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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꿈이라 기분 좋은 날

내 꿈은 개꿈이라니까

by 전희태
JJS_0992.JPG 아침이 밝아 오고 있다


오늘 오전 중에 동생네 차로 우리 식구들 모두가 아버님 산소로 성묘를 간다던 예정을 엊그제 집으로 전화했을 때 큰 아이한테 들어 알고 있었다.


엊저녁엔 잠자리가 좀 불편했던 모양이다. 새벽녘 잠에서 깨어날 무렵 평소와는 달리 무슨 어수선한 꿈속을 헤매다가 눈을 떴는데 기분이 별로였다. 꿈 내용이 둘째 남동생 네가 이사를 간다고 하는데, 깨고 나니 남는 기억도 별로 많지 않지만, 혹시 무슨 사고를 암시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추측부터 들어서 입맛을 씁쓸하게 만들어준다.


오늘 하루 종일, 일이 바쁠 때는 그렁저렁 별생각 없이 지나쳤지만, 좀 한가한 몸이 되니 <혹시 성묘 길에 교통사고라도....> 하는 찜찜한 기분을 내칠 수가 없어서, 결국 우리 시간으론 저녁 8시이나, 집에서는 저녁 6시가 되는 때에 전화를 걸었다. 약간의 잡음이 있긴 하지만 그런대로 들을 만한 통화 상태에서 아내가 직접 받고 나온다.


통화 시간을 규모 있게 하기 위해 스톱워치를 누르며 아내의 응답하는 목소리를 들어보니 결코 별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 아주 기분 좋은 쾌활한 음색이다. 쓸데없는 걱정부터 걷어내 주는 아내의 활기찬 목소리에 감사한 마음부터 든다.


-휴가 나왔던 막내는 부대로 들어갔고요.

오늘 하루 어찌 지났는가를 묻기도 전에 나오는 아내의 말이다.

-아버님 산소에는 잘 다녀왔어요?

-그럼요,

-별일은 없었고요?

-무슨 별일이 있겠어요?

치직거리는 잡음이 들어와 목소리를 조금씩 놓쳤지만 알아는 들었다.

-지금 뭐 하고 있어요?

-모두 모여서 ‘고’하고 있어요. 호호호.

어머니는 자식들이 모이면 화투 치시는 것을 일종의 낙으로 삼아 오락으로 즐기시곤 한다.


오늘 같은 날, 우리 형제들이 다 모였으니, 노인의 치매 예방에는 고스톱이 최고로 좋다며, 어머니를 중심에 모셨을 것이니, 지금 한창 판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랬구나, 어찌 좀 땄어요?

거기서 거긴 데 누가 따면 무엇하랴마는 그래도 게임이니 이기는 건 좋은 거겠지.

-아까는 제법 많이 땄었는데 지금은 다 나갔어요.

처음 화투를 배울 때는 팔도 아팠고, 딴다는 이야기는 아예 없었던 실력이 어느새 따는 일도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잘해봐요. 그리고 전화 음질이 안 좋으니 오늘은 다른 사람들을 바꿀 필요는 없겠네요.

-그래도 어머니와는 한 말씀하셔야지요.

-아니 됐어요. 어머니한테 돈 많이 따시라고 전해 주세요.

-예, 당신도 몸조심하시고 나중에 전화 다시 하세요.

다시 전화 걸어 달라는 이야기는, 나와의 통화가 끊을 때가 가까워지면 하는 아내의 레퍼토리 같은 말이다.


아내의 마음이 항상 나와 연결되어 있기를 원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표현해주는 말이기에 나한테는 아주 기분 좋은 전화 종료를 의미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알았어요. 그럼 잘 지내고요, 전화 끊어요-.

그래도 미진한 마음을 달래며 스톱워치를 본다. 아직 한 통화에 못 미치고 있으니 시간은 좀 남아있다.

-예, 건강하게 지내세요. 끊어요.

-알았어요.

수화기를 놓는 소리를 들으며 스톱워치도 누른다. 3 분이 안 지났으니 한 통화이다.


전화를 끊고 나니 꿈으로 인해서 하루 종일 지레 근심하던 찜찜함도 풀리면서 ‘그러면 그렇지 내 꿈이야 개꿈이지 별 수 있나’ 하는 마음으로 모든 걱정들을 놓아준다.

그렇게 개꿈으로 치부해버리는 내 꿈이지만 별일을 만들지 않은 꿈이니 얼마나 고마운가?

비록 별 볼 일 없는 꿈으로 결판이 났지만, 오늘은 그런 점이 더욱 맘에 드는 기분 좋은 날이다.

그러고 보니 기상상황도 하루 종일 항해하기에 참말로 좋은 잔잔하고 조용한 날씨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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