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당사자 모두가 사고를 위해 도움을 준 것 같은 상황.
회사는 매달 선박에서 발생한 사고의 집계를 내어 사선 전체에게 알려주고 있다. 당연히 우리 회사에서 발생한 선박사고가 주류를 이룬 내용이지만, 개중에는 타사의 사고 예들 중, 한 두건을 언급하여, 비슷한 환경으로 운항되는 사선들에게 열람하게 하여 주의를 요망하기도 한다.
지난달에는 전 사선이 소소한 사고도 없이 무사히 잘 운항되어 사고 통계를 잡을 것이 없었다며, 앞으로도 그런 추세가 계속 이어지고 그 기세까지 유지하여 무사고 무재해의 행진을 하자고 다짐을 하며 기뻐하던 격려성 공문으로 전해 왔었다.
그런 공문을 받고 현장의 일인으로 흐뭇한 마음을 가졌던 게 도대체 몇 날이나 지났다고, 또 ‘쯧쯧’ 혀 찰 일의 사고가 발생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얼마 전 사고가 났던 같은 배에서 생긴 일로 말이다.
몇 개월 전에 충돌사고를 내었던 O O 호가 이번에도 같은 선장이 승선 중에 도선사를 태우고 도선구에 접근 중에 상대의 PCC 선과 충돌하는 사고가 난 모양이다.
우리 회사 배가 좌현 쪽 1번 선창 외판의 UPPER DECK에서부터 BILGE STRAKE 까지 SET IN(파공 직전 상태) 당한 상태란다.
수리에 필요한 강재(鋼材) 65톤에, 총 공기(總工期) 25일, 수리비용은 약 84만 불에, 총 DETENTION 32일이 예상되어 자그마치 116만 불의 비용 발생이 일차 예상되는 모양이다.
물론 보험으로 당장의 경비야 커버될지 모르지만, 그만큼 차후의 보험금이 높아지면서 회사의 이미지는 이미지대로 떨어질 일이니 안타깝기만 한 상황이다. 그나마 <인명 피해가 없으니 참으로 다행입니다.>라는 위로성의 코멘트를 하기에도, 면목 안서는 일인 것이 비슷한 사고를 얼마 전에 이미 해두고 있는 배에서의 사고라는 점이다.
비슷한 일의 재발을 방지받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엿보이는 공문이 왔다. 사고 개요를 알리며 무엇이 잘못되어 일이 생긴 것인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 짚어 보자며 답답한 마음 풀어낼 길이 없는 담당 부서장의 푸념 섞인 하소연이 행간에 보이는 사신 같은 공문은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원인 분석을 해서 알려주십사 하는 말로 끝을 맺고 있었다.
그 공문에 대한 회신을 제대로 발송하지는 않았지만, 사고가 난 장소 부근을 예전에 내가 기항했던 기억을 더듬어가며, 이번 사고 상황에 대해 나한테 알려진 일들을 가미하여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보는 시간은 가져봤다.
사고가 난 양선 모두 도선사를 태우고 있는 상태로 그 항구의 출입을 위한 도선구로 접근하던 중이지만 기본적으로 양상이 좀 다른 점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 선은 출항 선으로 사고지점 부근에서 항내 도선사를 내려주는 작업을 하려던 중이고, 본선은 입항 선으로 외항 도선사가 승선 중, 교대할 항내 도선사를 승선시키려고 도선사가 승선한 도선선으로 접근하려 사고지점 부근으로 계속 가까워지고 있던 중이었다.
그곳은 조류가 센 곳으로, 사고 당시도 정선한 배라면 많이 밀릴 수 있는 곳이지만, 기상 환경은 시정이 좋았던 점으로 미루어, 미리 못 봐서 사고가 날 나쁜 환경은 아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단지 시간이 새벽 세 시 부근이라 사람들의 판단 능력이 좀 저하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양선의 도선사 모두 공교롭게도 PCC선(Pure Car Carrier, 자동차 운반 전용선)이 바람이나 조류에 약한 점을 간과하는 사고방식의 저하에 지배받았다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더하여 사고를 돕는 책임 질 일로, 본선의 도선사가 너무 안이하게 양선의 접근 상황을 생각하여, 풍조류에 약한 상대 선이 자신의 앞쪽을 통과하여 간다는 일을 인정해 준 점이 맘에 걸리는 대목이다.
그렇게 양해해주었으면, 기관 사용 등 여러 가지 협조 동작을 철저하게 이행할 의무가 생긴 것이니, 충분한 거리를 두고 상대 선이 무사히 빠져나가게 해주어야 하는데 그런 대목을 소홀히 대했던 것 같다.
당시 사선 도선사의 워키토키 통화에 그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는 말을 들은 듯한데, 만약 그런 일이 사실이라면, 이 사고에 대한 책임의 큰 부분을 가져야 될 것이라는 판단이 선다.
어쨌거나 가까이 접근하는 수상의 모든 선박/물체는 우선적으로 충돌/접촉의 위험이 있는 것으로 여기어 조심하여 본선 운항을 하여야 하는데, 너무 안이한 대응으로 막연히 빗겨서 가겠지 하는 심정으로 양선 모두 자신들이 하려고 하는 도선사의 승하선만 염두에 두고 접근을 계속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브리지에 있던 사람들 중 어떤 한 사람이라도 충돌이 생기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양선의 접근을 걱정하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내어 놓아, 좀 더 빠른 시간 안에 확실한 피항 동작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면, 충돌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란 만약의 기대를 가져 본다.
사실 아무도 그런 생각을 안 했거나, 했어도 행동을 취하지 않아서, 결국 필연의 수순을 밟아 충돌사고를 이루는데 한몫을 거들은 것이라는 심증이 가기 때문이다.
어떤 사고 든 발생 하고 난 후, 사고를 전후한 시점의 사람들과 환경을 사고와 관련시켜 살펴보면 모두가 그 사고를 위해 거들고 협조한 행동의 결집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중의 어떤 한 가지의 일이라도 사고를 외면하는 행동으로 임해졌다면, 사고는 비껴갈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그래서 항상 남는 것이다.
문득 오래 전인 일항사 시절, 선수루 부서에 스탠바이 한 상태로, 일본 간몬해협을 통항하다가 야하다 제철소 쪽에서 출항하여 나오던 선박과 충돌사고를 가졌던 경험이 생각난다. 당시 우리 배 선수루에는 일항사인 내가 스탠바이 상태로 갑판장과 선수루 팀원들과 함께 있었고, 브리지에는 일본인 도선사와 본선의 선장, 이항사, 삼항사, 조타수와 실항사까지 근무하고 있었던 환한 낮 시간이었는데 사고가 났던 것이다.
그 사고를 당한 이후, 나는 본선을 포함하여 사고가 난 양선의 당직자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충돌의 위험을 생각하고 그 방지를 위한 행동을 확실히 보여주었다면 그 충돌 사고는 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