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겪게 되는 겹쳐지는 일
선박이 항해를 할 때 앞쪽에서 바람이나 파도가 불고 있다면 달리는 선속 까지 합쳐 저 더욱 센 바람이나 파도가 된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아무리 뒤에서 오는 바람과 파도라 해도 역시 배를 흔들어 주는 일은 어쩔 수 없는 법, 이렇듯이 배 안에서 만나게 되는 외부 영향력은 제일 처음 선박의 추진체인 프로펠러에 끼치는 과부하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를 먼저 알고 대처해주는 장비가 주기관의 OVER SPEED TRIP 장치이다.
그것은 공선으로 순항 중인 선박에서 파도의 높이에 따라 꽁무니가 들려져서 프로펠러가 충분한 침하를 못 할 경우의 공회전이 엔진에 과부하를 줄 수 있기에 이런 약점을 보완하려고, 꽁무니에 달려든 파도의 높이에 따라 프로펠러의 회전수가 자동적으로 조절되도록 만들어 놓은 장치인 것이다.
파두에 밀려 꽁무니를 들썩하다가 삐-하는 경보음을 내며 기관의 RPM을 뚝 떨어뜨리게 되는데 파도가 심한 때엔 기관이 정지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그런 식으로 주기관이 정지해버린다면, 배로서 가만히 서있음이 불가한, 파도 밭에서의 일이기에 선체와 인명에 큰 피해를 줄 우려도 생각해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어제 오후부터 이 장치가 활발히 작동을 계속하니, 그에 비례하여 기관사들은 노이로제에 빠져 들 정도로, 굉장히 신경을 곤두세우고 당직에 임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던 중이다. 옆방인 주방은 이미 배식을 모두 끝내 준 터라 조용해야 할 텐데 아직도 공기를 배출시키는 환풍기 소리가 너무 요란스러워 귀에 거슬리게 크게 들려오고 있다.
-저 소리 너무 크지 않아? 스위치를 좀 껐으면 좋겠네.
들고 있던 수저를 그대로 멈추며, 이야기를 했다. 일항사가 식사 중이던 숟가락을 놓고 주방으로 갔다.
저녁 식사 메뉴인 소고기 구이를 전열기 불판 위에서 구워내느라고 연기가 좀 퍼졌었고, 그 연기를 밖으로 빼주느라고 계속 돌리고 있던 환풍기였는데, 이제 어지간히 고기 굽는 일도 끝나가니 스위치를 끄는 것이 어떻겠냐고 묻는 것 같다.
대답이야 들으나 마나 조리장은 그렇게 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터였고, 일항사가 자리로 돌아와 식탁에 앉으려고 의자를 끌어당기던 바로 그때였다. 환풍기가 큰 소리를 멈추면서 조용해지는데, 마치 그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경보음의 삐-이 하는 소리가 곁들여 나왔다.
3 기사가 저녁 식사 교대를 해줘서 식사 중이던 당직 기관사인 일기사가 그 소리에 그냥 벌떡 일어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일기사가 일어나는 것은, 기관이 <오버 스피드 트립>에 걸려서 순식간에 기관이 멈추게 되어 조용해진 것으로 알고, 당직사관의 입장이니 기관실로 빨리 내려가려는 것 같아 보였다.
-아니야, 엔진이 오버 스피드 트립에 걸린 게 아니라, 그냥 경보음인 것 같아,
내가 얼른 그렇게 말을 걸어주니, 일기사는 일어서려던 몸을 엉거주춤 구부린 채 나를 쳐다본다.
울려오던 경보음도 당직자가 경보 장치를 확인했는지 이미 멎어있고, 그렇게 시끄러운 환풍기를 끈 보람을 느끼게 사방은 조용해 있다.
-봐! 환풍기 스위치를 끈 것하고, 경보음이 발령된 것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으로, 아주 동시에 일치하여 생긴 일이잖아.....
-만약에 엔진이 꺼진 것이라면, 지금 몸으로 느끼는 쿵쿵거리는 감각이 완전히 없어져야 하잖아!
이런 나의 의견에 수긍한 일기사도 편하게 앉은 자세를 취하며 다시 식사에 임한다.
경보음이 귀에 익고 몸에 배어있는 형편에서, 지금은 오버 스피드 트립 장치가 활발히 작동하는 날씨라, 잦은 경보가 혹시 기관 정지를 알리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까지 곁들이고 있었기에 그런 반사 행동을 보인 것이다.
황천이 많은 북태평양 항로가 우리 배를 환영(?)하려고 보낸 신호라고 맘은 먹어 보지만, 그러드시 반가움만으로 표시하기엔 참으로 지루하고 어지러운 환영이 계속되고 있는 북태평양의 항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