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 적응으로 일과가 많이 흐트러지다.
이른 새벽. 잠에서 깨어나 참았던 오줌보를 열어 시원한 배설을 한 후 몇 시쯤 되었을까 시계를 본다. 새벽 4시 반을 넘어서고 있다. 매일을 시작하기 전에 하는 일과인 운동을 준비할 시간이 된 것이다.
이얏! 속으로 기압 소리를 지르며 겉옷을 찾아 껴입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잠을 덜 잔 듯 한 찜찜하고 찌뿌둥한 기분이 들어 시계를 다시 본다. 틀림없이 시침이 새벽의 4시 반을 지나가고 있다.
정신을 다시 차려가며 왜 이렇게 피곤이 심하게 찾아오는지 속으로 혜량해 본다.
24시에 더하기 4시간 30분 하니 28시 30분이 되고 여기에다 지금껏 시차 조정을 위해 엊저녁 까지 앞당겨 주었던 일곱 시간을 다시 빼 주면 21시 30분, 현재 이곳의 4시 30분은 우리나라의 밤 9시 30분인 것이다.
늦게 자는 사람 몇 사람 정도 빼놓더라도, 대부분은 이제 잠자리에 들어가야 할 시간인 밤 아홉 시 삼십 분에 길들여 있든 몸들이다. 그 시간은 십여 일 전 까지만 해도 나도 잠을 청하려던 밤 시간이 아닌가?
계속되는 동진으로 시간을 당겨주다 보니, 몸의 생체리듬은 아직도 잠자리에 들려는 시간이었지만, 움직여진 시간대는 이미 잠을 다 자고 일어나야 하는 시간으로 되었으니, 몸에 익숙하지 못한 시차로 인해 쌓인 피곤이 잠을 자지 않은 듯한 느낌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 본다.
그러나 시간상으론 억지로라도 일어나야 할 때이니 하루의 시작을 위해서라도 기분 좋게 일어나기로 한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대비하는데 대부분의 승조원들 특히-사관들은-시차 타령만 하며 계속 잠자리에 들었는지 점심시간이 다가올 때에도 방문을 닫아놓고 있는 사람조차 있다.
어제 일을 너무 열심히 하여, 그 피곤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부원들이야 그렇게 하고 있는 처지를 알아주겠지만, 신경이야 많이 썼는지 몰라도 육체적으론 피곤한 일을 별로 하지 않은, 사관들이 그런 태도로 아침 식사도 건너뛰고 심지어는 점심때가 다 기울어 오후 과업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꼴은 참 보기에 딱하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에 내려갔는데 아무도 식사를 하는 사람이 없고 우리 식탁에서는 한 사람만 먼저 먹고 나가고 다른 이들은 모두 꿈속에 들어있는 모양이다.
전화벨을 울려서 밥을 먹으러 오라는 신호를 보낼까 하다가 포기하고 내 밥만 퍼 들고 앉았다.
어제도 오늘 같은 상황에서 전화를 걸어주어 밥을 함께 먹게 되었는데, 자던 모습에서 달라진 것 없이 식탁까지 차리고 내려온 몰골을 보니 끄시시 하니 까치집 같은 머리 하며, 시꺼먼 트레이닝 옷에 샌들을 찔찔 끌고 와서 앞에 앉아서는 또 무엇이 못마땅한지 골낸 사람 마냥 찌푸려서 움푹 파인 양미간 사이의 내천자 골을 더욱 깊어 보이게 하며, 식사하든 태도를 보니 오만 덧정이 다 떨어지며 밥맛도 달아날 지경이었다.
또 그런 모습을 자꾸 보게 되면 괜히 그를 미워하는 감정이 버릇될까 걱정되어, 오늘 점심엔 전화를 걸어 식사시간을 알려주는 친절한 마음은 덮어두기로 했다.
지금까지 어떤 배를 타던지 아침 식사시간은 빼놓더라도, 점심이나 저녁을 이렇게 혼자서 외톨이로 들어 본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늦게 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더니 가로 늦게 승선한 어떤 한 사람으로 인해 이렇게 식사시간이 헝클어진 일이 생겼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어쨌든지 그럭저럭 식사를 끝내고 주방으로 들어가 보니, 식사 준비를 해 놓고 먹을 사람들을 기다리던 조리장이 짜증스러운 기색으로 <왜들 식사시간을 잘 안 지켜 주는지 모르겠다>며 불평이 깃든 골이 난 얼굴을 하며 하소연을 해 온다.
나도 짜증이 나고 있던 중이라 얼른 그의 의견에 맞장구를 쳐주면서, 아무래도 수일 내로 싫은 소리 한 번쯤은 해야 할 모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