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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더 오늘을

날짜변경선을 통과하며

by 전희태
Ȳõ-12(2909)1.jpg BEAUFORT SCALE로 5~6정도되는 해상상태, 바람이 앞쪽에서 오는 경우이라 배와의 접촉이 좀 시끄럽고 이따금 파도가 바람에 날려배위로 올라온다.


선창 청소가 마지막 단계에 다다르니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뿐인데, 기상상황은 녹록하게 도와주질 않고 BEAUFORT SCALE (주*1)로 7을 넘어설 만한 센 바람을 보내주고 있다. 이런 바람 따라 일기 시작하는 파도 때문에, 선창의 커버를 열어 놓고 선창 내부 청소를 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다.


평소라면 선창 청소할 엄두를 내지 못할 상황이지만, 우리는 지금 시간에 쫓기며 날씨도 결코 좋아질 것 같지 않은 초조감에 빨리 작업을 끝내려고 무리수를 두는 형편이지만 그러기에 안전에 최대의 신경을 세우고 있다.

허옇게 일어서는 파도가 굽이굽이 넘실거리며 뱃전을 춤추며 지나가지만, 그래도 작업하는 일이 가능한 건, 이 상황에서는 그나마 가장 바람직한 방향인 뒤쪽에서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이다.


파도가 바람에 동무해 주 듯 역시 뒤에서 쫓아와서 밀며 앞으로 나서는데, 배는 공선인 형편이라 횡요가 가장 적은 자세로 파도에 편승하면서 앞서 나가는 바람과 파도를 배웅하듯 달려가고 있다. 그래도 한 번씩 기우뚱거리는 몸짓이 생기는 것은 이따금 좀 큰 너울이 밀려와서 뱃전을 쓰다듬어 주기 때문이다.


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통에 열심히 쓸어 담은 화물의 낙하물인 석탄 찌꺼기를 갑판 위로 끌어올리는 모습을 브리지에서 내려다보며 그 개수를 셈한다. 그렇게 아침 여덟 시에서부터 저녁 다섯 시까지 점심시간만 빼고 계속한 작업으로, 어휴! 남아있던 5개 선창 중에 4개의 선창 청소를 끝내게 되니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삼켜주며 일과를 끝낼 수가 있었다.


자신의 내부를 모두 깨끗이 청소받은 배는 동쪽으로 계속 달리며 하루의 마지막 시간인 23시 59분 59초를 맞이한다. 이제 날짜 변경선을 몇 초 안으로 통과할 위치이므로 항해 일지에서는 그 시간에 다시 한번 17일을 맞이한다고 기록할 것이다.


어제가 17일이었는데 되풀이되는 17일로 찾아온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같은 숫자의 날을 되풀이 해 살아가는데, 만약 시간과 같은 빠른 속력으로 계속 달릴 수만 있다면 언제나 그 시간이 되풀이되는 셈이니, 영원히 사는 방법도 되겠지...


그렇게 날이 새었다. 밤새 지치지도 않고 계속 있어준 바람 덕에 너울이 제법 커진 바다는 자신의 위를 달리고 있는 우리 배를 요람에 실어 준 아이 달래듯 흔들어 준다. 바람 방향이 좀 바뀐 것 같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남은 선창을 청소해내야 하는 일이 남아있다. 과업 정렬이 끝나 3번 창 옆으로 모이는 사람들을 보며, 배의 해치커버를 열기 쉽게 하려고 쉼 없이 불어오는 서풍과 같이 동행하도록 선미에 바람과 파도를 받게 선수 침로를 동쪽으로 향하게 만들어 준다.


행여 크게 기우뚱대어 해치 커버를 열고 있는 일이 크게 잘못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해치커버는 무사히 잘 열렸고 즉시 해치 커버를 스톱퍼로 단단히 고박 해준다.

약 한 시간에 걸친 청소 작업 끝에 석탄 잔여물을 들어 올리는 마지막 드럼통이 올라온다.


-선창 청소를 하기는 해야 할 터인데....

하는 마음에서 그동안 들끓이던 속이 확 풀어진다.


그러나 결코 방심할 수가 없어, 마지막 해치 폰툰이 무사히 닫힐 때까지 침로를 조정해주며 해치커버에서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주*1 : 보퍼트 풍력계급. 정식 명칭은 Beaufort Wind Force Scale.

바다에서 풍력의 관측과 분류를 위해 1805년 영국의 해군 중령 프랜시스 (후에 해군 총사령관이 되었고 바스 작위를 받음)에 의해 고안된 풍력계급으로 현재는 0에서 12까지 13계급으로 나뉘어 있다.

본래는 완전한 장비를 갖춘 군함에 대한 바람의 영향을 근거로 하여 고안되었으며, 1838년에는 의무적으로 영국 해군의 모든 배의 항해일지에 기록하게 되었다.

그 후 일부를 변경하여 육지의 현상과 바다의 상태를 관측한 것을 분류의 기준으로 정한 뒤 1874년 국제기상위원회에 의해 채택되었고, 국제 기상전문(國際氣象電文)에서 사용했다.

본래 작성된 보퍼트 풍력계급에는 풍속에 대한 언급이 없었으며, 20세기에 들어서는 이들의 상관관계를 밝히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1912년 국제기상전문가위원회에 의해 이루어진 시도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1921년 G. C. 심프슨은 이것을 공식화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1926년 위원회에 의해 채택되었다.

1939년 6월에 국제기상위원회는 6m 고도에서 풍속계에 나타난 값들을 표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값들은 그 이전부터 11m 고도에서의 풍속계 값을 기준으로 한 계급을 사용했던 미국과 영국의 공공 기상청에 의해 즉시 채택되지는 않았다. 13~17의 보퍼트 풍력 숫자는 1955년 미국 기상청에 의해 첨가되었다.

지금은 이 계급이 전문 기상학자들에 의해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풍속을 측정하는 보다 객관적인 방법에 의해대부분 대치되었지만, 넓은 지역의 바람 특성을 측정하는 데는 여전히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풍속계가 없는 곳에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보퍼트 풍력계급은 육지와 해양에서의 다른 물건에 대한 바람의 효과를 측정하고 기술하기 위해 사용될 수도 있다. (인터넷 사전에서)


선박의 항해일지에는 아직도 이 풍력계급으로 바람의 세기를 표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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