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IN MY BACK YARD-종종 만나는 일
선상 생활에서는 점심이나 저녁 등의 식사를 끝내고도, 식탁의 자리를 뜨지 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경우가 많다. 잡담을 하는 때도 있지만, 결국은 살아가는 주위와 동료들 심지어는 가족들 이야기까지 포함되는, 모든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맴도는 시간인 것이다.
같은 환경에서 동종의 일을 하며 이루는 사회에서의 대화란 공통적인 자신들의 주위 이야기가 주된 관심사 일 수밖에 없으니, 선내 생활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갈등이나 일의 제기와 그 해결책을 위한 각자의 의견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며 또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오늘 점심 후에도 그런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중에 기관장이 이야기를 꺼냈다.
-기관부 중국 선원이 식기 청소를 하는데, 그 친구한테 너무 많은 로드가 걸리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왜, 식기 청소에 대해 불평을 말하던가요?
선내 생활을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 보고 있든, 그 중국 교포 선원을 떠올리면서 혹시 보기와는 다르게 뒷구멍으로 불평이나 해서 잘 나가고 있는 선내 분위기에 쓸데없는 파문을 만드는 행동을 한 건 아닐까? 하는 우려에 반사적인 반문을 한 거다.
-아니, 그런 거는 아닌데요, 근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도 식기 청소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부인하는 말을 하지만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내며 다시 한번 재우쳐 물으니
-엊저녁에 기관부원 모두를 불러 모았는데 중국 선원이 늦게 왔기에 왜 그랬냐니까 식기 청소를 하느라 늦었다고 하더군요.
-………?
-혹시 그 일을 중국 선원에게만 시키는 무리한 일이라면 부당한 거고, 너무 거창한 표현이긴 하지만, 인권에 관한 이야기도 되겠기에 말씀드려 본 것입니다. 좀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평소 저녁만 되면 일찍 방문을 닫는 생활을 하던 기관장이 어젯밤에는 늦도록 방문을 열어 놓고 있어서 어디 마실이라도 나갔나 잠깐 찾아보기도 했었다.
그 시간 기관장은 자신이 장으로 있는 부서를 휘어잡을 단합대회라도 열려고 그랬는지 기관부 전원을 모이게 했던 모양이다.
사실 선내 전체를 생각하고 일해야 하는 나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주선되었던 엊저녁의 기관부 모임은 선내 반쪽 인원의 움직임이라 조금은 께름칙한 마음으로 지켜본 일이기도 했다.
아마 그 자리에서 생긴 일을 계기로 부서원들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이려니 그런 말을 하게 된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하나 내 입장으로는 현재 식기 청소 일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진행되는 일로 보고 있기에 또 한 번 심기가 불편해지는 느낌이 우세해질뿐이다.
-매뉴얼을 뒤져서 확실하게 알아낸 후 모두 집합시켜서 알려주도록 하지요 뭐.
결론을 그렇게 내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올라왔다.
<일반 선무 지침서>를 뒤적여 관계되는 항목을 찾아 확인하고, 또 개인 수첩에 적혀있는 갑판/기관일과팀 부원의 하는 일에 명백하게 적혀있는 내용을 찾아들고 그의 방을 찾아갔다.
회사의 지침대로 일을 하도록 다시 한번 관계자들을 불러 정확하게 분담된 일 처리의 방안을 확인시켜 주겠다며 매뉴얼을 들어 보여 주었더니,
-중국 선원이 불평을 해서 말이 나온 게 아니라 제 생각으로 그랬던 것입니다.
혹시 내가 자신의 직속 부하에게 불편한 심기라도 내 비칠까 봐 걱정이 되는지, 기관장이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이 있을 때는 직접 저에게 오시지 말고 저를 불러다가 이야기해주세요.
하며 내가 자신의 방으로 직접 찾아와 이야기하는 것을 미안해한다.
-알았어요. 그들을 불러 이 관계를 정확히 알려주도록 할게요.
그 방을 나와서는 식기 세척 작업에 관계되는 조리수, 갑판원, 기관원(갑판 기관원은 모두 중국 선원이다.) 세 사람을 불러 그 일에 대한 확실한 경계를 알려주니 그들은 이미 그렇게 일 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인다.
결과적으로 기관장이 너무 자기 직속(?) 부하만을 챙겨주려는 마음에서 혼자 판단으로 뱉어 낸 말로 인해 오후 한 때를 안 해도 될 일을 가지고 시간 소비를 한 셈이다.
그런 기관장의 태도는 이 조그마한 사회인 선박 내에서 갑판 부다, 기관 부다 하며 너무나 부서를 가르고 편을 짜게 만들어, 조그마한 일이라도 자신의 편에게는 불이익이 안 되게 하겠다는, 일종의 님비 현상적인 사고방식의 표출로 여겨진다.
배 안에서 가장 다루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이런 님비의 사고방식을 가진 부서장 밑에 있는 부원들을 배 전체를 위한 특별한 작업에 동원하여 일하려 할 때이다.
그 들은 당당하게 앞으로 나서기보다는 뒤에 숨은 자세로, 타 부서의 일이니 어쩌니 하며 조그마한 일에서도 시시콜콜하게 입방아를 찧으며 자신들은 손해를 안 보겠다는 식으로 불평을 해서 결국 일보다 말들이 많은 어수선한 선내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는 때문이다.
앞으로의 선상 생활의 관습은 예전 같이 부서로 나누어하는 게 아니라 GPC(General purpose crew) 시스템으로 통합 선원을 지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현재 자기가 맡고 있는 부서만을 너무 의식한 사고방식은 떨쳐내야 할 일로 믿어진다.
그런 사고방식으로 보니까, 선장을 배 전체를 생각하는 직책이 아니라 갑판과 항해 파트를 통해서 올라온 부서장적인 직책이라고 편 가르기 해주는 사람들도 간혹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랬을 때에 나 자신이 진짜 그 사람의 생각대로 행동했던 건 아닐까? 갸웃이 나 스스로를 자문해 본 경우가 오래 전인 예전에는 있었지만, 이제는 결코 그런 적이 없었다고 말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