의 결정에 빠져서 우이독경식인 그의 태도에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덧붙여 주었다.


-자네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며 잘해 줄 것으로 믿어줄 수밖에 없겠군.

그런 말을 하고 더 이상의 말은 접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이 철없는 아이가 물가로 가는 것을 말리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조바심만 치고 있는 무능한 어른으로 나를 만들어 주고 있었던 실기사는 우리 집 막내와 동갑내기인 아이였다.


그렇게 배 생활을 그만둔다는 스스로의 결정으로 입항 즉시 하선하겠다는 마음을 번복하지 않고 있지만, 얼마 못 가서 오늘의 그런 결정과 행동을 후회할 것 같다는 내 나름의 짐작 또한 짙게 남겨 주면서, 녀석은 내 방을 나섰고 다음 입항하면서 배에서도 스스로 떠났던 것이다.



실기사는 그렇게 하선하였지만, 우리 배가 한 항차 원양 항해 후, 또다시 돌아왔을 때 그 학생(실기사)의 아버지라는 사람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배로 걸려와 나를 찾았다.


자기 자식의 경솔함을 용서하여 다시 본선에서 승선 실습을 마저 마쳐서 학업을 끝내게 해 줄 수 없겠느냐는 간곡한 청을 하기 위한 전화였다. 아들을 생각해서 무조건 빌며 선처해주기를 바라는 애틋한 부정을 생각하면, 그냥 받아 주고도 싶었지만 녀석의 마련 없는 태도와 부족해 보이는 인내심을 생각하면 앞으로 선원이 되었을 때 많은 문제점을 동료들 안에서 만들어 낼 것이 분명해 보인다고 판단이 되니 정중히 본선의 재 승선만큼은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 청을 넣어 다른 배에라도 승선하는 방법을 찾아보라는 충고를 덧붙여 드렸지만, 그분이 나한테 전화를 하게 된 자체가, 이미 회사가 그분 아들의 승선 여부를 내 허락에 핑계된 때문일 터이니, 다시 회사에 청해 보라는 내 말은 회사로 핑퐁 쳐 돌려보내는 공염불 같은 인사말이었으리라.

같은 아버지로서 마냥 죄송할 뿐이었다.


자식을 키운다는 게 이렇게도 힘든 일인가?

전화를 끊고도 복잡다단한 생각 속에 엉켜 들어서 그날은 한나절 동안을 그렇게 아무 일도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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