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과 철야작업
시도 때도 없는 수리 작업
기관실 주기 수리 작업을 준비중인 모습저녁 식사 후, 선내 노래방을 찾아가 몇 곡 부르며 모처럼 기분을 이완시키며 편안함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실내의 불이 모두 꺼지며 비상등이 켜진다.
아직 노래방 기기에 올려놓은 신청곡에 대한 화면은 그냥 남아있어 별일 아닌가 생각하는데 어느새 화면이 찌그러지더니, 불이 나가며 비상등 한 개만이 달랑 남은 어두운 방 안으로 만들어 준다.
발전기에 이상이 다시 생긴 모양이다. 발전기로부터 전력공급을 받아 운전하는 주기관도 덩달아 꺼지며 당연히 들려야 하는 소리들이 잠들어 버린 조용한 선내가 되어버린 것이다.
마이크를 잡아 노래를 부르며, 같이 즐기고 있던 기관장이 서둘러 방을 빠져나가 기관실로 내려가는 걸 확인하며, 나도 일어나서 급하게 방으로 올라왔다.
방의 컴퓨터를 켜 놓고 있던 것을 기억해낸 것이다. 지금 이런 식의 전원 차단과 재공급이 이뤄지면 컴퓨터의 차후 작동에 즐겁지 않은 일을 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꺼지기만 했고, 다시 전기가 들어와서 부팅을 하는 일은 아직 시작되지 않고 있다. 우선 안심하고 모든 전원 스위치를 꺼주고 다시 브리지로 올라갔다.
며칠 전 똑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는 비상 발전기가 즉시 가동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자동으로 구동되어 최소한의 비상등은 들어와 일차 조명이 남아 있게 되어 각자 할당된 비상부서를 찾아가는 일이 깜깜하게 어둡지 않게 된건만도 그나마 다행이다.
부리나케 기관실로 달려가는 기관부원들의 바쁘게 움직이는 발자국 소리의 소음도 멎었다. 어느새 발전기를 재부팅시키는 작업이 이뤄지더니, 이어 주기관도 시동되어 다시 항해에 복귀하는 걸 보며 한 숨 돌리고 브리지를 떠나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항사의 부르는 소리가 방 밖에서 들리고 있다.
-선장님, 선장님,
-왜? 무슨 일이야?
이미 들어가 있던 침실 방문을 빼 꼼이 열며 물으니,
-기관에 이상이 생겨 피스톤 발출 작업을 해야 한답니다.
이번에는 주기에 이상이 생긴 모양이다.
-그래? 알았어. 브리지로 다시 올라가야겠구먼.
-그런데 작업 인원을 보충한다고 갑판부 인원도 차출해 달라는데요.
자신의 당직 시간이 지났는데 연락을 받은 일항사는 그 자리에서 보고를 끝내고 싶은 모양이다.
-작업이 길어질 모양이군, 몇 시간이나 걸린대?
-한 여섯 시간 예정한답니다.
-알았어, 나는 브리지에 올라가 볼 테니, 작업보조할 인원이나 수배하고 자네는 쉬게 나.
-예, 선장님 수고하십시오.
일항사는 얼른 인사를 하고 자기 방으로 떠나고 나는 브리지로 올라갔다.
갑판 부원을 차출하려는 일 때문에 일항사에게 먼저 알린 모양이지만, 이렇게 되어 엊저녁 10시 42분부터 기관을 정지시키고 여섯 시간 걸릴 것으로 예정한 1번 실린더의 TELESCOPE TUBE PIPE의 교환 작업은 시작되었다. 직접 힘을 써야 하는 사람 손이 모자라 인원의 지원 요청까지 있어 갑판부의 데이-워크팀까지 가세된 작업 팀은 밤을 새워가며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좀 늦은-이른 시간도 되는- 시간이지만, 수고하는 이들을 위해 조리장에게 시원하게 마실 것을 준비시켜 기관실로 보내주도록 지시하고 기다렸지만 아무래도 그 지시사항이 금세 이뤄질 것 같지가 않다.
따지려고 하는데 마침 기관실에서 수리가 끝나 기관을 사용하겠다는 전화가 왔다. 새벽 2시 40분이다.
재조립까지 끝내고 기관 시동을 걸어 다시 항해에 복귀하겠다는 보고에 이어 잠시 후 기관의 시동이 걸리는 걸 보면서, 조리장에게 가졌던 작은 불만 사항은 삼켜버리고 그냥 내 방으로 내려왔다.
방에 들어서면서 기관실로 전화를 걸어 실기사를 내 방으로 보내주도록 요청하였다.
CAPTAIN'S PANTRY 냉장고에 내 개인용품으로 준비하고 있든 시원한 콜라 한 박스를 꺼내어 찾아온 실기사 편에 기관실로 보내 주었다.
나는 작업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니까, 밤샘 작업하느라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작지만 시원함을 나눠주어 나의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알리고 싶은 배려였다.
긴급으로 생긴 일은 어쩔 수 없이 꼭 끝을 내어야 하는 법(?) 속에 살아야 하는 뱃사람들의 생활이니, 세상 사람들 반은 당연히 자고 있는 시간이건만, 이렇듯 깨어서 지새우는 하루를 보태 주고 있는 거다.
수고 많이 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