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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所不爲에서 시키는대로

선장이라는 직책

by 전희태
_4081019.JPG 싱가포르의 모습


-꿈 깨거라, 지금이 어떤시대인데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

선장의 직책에서 할 수 있었던 일들을 속으로 짚어가며 신나는 상상을 하던 중 또 다른 내가 상상 속의 나를 보면서하는 말이다.


-그래 내가 지금 생각한 것은 아마도 200 년도 더 전에 돛을 단 배로 세계를 누비던 시절의 이야기일 터이니 꿈이라 해도 할 수 없지 뭐!

그런 돛단배 시절에는 나와 같은 직업, 즉 선장이란 직책의 직업은 어쩌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가진 직업중의 하나였을 거란 생각을하며, 마치 내가 그때의 선장이나 된 듯 상상을 즐기며 신(?)나는일들을 하나씩 꼽아보고 있었다.


배 안에서의 모든 일을 선장의 독단적인 결정 하에 처리해 나가야 하는 입장이니 그가 조금이라도 비뚤어지거나 독한 마음을 가지고 일을 했다면 독재적인 요소가 가미된 인권을 유린하는 일도 있었을 것이지만 어쨌든 파워를 가지고 남들을 리드해 간다는 건 남자로선 해 볼만 한 일이 아닌가?


허나 나의 상상은 그렇게 나쁜 독재적인 결정을 내리는 잔혹한 선장의 이미지가 아니고 모든 일을 순리로 풀어나가려고 노력하며 함께 하고 있는 동료들의 권익을 조금이라도 더 신장 시켜주려고 애쓰는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인자하지만 권한이 많은 선장을 그려보고 있었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으니 그런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선장을 있게 만든 배경에는 당시의 선장은 거의 다 선주(船主)를 겸한 선장이 많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따라서 배를 지휘하게 되면 만나게 되는 기상 뿐만이 아니라 해적(海賊) 등 인위적인 모든 일과 또 이들 일에 어쩌면 목숨까지 담보하는 위험성조차 포함하면서 항해를 완수 완성시켜야 했으니, 자연 큰 권력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바람도 잦아들고 파도도 그에 따라 조용한 기분 좋은 오후. 식후의 나른함 속에 상상을 즐기던 중 이메일을 열어 본 통신장이 통지문을 가져다 내방 앞의 편지함에 걸어주고 간다. 회사로부터 연가자에 대한 회신이 다시 온 것이다.


헌데 여기에 배에서 연가나 하선을 요청하지 않은 두 사람의 거취가 언급되어 있어서, 지금껏 상상하던 옛 선장들의 권위가 순간적으로 도전 받은 것 같아 씁쓸한 고소를 짓게한다.


한 사람은 갑판수로서 아직 내릴 때가 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선박으로 전선 시키려고 내리라는 지시이고, 그 자리에는 아직 승선 날짜가 확정되지 못하고 있는 중국 선원(교포)으로 교대 시켜준다는 단서이며, 또 한 사람은 바로 오늘 날짜로 승선 10개월이 된(공식적인 연가 신청이 가능한 승선 일수임) 기관수 직급의 선원으로서 회사의 인력 수급상 연가를 사명으로 부여하니 하선하라는 이야기이다.


현실에서 선장이란 지위를 수세기 전의 그 화려하게 각광받던 자리와 혼동하는 것이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너무나 뒤쳐져버린 현실의 쪼그라든 모습이 그 시절에 화려했던 만큼 더욱 더 초라하게 대비되는 걸 어쩔 수 없이 바라보기 밖에 할 일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심정이 더욱 나를 왜소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현실의 세상은 이제 선장이란 직책을 선주의 명령을 받아 배를 안전하게 운항하는 하나의 기능적 기술자에 지나지않게 변화 시켜버린 것이란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선주로부터의 지시가 수시로 언제 어느 곳이라도 즉시 전달될 수 있게 통신이 발달된 시대이니 어찌 보면 기술자도 못되는 단순 기능직으로 더욱 내려갔다고 보여 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너무 극단적으로 표현하며 그런 식으로 보게 되니 선장이란 이름이 허울 좋은 껍데기뿐으로 한없이 초라한 별 볼 일 없는 직업이란 이야기로 되어 버리는 게 아닌가?

그렇게만 본다는 것은 내 스스로를 너무 비하하는 부정적인 관점 뿐이니 그럴 수만은 없고 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억지를 부려서 라도 돌려본다.


<그래도 최후의 승리는 보병>이라는 군대 이야기를 떠올려 보이며 외부의 도움이 불가능한 경우 <배 안에서의 마지막 결정은 선장>에게 있다는 점을 지금의 세월에서도 역시 유효한 일로 인정하고 있으니 선장의 자리가 그래도 아직은 해볼만하고 볼품이 있는 자리로 돌아와 버리는구나!


그렇기는 해도 옛 꿈에선 깨거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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