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가 있는 전화통화
새벽 운동을 끝내고 아침식사 시간인 7시가 다가와 식당으로 내려가려고 방문을 나서는데 마침 위성 전화의 벨 소리가 통신 실에서부터 계속 들려온다.
이런 이른 시간에 누가 전화를 걸었단 말인가? 의문을 가지며 통신 실로 접어드는데, 바지 앞 지퍼를 올리면서, 윗도리는 팔에 걸친 바쁜 차림새의 통신 장이 침실에서 급하게 뛰어나오더니 전화기 옆에 먼저 도착한다.
브리지에서 항해 당직을 서고 있던 일항사도 계속 울리는 벨 소리를 듣고, 내려 오려다 줄 서듯이 나타나고 있는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하더니 인사만 하고, 다시 브리지로 돌아간다.
-여보세요, OO스피리트호입니다.
통신장은 수화기를 들더니 응답의 말을 해준다. 혹시 영어로 나올 수도 있는 전화이지만, 태연히 우리말로 대답하고 나간 건데 그쪽에서도 우리말로 이야기를 받아주는 모양이다.
-예, 바꿔드리겠습니다.
자신을 뒤따라 통신 실에 들어서는 나에게 수화기를 넘겨준다.
-누구야?
-예, 공무감독님이십니다.
우리 배를 담당하고 있는 공무감독으로부터 온 전화란다.
무슨 일 때문에 이런 이른 시간에 전화를 했단 말인가? 궁금증을 가지며 통화를 시작한다.
-예, 전화 바꿨습니다. 근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무래도 궁금한 생각이 앞서서 안부에 앞서 물어본다.
-발라스트 해수 바꾸는 작업을 하셨습니까?
예상치 못했던 물음으로 다시 대답을 해왔지만, 거기엔 그럴 만한 이유는 있는 일이다.
이번 광양 기항 시 발라스트 탱크 내부의 발청(녹슬음)을 막기 위해 모든 윙 탱크에 WET COATING(주*1)을 했는데 발라스트 해수를 교환할 때, 혹시 그 기름기가 나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기에 심하게 기름기가 나온 것은 아닌지 그 결과가 궁금하여 걸어온 전화이다.
우리도 처음 사용하는 제품이라 성능이 궁금하였고, 조심스럽기는 오히려 본사보다도 더 시급한 현장이다. 이미 발라스트 해수의 교환 중에 배출시키는 물에 기름기가 뜨는지는 계속 관찰하며 실행하고 있었다.
다행히 기름기가 크게 나타나지를 않아 우리도 안심하고 있던 터이라 그대로 이야기해주었다.
더불어 기왕에 전화를 걸어 본선의 상황을 물어 온 것이니, 기관부에서 보일러 FEED PUMP의 교환 작업을 했다는 이야기도 해준다.
그 작업도 별일 없이 잘 마무리하고 있는 점이 안심된다며, 기분 좋은 음성으로 작별의 인사를 건네 온다. 그리고 이제야 한 마디 더 마무리 인사를 덧붙여 주는 거다.
-선장님! 아침부터 너무 일찍이 전화 걸은 것, 아주 죄송합니다.
자신이 뒷바라지해 줄 책임을 맡고 있는 배가 잘 지내고 있는지가 궁금하여, 너무 이른 시간임을 미처 생각지 않고 전화를 걸었는데 별다른 큰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니 그 이상 반가운 대답도 없었을 거다.
주*1 WET COATING : 발라스트 탱크 내벽에 발라주어 내부 벽면에 녹이 쓰는 것을 방지하는 데 쓰는 방청 도료. 좀 끈적거리는 성질을 가진 도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