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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도 팔자

날씨만 생각하면 떠 오르는 걱정

by 전희태


C6ħ4(6375)1.jpg 보트 데크에서 떠 오르는 해를 봄


은근히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발달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우리 배 뒤쪽에서 우물거리던 북태평양 저기압이 우려했던 대로 커지는 양상이지만, 그래도 며칠은 더 있어야 만나질 것으로 기대하며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벌써부터 30노트를 넘나드는 풍력이, 갈 길 바쁜 우리 배의 어깨를 잡아채며, 무따래기 같은 행패를 부리려는지, 빠른 행보로 우리를 따라잡으려는 심보마저 보이고 있다. 차라리 우리를 앞서서 당장 지나가 버렸으면 바라는 심정이 솟구친다.


어제 회의를 하여 오늘부터 진행하려던 용접 일이 할 수 없게 되고, 대신에 기관실내에 발라스트 파이프가 새는 것을 찾아내어 임시 수리하는 실내에서 하는 일로 과업을 진행시켜 놓고 방으로 왔다.

잔뜩 찌푸린 날씨 덕에 사방이 어두컴컴하다.


오른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나선 옆 파도가 뱃전을 치고 올라오면서 포말을 흩날리고 있다.

더하여 발라스트 해수를 교환하는 작업으로 인해 탱크를 흘러넘친 해수까지 바람에 날리는 흰 포말에 보탬을 주어 마치 주위가 자욱한 는개에 흠뻑 빠져든 모습처럼 적셔있다. 사람 마음의 씀씀이가 기상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새삼 느껴본다.


해가 하늘에 떠 있어야 하는 시간인데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두침침한 날씨는, 그 자체가 벌써 기분을 주눅 들게 만들고 쪼그리게 하는 것으로 며칠씩 이런 날씨라도 계속된다면 몸은 움츠러들고 위장에서 쓴 물이 분비되는 걸, 스스로 감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딘가 기상상황이 나아지는 기미라도 있겠지 바라는 마음으로 새롭게 나오는 기상도를 받아 보기로 한다.

직은 동반구 쪽 동경 160도선 부근, 우리가 며칠 전 지나온 곳에서 크고 있는 저기압은 980 hpa(어느새 978 hpa로 내려가 있음)을 밑돌아 내려가는, 커지는 모습으로 변하면서 20노트의 속력으로 우리 코스와 마찬가지 EAST 방향인 090도로 가까이 접근하려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그 저기압과 우리 배 사이에서 역시 동진하는, 전선을 동반한 작은 저기압이 우리를 추월하여 앞서 갔음도 보여주고 있다. 오늘 오전에 바람을 불게 한 장본인임을 알려주는 기상도이다.


일단 전선이 앞서 나가버렸으니 날씨는 당분간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오히려 나아질 것을 기대 한대로, 푸른 하늘이 한쪽부터 터지면서 반공중에 떠 있는 해의 모습도 구름 사이로 보여주기 시작하고 있다.

바람 역시 약해지며 방향을 뒤로 돌아 틀어주고 파도마저 잦아들기 시작하여 갑판에 오르던 비말도 적어지니, 안달하던 마음에 어느덧 여유가 깃들여 온다.


태양.

지구 상의 삶을 지닌 모든 생명체의 따뜻한 어머니라 일컬어지는 태양이 뿌옇게 흩날리든 파도의 부스러기를 환하게 치워내주며 음울했던 마음을 걷어 내주니, 꽁하니 황천 상황의 걱정에 움츠려 있던 스트레스가 절로 날아가 버린다.


걱정해도 소용없는 일, 왜 미리 사서 걱정하는가? 하는 반문을 내며, 곧 뒤쫓아 올 저기압에 대해서는 그때 가서 볼일이지만, 우리와 사이좋게 지나치리라는 기대를 갖도록 마음을 토닥여본다.

결코 내 바람 대로만 되지는 않겠지만 그 움직임을 아예 알아볼 생각도 안 하고 도외시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 두면서도, 걱정은 하지 말자고 다짐해보려는 것이다.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사물을 대했을 때, 지금까지 살아온 내 생활에서는 그 바람대로 이루어진 일들이 많았다. 새삼 손가락을 꼽아 그런 사실들을 헤아리며 걱정하려는 마음을 푸근하게 내려놓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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