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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 대비 작업

미리 대처하려는 마음

by 전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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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사이가 고비일 것으로 여겨지던 폭풍의 내습이 예상대로 찾아왔다.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던 것이지만 찾아왔다 하면 파도를 일구어 눈앞에 나타내 보이고, 자신과 지나치며 만나는 모든 사물에게 억지로 부딪혀서 '휘이-잉’ 거리는 소리를 불어내게 하여, 자신이 세상에 존재함을 과시하려는 듯 그렇게 폭풍이 찾아온 것이다.


보퍼트 스케일(주*1) 8에서 9(초속 17.2-20.7m/sec. 과 20.8-24.4 m/sec. 사이의 바람) 정도의 바람을 만날 것이라는, 항로 추천을 받고 있는 항로 예보 회사 K.S Weather의 코멘트가 마냥 괴로운 심정을 만들어 준다. 그렇기는 해도, 지금껏 그들의 추천대로 항로를 유지하며 항해를 체험한 바로는, 언제나 실제 만나게 되는 상태보다는 좀 과한 쪽으로 황천 정보를 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어느 정도는 받고 있다.

이번에도 그런 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마저 갖게 되었고, 실제로도 그런 기미를 느끼며 이 황천을 맞이하고 있다.


항로 예보 회사가 그렇게 하는 장삿속은, 마치 의사들이 환자 가족에게 환자 상태를 알릴 때, 조금은 힘든 쪽으로 일러주어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는 것 과도 일맥상통하는 일인 듯싶다.

하나 조용하던 날씨가 슬슬 파도를 높이며, 바람소리도 바이올린의 G선 음으로 점점 끌려 올라가는 판국이다. 어느새 밤까지 찾아오니 어두워지는 사위따라 마음마저 음울해지며 소름 돋는 공포마저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서며 말끄러미 내 모습을 살펴보는 듯하다.


어젯밤 10시가 지나 잠자리에 들어야 할 무렵, 아직 날씨는 괜찮았지만, 어딘가 불안한 마음의 그루터기가 침실을 마다하고 사무실에서 서성거리며 시간을 축내게 만들고 있었다. 그때 문득 낮에 봤던 프로비전 크레인의 상태가 머리에 떠오르며, 그대로 놔둔 상태로 황천을 만나게 되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리나케 브리지로 올라갔다.


-3 항사, 기관실에 전화를 걸어 프로비전 크레인을 고정시키라고 연락해라.

느닷없는 내 지시사항에 3 항사가 멀뚱한 모습을 보이며 쳐다본다.

-어제 사용하고 나서 제대로 고박을 안 한 것 같았어.


며칠 전 기관부에서 그 크레인을 사용했는데, 쓰고 나서 다시 고박을 시키지 않고 그대로 놔둔 것을 본 기억이 그때 떠 올랐던 것이다. 만약 더 이상 묶어주지 않고 그냥 놔두고 있다가, 황천이라도 찾아와서 심한 롤링이라도 하게 되면 틀림없이 크레인이 저 혼자 구르다가 물에 빠질 수도 있다는 상황이 예상된 것이다.


연락을 받은 기관실에서는 3 기사만 혼자 나와서 그 일을 해내려는 소극적인 대응을 한다. 우선은 브리지의 당직사관인 3 항사한테 3 기사를 도와주라고 내려 보내주며 그 부근의 조명등도 모두 켜 주었다.

크레인의 고박 작업을 위해 항해, 기관의 두 당직 사관들이 바람이 휘몰아치는 선실 밖 후미 갑판의 어둠 속에서 잔뜩 웅크린 채 어슴푸레 비치는 불빛에 얼찐거리며 희뜩희뜩 보였다 말았다 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춥고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한참을 그렇게 작업하고 돌아온 3 항사가 스토퍼는 잠가주었지만, 카고 와이어는 감아지지가 않아 잠그지 못한 채 그대로 두고 올라왔다는 보고를 한다.

못마땅한 마음에 혀를 끌끌 찾지만, 속에서 나오는 욕은 참는다.

지금 시행한 작업도, 먼저 번에 한 일의 뒤처리를 안 하고 팽개쳐 두었기에 발생한 일인데, 또 일하고 난 뒤처리를 철저히 못하였다니, 다시 이런 밤중에 위험한 작업을 하여야 한단 말인가?

몇몇 사람들이 행한 답답하고 한심한 행동에 대한 욕이 앞서는 심정 때문에, 그런 일을 벌여 놓음에는 아무런 책임 질 일이 없는 애꿎은 3 항사가 나의 신경질 난 잔소리 덤터기를 덮어 써야 할 형편이다.


욕하기에 앞서 일의 마무리를 단단히 해 두기 위해 정식으로 기관부에서 일할 사람을 내고 갑판장도 나서서 제대로 고박 시키도록 새롭게 명령을 내렸다.


결국 내가 항상 부르짖는 <제자리로 돌려주기 운동>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한 순간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렇게 준비를 해 두었고, 지금은 나빠지는 날씨를 만나고 있는 거다.



주*1 : 보퍼트 스케일


등급 명칭 해상상태 육상 상태 풍속 파고

영어 (m/sec) (m)

0 고요 해면이 매끈하다 연기가 위로 똑바로 0.0-0.2 -

Calm 올라감


1 실바람 물거품이 없이 풍향은 연기가 날리는 0.3-1.5 0.08 가량

Light Air 잔물결이 인다. 것으로 알 수 있으나,

바람개비에는 감각이 안됨


2 남실바람 잔물결이 뚜렷해지나 바람이 얼굴에 감촉되고

Slight 흰 물결이 나뭇잎이 흔들리며 1.6-3.3 0.15 가량

Breeze 나타나지는 않는다. 바람개비가 감각됨.


3 산들바람 결이 약간 일고 때로는 나뭇잎과 가는 가지가

Gentle 흰 물결이 많아진다. 쉴 새 없이 흔들리고 깃발이 3.4-5.4 0.6 정도

Breeze 가볍게 휘날림


4 건들바람 물결이 높지는 않으나 먼지가 일고 종이조각이

Moderate 파장이 길어지고 날리며 작은 나뭇가지가 5.5-7.9 1.2 가량

Breeze 흰 물결이 많아진다. 흔들림.


5 흔들바람 보통 정도의 파도가 일고 잎이 무성한 작은 나무 8.0-10.7 1.8 가량

Fresh 파장이 길어지며 전체가 흔들리고 강물에

Breeze 흰 물결이 많고 때로는 잔물결이 일어남

흰 거품이 인다.


6 된바람 큰 물결이 일기 시작하고 큰 나무 가지가 흔들리고

Strong 흰 거품이 있는 물결이 전선이 흔들리며 10.8-13.8 3.0 가량

Breeze 많아진다. 우산 받기 곤란함


7 센바람 물결이 커지고 부서져서 나무가 전부 흔들리고

Near Gale 생긴 흰 거품이 하얗게 걷기가 곤란함 13.9-17.1 4.2 가량

흘러간다.


8 큰바람 큰 물결이 높아지고

Gale 물결의 꼭대기에서 잔가지가 꺾어지고 17.2-20.7 5.5 가량

물보라가 날리기 걸어갈 수 없음

시작한다.


9 큰 센바람 큰 물결이 더욱 높아지고 건축물에 다소

Strong Gale 물보라 때문에 시계가 손해가 있음 20.8-24.4 7 가량

나빠진다.


10 노대 바람 물결이 무섭게 크고 거품 24.5-28.4 8.8 가량

Storm 때문에 바다 전체가 희게 나무가 쓰러지고 건축물에

보이며 물결이 격렬하게 큰 피해가 있음

부서져서 시계가 나쁘다.


11. 왕바람 산더미 같은 파도가 일고 건축물에 큰 손해가 있음. 28.5-32.6 11.2 가량

Violent 흰 거품으로 바다 전체가

Storm 뒤 덮이며 시계가 훨씬 더

나빠진다.


12. 싹 쓸 바람. 산더미 같은 파도가 일고

Hurricane 휜 거품이 바다 전체를 뒤덮고 보기 드문 큰 손해를 32.7 이상 11.2 이상

시계가 훨씬 더 나빠진다. 일으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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