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서로 바꿔 볼까
파푸아 뉴기니 연안을 몇십 마일 떨어진 해상에서 북상하면서, 터무니없는 나라 땅 바꿈을 상상해 보고 있다.
간간이 흩뿌려주는 빗방울을 맞으며 이른 아침 시간에 파푸아 뉴기니의 동쪽 끝단을 왼쪽으로 끼고 북상하며 VITIAZ STRAIT에 접근하고 있는 중이다.
이 골목길 같은 해로를 빠져나가면 바로 비스마르크 바다로 들어서게 된다.
일항사의 아침 당직이 끝나는 교대 시간이 가까워지며, 좀 전까지 오락가락하던 비가 본격적으로 그쳐 투명하게 변한 대기가, 멀리 떨어진 파푸아 뉴기니의 육지 모습을 너무나도 선명하니 보여줘, 마치 가깝게 당겨 준 풍경화를 보는 느낌이다.
이런 풍경을 보면서 이곳을 지나칠 때면, 언제나 그곳에 들려서 쉬었다 가고 싶은 푸근한 생각이 들기에 어디쯤에 들려서 쉬어갈까? 맘에 드는 곳을 찾아보는 심정으로 자주 쌍안경을 눈에 대어보는 항해를 늘 하곤 한다.
산 중턱 삼분의 일 정도의 높이까지 개간된 농토려니 느껴지는 조금은 정렬된 모습이며, 그 앞으로 병풍처럼 둘러 쳐진 야자수가 있고, 뒤쪽의 산은 아예 검은 초록 일색의 밀림으로 덮여 있다.
그 안 짙푸른 밀림이 잘록 파여 보이는 어느 계곡 절벽에는, 하얀 사다리 같은 모습의 폭포가 시원한 물줄기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있지만, 쌍안경으로 봐서야 겨우 폭포려니 짐작하며 확인되는 모습이다.
이 산의 정상부가 개어 있어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씰루엣으로 보여준 것이, 딱 한 번이란 기억으로 남아 있듯이, 오늘도 산의 칠 부 능선쯤의 산허리에 걸쳐서 이어진 뭉게구름이 산 정상을 마냥 가려주고 있어 마치 하얀 꽃화환을 두른 듯 등진 햇살이 더욱 새하얗게 빛을 발해주고 있다.
그 모습은 산허리 폭포에 물을 보급해 주고 있음을 뽐내려는 모양으로도 보이어 늘 있어 보이는 구름의 할 일이 빗물을 내려 줘, 폭포수의 공급을 항상 원활히 하는 게 아니겠나 하는 생각 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은 아스라이 떨어져 항해하면서 관찰해 보는 것이기에, 사실 해안선 가까운 곳의 사람 사는 모습은, 지구의 둥근 증거를 꼽아 주려는 속셈인가, 수평선 너머로 내려서 가려주고 있으니 보이질 않고 있다.
-저 섬 전부 다하고 우리나라하고 그대로 바꾸면 어떨까?
다시금 떠 올려 보는 상상이다.
말이 섬이지, 지금 쳐다보면서 바꾸면 어떨까? 생각해 보는 곳은, 파푸아 뉴기니 전 국토 462,840 km2의 85%쯤인 393,000 km2를 차지하는 뉴기니 섬의 동쪽의 일부이다, 섬의 나머지 반쪽인 서쪽은 인도네시아의 이리안자야 로서 섬 전체의 크기는 785,753km2가 되는 그린란드 다음의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넓이로도 한반도의 4배가 넘는 땅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기 와서 살면 저렇게 놔두기야 하겠어요?
너무나 개간이 미미하고 자연 상태로 남겨진 모습이 부러우니, 개발에 열을 올리는 우리들의 무분별한 난개발을 떠 올리며 해보는 말이다.
-처음엔 그럴지 몰라도 세월이 가면 사람들이 기후와 풍토에 지는 것 아니겠어?
난개발도 어느 정도지 나중에는 이곳의 풍토에 인간이 지게 될 거니 결국 여기 사람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데로 생각의 가닥이 잡힌 거다.
-하긴 열대지방 쳐놓고 잘 사는 나라가 없으니 그렇게 변화되기가 쉽겠네요.
-그런 것이 어쩌면 인간답게 잘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어, 죽어서 갖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죽자 살자 돈 버는 데만 눈독 들이는 우리들이 문제이지 뭐,
호기심 반 부러움 반으로 우리나라와 바꿨으면 어떨까? 해 놓고는 그들의 개발하지 못한 거의 자연 상태의 모습에서, 어쩌면 그렇게 사는 삶이 제대로의 삶인 것 같다고, 상상은 원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나이를 얼마나 먹었는지 모르는, 아니 알려고도 안 하는,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을 자는, 그런 걱정 없는 삶을 살기에, 일하고 돈을 받으면 그 돈 다 소비하며 즐기는 동안에는 일에도 불참하며, 결국 다 쓰고 나야 다시 일하러 나오는 삶을 산다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세상이다. 어쩌면 그런 유유자적하는 생활습관이 가장 욕심 없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복한 모습을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현대인이 받는 온갖 문명의 스트레스는 결코 받지 않지만, 가장 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여겨지는,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는 내 맘 자체가 이미 나를 덜 떨어진 문명인으로 나타내 주는 표징이겠지.
우리 민족이 이런 곳에 터전을 잡고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하는 식의 상상을 해보던 그루터기가 오늘도 여지없이 나타나서, 두서없는 몇 마디로 당직 서던 일항사와 농담같이 지껄이며 단조로운 항해의 무료함을 달래고 있다.
어쩌면 열대 해역의 이런 비슷한 장소들, 예를 들어 세계 제3의 큰 섬인 보르네오 섬을 지나칠 때에도, 땅은 넓으나 별로 개발되지 못하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부러움을 가져보다가 그곳이 우리 것이었으면 싶은, 욕심스런 미안한 마음을, 지금 우리 것과 바꾸었으면 하는 좀은 선한 마음으로 퉁치고 지나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