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적으로 의사 발표를 안 하니
좌현 선미의 BREAST LINE(선수, 미에서 바로 옆으로 내주어 배가 부두로부터 벌어지지 않게 잡아주는 계류삭)을 묶어 두는 BOLLARD(배를 계류시키기 위해 줄을 묶어주게 만들어진 두 개의 기둥으로 된 장치) 위에 며칠째 그냥 내 버려진 물건 같이 팽개쳐 있는 망치 한 개가 올려진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이 눈에 거슬리며, 누가 저렇게 제자리에 돌려주지 않고 있나? 하는 조금은 짜증스러운 궁금증마저 일어났다.
오늘은 직접 과업 정렬 모임에 참가하여 그 일에 대한 잔소리를 뱉어내기로 작정을 하고 아침 TBM(TOOL BOX MEETING)에 합류했다.
-며칠째 보고 있었지만, 아무도 치울 생각을 안 하고 있어 하는 말인데, 후부 갑판의 좌현 쪽 볼라드 위에 누군가 망치를 쓴 후 제자리로 돌려주지 않고 방치하고 았는데 그게 누구지요?
어디에 그런 일이 있느냐고 정확한 위치를 갑판장은 물어 오지만, 그곳에 망치를 방치해 두었다는 사람은 그래도 나타나질 않는다.
-어찌 됐던 망치는 제자리로 수납시키고, 알 수 있다면 누가 그랬는지 알아보세요.
하면서
-좌현 갑판 위에 털어 낸 녹 덩어리가 많이 있는데, 그건 쓸어버리는 게 나아 보이니 나중에 쓸어 내세요.
하며 또 다른 지시사항까지 추가했다.
-그건 발라스트 에어벤트와 7번 창 HATCH PONTOON 용 STENCHON 일부분을 두드려 나온 녹인데 쓸어 내겠습니다. 갑판장이 녹 무더기에 대해서는 시원스레 해명을 한다.
-또 한 가지 F‘CLE STORE AIR VENT에 녹이 많이 생겨 철판이 벌어진 것 같이 보이는데, 혹시 페인트 칠이 벌어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찢어진 것 같기도 하니 살펴서 조처를 취해야겠어요.
-예, 살펴보겠습니다.
역시 갑판장이 꼼꼼히 챙겨 들어가며 대답을 한다.
오늘 새벽 운동을 하느라, 갑판을 돌다가 발견했던 잔소리 감까지 모두 풀어내었다.
이제 내 잔소리가 끝나고, 오늘 실시할 작업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위험요소를 찾는 토론이 계속되지만 적극적으로 토의에 나서는 사람은 몇 사람이 안 된다.
-자 그럼 오늘의 TOUCH & CALL의 구호는 무엇으로 하지요?
사회를 보던 일항사가 결론을 내리며, 오늘 외칠 구호를 묻는데 역시 사람들은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보고만 있다. 선원들이 갖고 있는 될수록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말을 아끼려는 습성이 빚어낸 태도이다.
또 한 번 잔소리에 나서기로 한다.
-오늘 아침은 잔소리를 좀 하려고 이렇게 내려왔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아침마다 TBM 하려고 모인 자리에서 잔소리 듣는 게 피곤하지 않아요?
-지금 마지막 의견을 묻는데도 말을 아끼고 있는 모습을 보니 좀 답답합니다.
-내일부터는 모든 사람이 한 가지 이상의 우스개 소리라도 좋으니 이야깃거리를 들고 나오도록 해봐요.
굳어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덧붙인 잔소리이다.
-그렇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오늘 작업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되면서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가질 수 있으니, 그걸로 안전은 절로 좋게 되는 것이 아니겠어요?
마지막 토씨 풀이 같은 이야기까지 보태주며 TBM을 마무리 짓자고 일항사에게 눈짓을 보낸다.
-예, 오늘의 구호는 ‘보안경 착용 좋아!’ 로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마침 지금껏 입을 다물고 말을 아끼고 있던 갑판수 최씨가 제안을 한다.
갑판상 청낙 작업을 하다가 뛰어오르는 녹이 눈에 튀어 들어가는 일을 막으려는 의도의 구호이다.
-예, 지금껏 안 하던 새로운 구호이군요. 또 다른 의견은 없습니까?
모두들 그걸로 하자는 눈빛들이다.
-좋습니다. 그럼 오늘의 구호는 ‘보안경 착용 좋아!’입니다.
참석자들이 모두 일어나서 오른손 검지 끝이, 왼손의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서로 걸어서 만들어 낸, 둥근 원의 가운데를 향하게 하며 둘러 선다. 구호의 선창을 중국 선원이 하도록 정했는 데, 그가 한번 실수를 한 후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손가락질을 정확히 가미하여 선창을 한다.
-터치 앤드 콜! 보안경 착용 좋아!
전원이 큰소리로 세 번을 복창한 후 왼손을 거두어 박수를 치면서, 오늘 아침 TBM을 끝맺음한 후, 각자는 주섬주섬 과업을 시작하려고 자신들이 배당받은 작업 장소로 흩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