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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허무한 사고사

하늘나라 가는 길의 순서 없는 애환

by 전희태


290410-정박중 일몰일출 004.jpg 언젠가 우리가 가야할 곳을 생각나게 하는 풍경


해양대학 기관학과를 나와서, 60년도 후반 당시 국영 해운회사인 대한해운공사에서 해상 근무를, 나와 같이 했던 K라는 동기생 친구가 있다. 그 어느 해, 나와 같은 배에 근무하다가 먼저 연가가 되어 하선하면서, 이것이 마지막 항차라며, 앞으론 육상 근무를 하며 살아가겠다는 뜻을 보였을 때, 섭섭한 마음은 극구 말려도 보았건만, 그는 자신의 뜻을 관철하여 승선 생활을 접으며 떠나가 버렸다.


그 후 서울 강남에 4층짜리 빌딩도 세우고, 육상에서 사는 기반도 탄탄히 다져, 얼마 전까지도 서울 거주 동기회의 회장직도 맡아, 우리와의 인연도 계속 돈독히 유지해 온 부지런한 친구이기도 했다.


모처럼 집에 와서 편안한 하루 밤을 지내고 일어 난 아침이다. 맨손체조라도 해 볼까 꾸물거리고 있는데 아내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그대로 받을까 하다가, 이른 시간의 전화이니 아내에게 바쁜 일이 있을 거라 여겨 본인이 직접 받도록, 전화기를 집어다가 아내에게 전달해준다.


-아직 출근을 안 했으니 집 전화로 해~.

아내는 상대방을 확인한 후 길게 통화할 작정을 하는지, 일반전화로 바꾸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몇 년 전 미망인이 된 N선장 부인으로부터 온 전화라고 알려준다.

-N 선장 부인이? 무슨 일이 있대요?

-글쎄, 좋지 않은 일이 있는 것 같아요.

이윽고 기다리던 전화가 울린다. 얼른 수화기를 들면서 통화하는 아내의 음색이, 아주 심각한 소식을 듣고 응대하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변해 간다.


아무래도 흉한 소식 같아서 옆에서 흘러나오는 통화를 들어 보니, 내 동기생 중 누군가가 갑자기 세상을 버렸다는 연락 같았다. 그렇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아니 믿기 싫은, 소식을 전해 준 전화를 끊고 나서 잠깐 숨을 돌린 후, 아내는 바로 K군의 부음이라고 말한다.

그 순간, 무척이나 강건한 체질과 건강한 모습을 모두 지닌 채, 운동마저 열심이던 K군의 모습이 떠오르니, 그의 부음이 쉽게 믿어지는 감정으로 와 닿지를 않는다.


아내가 차분히 설명하는 갑작스러운 죽음의 원인은 질병이 아니라, 사고로 인한 것이란다. 그것도 자신의 빌딩 앞 조경수에 올라가서 가지치기 작업을 하다가 실족하여 머리를 다친 때문이란다.

4층에다 자신의 거주 구역이 있는 빌딩을 지을 때, 조경 몫으로 심었던 은행나무가 20여 년이 지나 커지면서, 세 들은 사무실의 창문을 가리어 집안을 어둡게 하니, 가지치기를 하려고 솎아 내다가, 많이 열린 은행알부터 수거하기로 작정하여 털어내는 일을 병행하던 과정에서 실족을 한 모양이다.


사고 당시 마당에서는, 갑상선 암을 수술하여 이제 겨우 2개월이 지나고 있는 그의 아내가, 운동삼아 은행알 거두는 일을 돕는다며 허리를 구부리고 줍고 있었단다.

나무 위에서 이 가지 저 가지로 옮기며, 은행알을 털던 그가 어느 순간 그만 발이 미끄러지며 그대로 밑으로 추락, 자신의 아내가 일하든 앞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먼저 떨어져 그 자리에서 절명한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는 건강으로 말하면 우리 동기들 중에 제일 좋은 축에 드는 사람으로 한겨울에도 아침마다 냉수마찰을 해오던 사람이라 평소 동기들이 만나는 자리에서 그의 건강 비결이 항상 화제에 오르내리던 친구였다.

가족과 늘 함께 하는 삶을 택한다고 동기생들 중에서도 제일 먼저 마도로스의 꿈을 접은 그룹에 들며, 이번 사고가 난 빌딩도 노후 대책을 위해 세워 놓았으니, 그런대로 편안한 삶을 영위하고 있은 셈이다.


게다가, 먼 항해에 나선 동기들이 집을 떠나 있는 그 시간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애경사도 앞장서서 도와주며, 유유자적하는 준비된 삶을 꾸리며 살아온 친구였다.

근래 아내가 암 수술을 받아야 하는 건강 악화 때문에 동기회 회장직을 물러나 있다가, 일 같지도 않은 일로 사고를 당해 훌쩍 먼저 가버린 것이다.

신은 왜 그에게 그런 험한 생의 마감을 가지게 하였을까?

그렇게 만든 신의 의지를 헤아려 보기보다는 섭섭해하며, 빈소가 차려 있는 영동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을 아내와 같이 찾아 나섰다.


정장 차림도 아닌, 스냅으로 찍힌 미소 띤 모습을 확대하여 걸어 놓은, 영정사진을 올려다보며, 죽음은 준비해 두지 못했던 그를 그 안에서 찾아내며 알싸한 슬픔을 얼버무린다.

국화꽃이 둘러쳐진 사진틀 속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그와 눈 맞춤을 하니, 마침 사흘 후로 받아 놓은 환갑도 못 치르고 급하게 떠나버린 망자가 아쉽기만 하다.


-하느님, 당신의 자비로 그를 천상 낙원으로 이끌어 주소서!

기도를 드리며 일배 또 일배 절을 올린다.

암 수술 한 뒤의 피곤한 병후 색을 얼굴 가득 보이는 소복한 부인은, 사람들의 조문에 대처하는 분주함 속에서, 아직은 자신이 당한 일의 심각성을 실감 못한 채, 조문객의 위로하는 언사에도 갈피를 잡지 못한, 그야말로 웃고 우는 공황의 피크에 선 애처로운 모습이다.


저녁 시간이 되도록 그곳에 머물렀다. 퇴근 후에 찾아오는 동기생들을 몇 명 더 만나본 후, 나는 내일의 출항에 대비하려고 그 자리를 떠나, 집을 향한 택시를 탔다.


그렇게 떠나는 친구를 환송하기 위해 이번 귀가가 필요했던 모양이라 여겨지니, 퍼뜩 며칠 전 아내가 행했을 집에서의 작업 광경이 실제 본 듯이 떠오른다.

그 친구나 아내는 모두가 며칠 간격으로 은행나무를 잘라내야 하는 작업 과정을 거쳤는데, 아내는 무사히 은행나무를 베어내어 환경 정리에 성공했지만, 그 친구는 은행나무를 처리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당한 꼴이 되었다.

우리 집 은행나무도 자르고 보니, 나무 꼭대기 쪽에 은행알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암나무였다는 말에 조금은 흠칫하는 기분 나쁜 느낌도 받았었다. 오래 사는 나무로 정평이 난 은행나무는 진짜로 영험한 식물일까?


아내는 나무를 자르기 전에 옮겨다 심을 사람을 알아보기도 했었지만, 옮기는 가격이 만만치 않다며 모두들 고개를 저었기에, 할 수 없이 잘라낸 것이라 말했었다.

그 정도의 행동이라도 취한 것이, 우리 집 은행나무가 아내에게는 앙심을 품지 않고 스스로 잘려 나가준 게 아닐까? 엉뚱한 상상을 한다.


새삼 아내의 행동이 보통을 넘는 위험한 일이었음을 확인받은 기분이었고, 그렇게 일을 무사히 치렀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따르니, 옆 좌석에 앉아 있는 아내의 손을 슬그머니 당겨서 토닥여준다.

집에 도착하였다. 늘 보던 은행나무 있던 자리가 새삼 휑하니 넓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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