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개월 만에 집에 오다

잠깐 동안의 귀가

by 전희태
IMG_2702(3506)1.jpg 마당가에 바짝 다가서 있는 감나무. 은행나무는 감나무 뒤쪽에 있었다.


국내 기항하면서도 만 4 개월이 넘도록 집을 찾아가지 못할 만큼 그간 배에서의 일이 매우 분주했었나 보다.

아직도 집에 갈 수 없는 형편은 그동안과 별반 다름없는 형편이지만, 겨울철 캐나다 기항이라는 버거운 일이 다음 항차로 예정되었으므로, 억지를 부려서 집에 가보기로 한다.

가족과 떨어져 있은 기간이 그 정도로 길어진 상태라면, 가능한 이제쯤은 가족과 만나는 게 선원들의 정신 위생에는 활력을 줄 수 있는 여러모로 바람직한 일이다.


게다가 겨울철 북태평양 횡단이라는 좀 어려운 항해가 앞에 예정된 상황도 있으니, 가족과의 만남은 새삼스레 말할 필요도 없는 일로 다가선 것이다. 어머니와 아이들도 만나고, 그간에 변화된 집안의 모습, 전화 통화로만 이야기 들었던 대문 고친 것 하며, 은행나무를 잘라낸 일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도, 집에 가 보려는 이유 한 가지에 들어 있다. 잘도 그런 일들을 처리하여 옆 사람들에게 시원함을 주는 아내의 당찬 기백에 못내 경이로운 심정을 은근히 품으며 집을 떠나 있는 셈이기에, 이번에도 작은 기대를 가지고 집을 향한다.


정말 남자들도 해내기 힘든 것으로 보이는 일이다. 20년 넘은 나이 든 몸체로 창문을 막으며 지붕 높이 보다도 훨씬 커져버린 은행나무를 지붕과 마당을 오르내리며 가지치기와 밑동까지 잘라내 준 일이다.

집 앞에 바짝 붙어서있는 나무가 지붕 높이보다 큰 게 좋지 않다는 속설을 따르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창문 앞을 막아서서 집안으로 들어 올 환한 빛을 차단하는 행위를 근절시키기 위함이 더 큰 제거 이유였다.


게다가 대문은 연다고 미니까, 그대로 넘어져버린 낡은 것이었다. 그렇게 확인까지 하고도 차일피일 수리를 미루며 지내오던 걸, 역시 새 대문으로 바꿔주었다는 수리 결과의 모습도 궁금하기만 했다.


고속버스를 타고 동서울 터미널을 거쳐서 집에 도착하였다. 4개월 전 집을 나설 때 나도 못하고 떠났던 일들인 데, 정리되어 깔끔하니 만들어진 대문 모양을 눈여겨보면서, 아주 편안하고 만족한 마음에 한번 더 손으로 쓸어보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은행나무가 있던 자리도 훤하게 정리되어 넘어가는 해가 남겨준 빛으로 서쪽 하늘이 확 트이고 있다.

이미 집에는 서울 사는 두 남동생과 그 가족도 찾아와 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며 치매도 방지한다는 고스톱 화투를 함께 치며 저녁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12월에 찾아오는 어머니의 8 순 잔치를 위한 행사를 어떻게 치러 낼 것인가도 의논을 끝내고 나니 밤이 늦어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절대로 흔들릴 수 없는 육지 위의 방안 이건만, 잠들기 전, 마치 배 안의 침대에 누운 듯 한 흔들림이 찾아온다. 멈칫하며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다.


땅 멀미(주*1)가 찾아와서 오랜만에 육지를 찾았다는 걸 잠깐 확인시키려 하는 모양이다.

-여기는 집이쟎아, 침대가 흔들릴 일은 절대로 없는 거지...

현실을 다시 확인 한 편안한 마음이 되니, 스르르 눈이 저절로 감기며 꿈나라로 빠져 든다. 오랜만의 귀가로 편안해진 첫날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주*1 땅 멀미 : 배를 오랫동안 타던 사람들이 어쩌다 육지에 오르면 느껴지는 어지럼증. 제법 심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상한 작은 흔들거림을 머리로 느끼는 정도로 미약하게 지나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기관 및 계기류 사전 점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