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시간도 내 인생의 한 순간이거늘
지금 우리 배가 가고 있는 침로(針路)에서 왼쪽인 10시 방향 약 900마일의 해상에서 아직은 자라나는 태풍인 STS 0014 SAOMAI (980 hpa) 가 현재 서진 07 knot로 움직이고 있다.
그 태풍과 조우하지 않고 안전하게 지나치기 위해서 어제 하루 우리가 달리던 속력인 13 knots를 변함없이 계속 유지하고 있기를 바라고 있다.
새벽녘 후드득 뿌리치는 빗소리에 잠이 깨었다. 그 비는 아침이 되어도 바깥에 회색 빛깔의 어두움을 조금씩 남겨주며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다. 바람마저 앞에서 불어와 상대 풍속을 35 knots까지 쉼 없이 오르내리게 만들어 주고 있다.
오버 푸로 우(OVER FLOW)로 발라스트 해수 교환을 위해 밤새도록 펌프를 돌리고 있는 중이니, 앞쪽의 발라스트 탱크에 부착된 통풍구를 흘러넘쳐 나오는 해수가, 바람의 세기에 따라 뿌옇게 흩날리는 상태의 높낮이를 다르게 해주고 있다.
희끗희끗 <파도의 꽃>까지 이미 물결 위에 피워 놓고 있으니 속력도 어느새 11 knots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금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으로 판단하건 데, 태풍이 가까이 접근해서 불어 드는 바람이 아닌 것은 틀림없다.
태풍과의 방위는 그대로이고 위치만 가까워졌다면 뒤바람이 불어야 하는 건 데, 현재의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로 봐서도 결코 태풍과 만나게 되는 일은 아니란 확신을 주는 바람이다. 하지만 이렇듯 태풍의 접근과는 무관한 앞바람이라 해도, 떨어지는 속력으로 인해 멀리 가지 못하게 되면, 그것이 다가오는 태풍의 영향권에 진입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일 수도 있다는 점이 새삼스레 께름칙한 이유로 달려드는 것이다.
그래서 비 내리는 소리가 세차 지거나 배의 요동이 조금 더해지는 것 같으면 금세 브리지로 올라가서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기상 정보를 다시 꺼내어 태풍의 위치를 그려 넣어가며 떨어져 있는 거리를 재어보곤 하는 부산을 떨게 되는 것이다.
태풍이나 배 양쪽 모두가 현재의 추세로 움직인다면, 내일 12시쯤이면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 만큼 떨어지게 될 것이란 예상을 다시 확신하며 브리지를 내려온다.
그러면서도 그건 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결과이고, 행여나 예상을 뒤엎는 일이 생긴다면... 하는 어리석은 걱정 역시 함께 존재하니, 안전하다는 결과를 볼 때까지는 기다림의 시간은 시시각각이 괴로움이요, 째깍째깍 하는 안타까움이다.
그렇기라도 그 모든 시간을 유한한 인생의 짧음을 한탄하는 경지로서만 이해하게 된다면 참으로 아쉽고 요긴한 아까운 시간더러, 빨리 지나가라고 부추기고 있었던 셈이니 너무나 소중한 재산을 허비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비약은 제 멋대로 그렇게 치달려 보게 된다.
태풍이나 악천후의 접근을 근심할 때와 같이 마음 조림이 너무나 커질 때마다 차라리 애간장 태우지 말고 <시간아! 빨리 지나가라>고 빌어 보는 마음에 빠졌다가 또 그런 점을 후회스러워하는 뱃사람 감정의 변환을 이해하면서도 되풀이 함이 답답하고 또한 섭섭한 마음 갖는 게 이렇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