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긁어 부스럼 낸 기분

정보를 미리 수집하다 보면

by 전희태
선창청소09.jpg 선창내에서 쓸어 모은 석탄을 빈 드럼통을 잘라 만든 통에 퍼 담아서 갑판으로 올려주고 있다.



우리 배의 캐나다 밴쿠버 기항 사실을 어느새 알아내었는지, 자신의 회사에게 주부식을 싣게 해 달라고 연락해 온 밴쿠버의 한 선식 업자에게, 그곳 기항 중 받게 되는 PSC와 BULKER INSPECTION에 관해 우리 배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가 있으면 통보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다시 온 연락에서 홀드 내에서 고공 줄타기까지 하며 구석구석을 뒤져보는 아주 까다로운 검사를 한다는, 완전히 겁주는 이야기가 한 페이지 분량의 정보로 날아왔다.

대부분은 알고 있는 내용이긴 하지만, 행여나 우리가 편한 쪽으로 도움이 될 어떤 정보라도 더 있을까? 바라는 마음에서 물어본 건데, 기분적으론 아무래도 안 하니 만 못한 긁어 부스럼 낸 일을 했던 것 같다.


모르고 안 보았으면 불안한 마음이나마 오히려 적었을 것을, 부탁까지 하며 알아낸 정보에 더욱 힘들어지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음에 입맛이 좀 더 씁쓸해진 것이다.


그런 통보를 해주고 한나절이 지날 무렵 그들도 우리의 심정을 짐작이라도 했는지 선식은 다시 연락을 해왔다. 먼저 알려준 것은 곡물 운반선에 관한 이야기이며, 우리 배 같은 광탄선은 그보다는 약하게 검사할 것이란 내용으로 검사관 사무실에 알아보니 먼저 실었던 화물의 찌꺼기는 그래도 모두 끌어올려야 한다는 당연한 꼬리말도 달고 있다.


결국 물청소는 아니지만 쓸어내는 선창 청소는 깨끗이 하기로 작정한다.

점심식사 후 과업에 전 선원을 동원하여 시작하니 가는 날이 장날이랄까 아침에는 없던 바람이 슬금슬금 일면서 옆 파도도 자근자근 일으켜 세운다.

그렇더라도 아직은 바람을 시작해볼까 하는 정도의 형편이라서 선체를 크게 흔들지는 않기에, 9번 창의 왼쪽 해치 커버를 열어주고 이미 빗자루 질을 해서 모아 놓았던 작은 석탄 더미를 쓸어 담아 올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을 조금씩 흩뿌려 주다 말다를 심심찮게 되풀이하던 날씨가 다시 평정을 찾아가고 있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우리 승조원들은 어차피 시작한 일, 배가 조금이라도 덜 흔들리는 시간에 얼른 끝내자는 한마음으로 더욱 바쁘게 움직인다.

석탄의 찌꺼기를 들어 올리고 내리는 일을 위해, 선창과 갑판 간에 워키토키를 통해 연락되는 음성을 듣고, 작업 사항을 파악해 가며, 필요하면 주의사항도 주기 위해 나도 워키토키 한 대를 지니고 있다.


현재 진행 상황을 짐작하려고 가만히 듣고 있던 내 귀에 이따금 천둥번개 치는 소리같이 -스톱-하며 급하게 윈치로 감아올리는 일을 정지시키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얼른 상황을 알아보려고 브리지 앞쪽 창문을 통해 현장을 내려다본다.

높이를 반쯤 잘라낸 드럼통에다, 하역작업을 하고 남겨진 석탄 찌꺼기를 선창에서 쓸어 담아 갑판으로 올려주는, 작업자들 간에 연락을 하며 감아올리고 내리는 일을 지휘하는 갑판장이 방금 선창에서 끌어올린 드럼통을 갑판 쪽으로 돌려서 내려놓으려는 작업에 들어 간 윈치 맨을 향해 소리친 것이다.


그런 작업을 얼마나 더 해야 하는가를 가늠해 보며, 작업을 계속해도 괜찮을 날씨인가를 알아보려고 해도실 옆에 설치된 기상 팩스 수신기 앞으로 간다. 좀 전 자동수신으로 작동시켜 두었던 수신기가 움직이던 소리를 내더니 이미 기상도 한 장이 나와 있다. 얼른 주워 들어 본다.

우리가 움직이고 있는 주위는 고기압이 평정해주고 지나간 자리라 별로 센 바람은 없어 보이고, 동해에서 또 다른 고기압이 우리 쪽을 향해 25노트의 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어 오늘내일 간에는 더 이상의 기상 악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9번 창과 8번 창 두 개의 선창 청소를 끝내고 오늘은 그만 하기로 작정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기온에 반응이 제 각각인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