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전조 증상.
며칠째 무엇에 홀린 듯한 불안한 마음 때문에 배에 무슨 일이 생기려고 그러는 걸까? 은근한 전조 증상일까? 걱정을 하면서도, 회사에 보낼 자체수리 관련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던 오후 16시경, 방안의 전화벨이 울린다.
-2 항사입니다. F.O PIPE가 터져서 배를 세우고 수리를 해야 한답니다.
브리지 당직사관인 2 항사가 기관실에서 연락받은 이야기를 보고해 온 것이다.
얼른 기관실로 전화를 걸어 기관장과 통화를 한다.
-기관을 정지시키고 하려는 수리는 파도가 높아서 매우 위험하니, 가능한 파도가 잘 때까지 미속으로 라도 움직이며 수리를 해야겠어!
기관 정지가 난감하다는 나의 언급에 전화를 받아 든 기관장 역시 당혹감을 갖는 듯했지만 그래도 다른 방도를 찾아서 다시 연락하기로 한 후 전화를 끊었다. 나도 그대로 추이를 지켜보기로 한다.
금항 캐나다에 입항하기 전에 시행해야 할 수리 및 수리 예정 사항은 토요일과 일요일도 포함하여 휴일 없이 작업할 예정이며, 그렇게 해야만 입항 예정일인 10월 25일 전까지 수리가 끝내질 걸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북태평양의 겨울철 악천후로 인해 갑판 상 노출된 곳의 작업이 매우 어려운 실정이어서 날씨만 허락하면 일요일에도 계속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바빠진 것이다.
발라스트 라인 관계 대구경 파이프의 쇠모로 인한 파공 사고 같은 원하지도 않는 돌출 수리가 발생하여 시간을 빼앗긴 것도 바빠진 원인 중 하나이다.
그런데 기관실내 하부의 발라스트 라인의 600A 짜리 파이프 파공 사고가 났을 때, 모든 승조원들의 사기는 상기 사고가 본선 안전에 막대한 지장을 줄 수 있다고 겁부터 내는 싸늘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런 저런 이유로 빠른 시일 내로 안전한 수리가 이뤄져야 할 형편이므로 금항 국내로 귀항 시 완전한 수리를 꼭 해달라고 요청해 두고 있다.
금년 들어 본선에 승선하려던 사람들 중 (특히 기관부 인원이) 발령받고 승선하였음에도 다음날로 기피하여 그대로 자의 하선하여 집으로 가버린 사람들이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는 짐작을 해본다. 너무 주관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그렇게 내린 사람 중에서 기관실로 물이 새어 들어오는 상태가 무섭다고 분명히 말을 한 기관사도 있었던 것이다.
오늘 16시 F, O PIPE에 파공이 생겨 배를 세우고 수리를 해야 할 상황이 발생했다고 연락이 왔을 당시의 본선 주위의 바람은 보퍼트 스케일로 9 정도에 파고가 6에서 8.5 미터를 넘나들고 있었다.
단지 바람과 파도를 등진 상태의 순항을 하고 있었기에, 그 파워에 걸맞은 큰 흔들림이 없었던 것이지, 배를 당장 정지시킨다면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되어 날씨가 잔잔해 질 때까지 계속 움직여야 한다고 알려준 것이다.
1730시 D/S Ahead Eng.으로 감속, 연료유 공급 파이프가 새는 기통은 감통시킨 채 운전하며 수리를 시작했기에, 파도 밭에 누워 뒹굴지도 몰랐던 어려운 상황만은 면하며 초미속 항진과 긴급 수리를 병행하고 있다.
1830시 감통 운전 시행 한 시간 만에 연료유 파이프의 교체 작업을 모두 끝내고 다시 제 속력으로 복귀시키며 수리가 잘 끝났다는 전갈을 받았다.
바로 이 수리를 만나려고 요 며칠 그렇게 초조한 상황이었나 싶게, 지난 며칠 날씨가 나빠진 후 이어져 오던 불안했던 마음이었는데 이제야 그 조급함에서 놓여 나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