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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렇게 남겨두고 떠났구나!

화물 찌꺼기 청소작업

by 전희태
D205(4976)1.jpg 양륙 작업이 끝난 후, 갑판위에 남겨진 석탄을 치우려고 청소 작업 준비를 한 상태.

(갑판에 용접하여 부착해 놓은 노란 색칠이 되어 있는 구멍이 있는 작은 구조물이 페드 아이.)


지난 며칠 동안, 나를 만나려고 광양에 입항한 우리 배를 찾아온 김에, 주부의 할 일에서 잠시 해방되었던 아내는 오랜만에 밥상을 차려 받는 입장을 즐기며, 그만 게으름(?)을 피우게 되었고, 나도 그런 아내를 따르며 새벽 운동을 등한히 하였더니 어느새 몸피가 불어난 느낌을 받았다.


다시 바다로 나왔으니 느슨해졌던 일과에서 벗어나 당장 운동을 재개하리라 작정하고 오늘은 새벽에 갑판으로 나섰다. 아직 동녘이 밝아 오려면 한 시간 이상 남은 때이니, 어두컴컴한 어둠이 기다렸다는 듯이 문밖으로 나서는 발걸음을 조심스레 만들어 준다.


어둠에 눈이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걸어야 하는 게 운동이니. 신발 바닥을 갑판 위에 문지르듯이 밀착시키며 내디뎌 준다. 혹시 어둠 속이라 발걸음에 딴죽을 거는 갑판 위에 부착된 작은 구조물(페드 아이 등)을 만날까 염려한 걷기 방법이다. 그렇게 몇 발자국 걷다 보니 발바닥을 통해 밀려드는 감각이 평소와 같이 매끄럽지 못하고, 갑판 위에 무언가 껄끄럽지만 미끄러운 물건이 깔려 있음을 알려준다.


아하! 석탄 찌꺼기로구나! 마음속으로 확인되니 깔려 있는 석탄을 잘못 밟았다가 미끄러지기라도 해서 뒤통수 깨질 염려에 발걸음을 더욱 조심스레 끌어가며 내딛는다.


석탄(유연탄)을 육상으로 내려주는 하역작업을 하면서 배 위에다 흘려서 남겨놓은 부스러기를 모두 쓸어 가지 않은 채 하역을 끝낸 때문에 생긴 쓰레기 아닌 쓰레기이다.

너무 많이 흘린 걸 그냥 남겨준 때문이겠지, 태풍의 여파로 쏟아지던 빗속에서도 흘러가지 못하고 갑판 상에 남은 낙화물의 잔존인 석탄더미는 아직도 갑판 위에 군데군데 남아,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작은 언덕배기 마냥 팬 채로 남아 있다.


화물의 찌꺼기가 그렇게도 많이 남아있는 모습은 우리나라 하역회사 인부들의 뒤 떨어진 작업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척도라고 나는 언제부터인지 그리 생각하고 있다.


그들더러 좀 깨끗하게 쓸어가라고 요구하면 주위를 살피다가 보는 사람이 없다 싶으면, 배가 접안하고 있는 부두와의 사이 바다에다 그대로 쓸어 넣어 버리는 모습을 심심찮게 보아왔다.

그렇게 하고도 매 항차마다 이렇게 배위에 남겨져 버려야 하는 석탄의 양을 선창 청소를 하며 주먹구구식으로 계산해도 최소 9톤에서 어떤 때는 15~6톤에 이르는 걸로 계산하고 있다.


말이 찌꺼기이지 그냥 석탄인 이 쓰레기는 톤당 가격을 들먹이지 않아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우리나라에서 새어 나가는 아까운 외화이다.

항차마다 우리나라에서 화물(석탄, 철광석)을 양륙 해주고 다시 선적항을 찾아가는 항해 중이면, 우리는 이렇게 남겨진 석탄 찌꺼기의 청소를 위해, 전선원이 며칠을 소모하며, 그 석탄더미를 바닷속에다 버려야 하는 마지막 과정에서는 너무나 버리기 아까운 생각에 멈칫거리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어찌 넘겨 보아주겠지만, 위에서 이야기 한 배와 부두 사이의 공간에 슬쩍슬쩍 버려준 석탄이나 철광석으로 인해 부두의 수심이 낮아져, 접안하는 배를 땅(석탄이나 철광석) 위에 얹히게 하는 일을 발생시켜, 결국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부두 부근을 준설(일정한 수심을 유지하기 위해 해저의 토사를 파내는 일) 해야 하는 일도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한국인, 아니 우리들 정도 연배의 사람이면, 결코 예뻐만 할 수는 없는 나라가, 일본이지만,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의미로 한번 그들과 우리를 비교해 보자.


어언 20년이 넘어서는 기억이지만, 동경만 지바에 있는 일본제철에 석탄을 실어다 주었던 항차가 있었다. 그때 입항해서 출항할 때까지 그들이 본선에서 행한 모든 작업의 과정은 지금 생각해도 괜스레 약이 오른다.

우리는 하지 못하고 있는 일을 그들은 시행해서,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면서도, 오늘의 그들이 있게 된 한 단면을, 우리 배를 부두에 대 놓고 하역작업을 하며 보여 주었든 것이다.


우리는 하역인부의 인건비를 아끼려는 의도에선 지 그런 인부들을 운용하지 않지만 그들은 하고 있었다.

선창 내에 투입되어 양륙 작업 중간중간에 선창 내부 벽에 붙어 있는 석탄을 긁어내게 하고, 마지막 끝날 단계에선 빗자루로 눈에 보이는 모든 석탄 남은 것은 싹싹 쓸어 담아 양륙 하도록 돕는 특수 작업조가 있는 것이다.

비록 그렇게 쓸어 담는, 찌꺼기가 될 수 있었던 화물 양을 돈으로 따진 다해도, 그들의 인건비를 넘길 수 있을까? 의심되는 고임금의 그들이지만, 그렇게 깨끗이 쓸어가 버려서 사실 출항 후 우리는 선창 청소를 따로 안 해도 되었을 정도였다.


그들은 그렇게 쓸어 담아 양륙 하는 그 원자재가 외국에서 비싼 돈 들여 사들인 물건이고, 그 돈은 결국 자기 나라 자기 국민들의 피와 같은 돈이란 걸 깨우치고 있기에, 석탄 한 톨 철광석 한 줌도 함부로 버려선 안 되는 이미 일본 그 자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일하는 것으로 보였다.


두 나라 국민들 사이에 보이는 이 작은 차이가 지금의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알 수 없는 격차를 계속 벌리고 있는 건 아닌지?

내 머릿속에 잠겨있던 녹 쓴 기억까지 끄집어 내 곱씹어 보며, 조심스레 발길을 선수 쪽으로 옮겨 가면서,

-에이! 오늘은 이 찌꺼기 석탄을 모두 바닷속으로 처넣는 작업부터 해야겠구나!

그렇게 남겨두고 떠나간 그들 모두가 새삼 야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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