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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했던 마음의 실체

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전조 증상.

by 전희태
270410-포트헤드랜드 기관실 015.jpg 기관실 주기관



며칠째 무엇에 홀린 듯한 불안한 마음 때문에 배에 무슨 일이 생기려고 그러는 걸까? 은근한 전조 증상일까? 걱정을 하면서도, 회사에 보낼 자체수리 관련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던 오후 16시경, 방안의 전화벨이 울린다.


-2 항사입니다. F.O PIPE가 터져서 배를 세우고 수리를 해야 한답니다.

브리지 당직사관인 2 항사가 기관실에서 연락받은 이야기를 보고해 온 것이다.


얼른 기관실로 전화를 걸어 기관장과 통화를 한다.

-기관을 정지시키고 하려는 수리는 파도가 높아서 매우 위험하니, 가능한 파도가 잘 때까지 미속으로 라도 움직이며 수리를 해야겠어!

기관 정지가 난감하다는 나의 언급에 전화를 받아 든 기관장 역시 당혹감을 갖는 듯했지만 그래도 다른 방도를 찾아서 다시 연락하기로 한 후 전화를 끊었다. 나도 그대로 추이를 지켜보기로 한다.


금항 캐나다에 입항하기 전에 시행해야 할 수리 및 수리 예정 사항은 토요일과 일요일도 포함하여 휴일 없이 작업할 예정이며, 그렇게 해야만 입항 예정일인 10월 25일 전까지 수리가 끝내질 걸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북태평양의 겨울철 악천후로 인해 갑판 상 노출된 곳의 작업이 매우 어려운 실정이어서 날씨만 허락하면 일요일에도 계속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바빠진 것이다.


발라스트 라인 관계 대구경 파이프의 쇠모로 인한 파공 사고 같은 원하지도 않는 돌출 수리가 발생하여 시간을 빼앗긴 것도 바빠진 원인 중 하나이다.

그런데 기관실내 하부의 발라스트 라인의 600A 짜리 파이프 파공 사고가 났을 때, 모든 승조원들의 사기는 상기 사고가 본선 안전에 막대한 지장을 줄 수 있다고 겁부터 내는 싸늘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런 저런 이유로 빠른 시일 내로 안전한 수리가 이뤄져야 할 형편이므로 금항 국내로 귀항 시 완전한 수리를 꼭 해달라고 요청해 두고 있다.


금년 들어 본선에 승선하려던 사람들 중 (특히 기관부 인원이) 발령받고 승선하였음에도 다음날로 기피하여 그대로 자의 하선하여 집으로 가버린 사람들이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는 짐작을 해본다. 너무 주관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그렇게 내린 사람 중에서 기관실로 물이 새어 들어오는 상태가 무섭다고 분명히 말을 한 기관사도 있었던 것이다.


오늘 16시 F, O PIPE에 파공이 생겨 배를 세우고 수리를 해야 할 상황이 발생했다고 연락이 왔을 당시의 본선 주위의 바람은 보퍼트 스케일로 9 정도에 파고가 6에서 8.5 미터를 넘나들고 있었다.

단지 바람과 파도를 등진 상태의 순항을 하고 있었기에, 그 파워에 걸맞은 큰 흔들림이 없었던 것이지, 배를 당장 정지시킨다면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되어 날씨가 잔잔해 질 때까지 계속 움직여야 한다고 알려준 것이다.


1730시 D/S Ahead Eng.으로 감속, 연료유 공급 파이프가 새는 기통은 감통시킨 채 운전하며 수리를 시작했기에, 파도 밭에 누워 뒹굴지도 몰랐던 어려운 상황만은 면하며 초미속 항진과 긴급 수리를 병행하고 있다.

1830시 감통 운전 시행 한 시간 만에 연료유 파이프의 교체 작업을 모두 끝내고 다시 제 속력으로 복귀시키며 수리가 잘 끝났다는 전갈을 받았다.


바로 이 수리를 만나려고 요 며칠 그렇게 초조한 상황이었나 싶게, 지난 며칠 날씨가 나빠진 후 이어져 오던 불안했던 마음이었는데 이제야 그 조급함에서 놓여 나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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