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우리가 하게 될 일이라는 이유로
험상궂은 모습으로 우리 뒤를 따라와서 나에게 황천에 대한 그늘진 마음을 드리우게 했건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 우리들이 속칭 북태평양 저기압의 쓰레기통이라고 부르는, 북반구의 동절기 저기압이 소멸되기 위해 모이는 장소인, 알래스카 만으로 가 버려서 그나마 다행이다.
972 hpa 짜리 저기압으로 인해 며칠째 계속 이어지던 뒷바람과 뒷 파도가 이제는 멀어진 저기압과의 거리만큼이나 수그러들기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다행인 것은 뒤쫓아 오는 고기압으로 인해 햇볕이 계속 비쳐주어 음울한 기운을 털어 내게 하니, 좋은 기분으로 항해를 계속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마음과는 관계없이 일요일인데도 PSC 점검에 대비한 준비로 여념이 없는 갑판 위에서는 용접 아크의 불빛이, 햇빛이 환한 아래에서도, 번쩍하며 빛나곤 한다.
점검에 걸리면 어차피 우리가 해내야 할 일이니, 걸리지 않게 미리 조처하는 기분으로 일을 하자고, 선동하듯이 승조원들을 꼬드기고 은근한 압박감도 느끼게 하며, 작업장에 세우긴 했지만 사실 너무 미안한 일이다.
이렇게 열심히 일한 보람이 나타나서 별 다른 지적 사항이 없이 점검이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사실 궁극적인 명색은 선원을 위해 그렇게 까다로운 검사를 한다는 명제를 앞세운 점검이지만, 내면적으로 볼 때는 당해 선진국들이 자신들의 노조원을 살리기 위한 좋은 일거리 창출을 방편으로 삼는, 수리 건수를 늘이려는 경향도 없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괘씸한 마음이 들어, PSC 점검이란 억울한 일(?)에 괜스레 얽매이어 고생하는 동료 선원들의 형편이 고달프고 애잔해 보일 뿐이다.
하나 이 검사가 생긴 근본적인 처음의 이유들 엔, 바로 선원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그들을 부리는 일부 악덕 후진국의 선주들로부터 힘없는 선원들의 안전과 환경 개선을 강제해서라도 도와주기 위해서라는 아이러니이다.
단지 그것이 처음의 취지는 취지대로 아직껏 살아 있기는 하지만, 어느새 주객이 전도되어 당해 국가가(특히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이) 자국민의 이익을 위한 일로 변질시킨 경향도 인정 안 할 수 없으니, 현장의 선원들만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는 애꿎은 새우 꼴>이 되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오늘 나를 포함한 우리 승조원들에게 과도한 작업에 스트레스까지 키우는, 수리와 사전점검의 일에 파묻히게 하는 것은 이렇듯 PSC가 가진 동전의 또 다른 면일 것이다.
그러나 그리 느끼는 것은 일선 현장에서 자가 진단한 아전인수의 형편일 뿐일까? 그들은 계속 선원과 선박의 안전, 지구 환경보호를 외치며 이 일을 자신들의 뜻대로 끌고 나가기 위한 빡빡함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바다 위 황천 속에서도 결코 편하게 쉬지 못하고 일하는 선원들의 노고는, 당연히 그들이 해야 할 의무라고 치부하여 거들떠보려고도 않는 건지, 육상의 검사관들도 자신들의 할 일을 규정대로 밀고 가며 처리하려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은 이들 검사관 대부분의 인원이 해기사 출신으로 한 때는 바다 위의 승선 생활로 살아오던 이들이라는 점이다.
나로서는 이 바닥의 정도(正道)라고 믿어 오로지 승선 한 길 만을 고집하며 지켜온 <뱃사람의 길>인데, 그 길을 버리고 검사관이란 옆길로 새어 나간 사람들이 보여주는 허세 아닌 허세에 너무나 답답한 마음을 갖는 경우를 종종 맞게 되는 형편이 서럽다면 서러운 것이다.
우리와 같은 선원으로 생활하던 이들이 어쩌면 안면 몰수하고 자신의 옛 동료를 괴롭히는(?) 식의 점검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의 승선중 경험이 검사과정에 유효한 도움을 주는 것도 확실한 일이지만, 너무 아는 게 많아 필요 없는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본선의 상태를 해명하고 설명하기 위해 함께 동행하면서 검사를 지켜보아야 할 때 느끼는 서러움은 그래서 더욱 깊은 쓰라림 이기도 하다.
결국 PSC 점검의 결과가 아주 나쁠 경우, 그 지적사항을 해결하기 전까지는 출항할 수가 없는 중한 처분도 있다. 이런 지적사항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선주가 돈을 써야 하는 일(현지 수리 등)이 남는 셈이다.
따라서 돈을 벌려는 목적을 가진 기업(선주)은, 기업대로 PSC 검사에 지적당하여 쓸데없는(?) 과다지출을 당하지 않도록, 본선에서 입항 전에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선원들을 다그치지 않을 수 없는 형편 일터이고...
그렇다면 이런 서슬이 시퍼런, 사슬의 고리에서 나는 어디쯤에 속하는 걸까?
매 항차 PSC 검사에 대비하여 항해 중 선원들과 더불어 준비하면서, 때로는 어우르고 달래고 때로는 윽박지르면서, 마지막 일을 시켜야 하는 고달픈 삶을 생활하면서도, 사람들 사는 냄새가 흠씬 나는 땅김을 제대로 쐬어보려고 열심히 달리며 오늘도 살아가는 뱃사람의 생활을 그래도 나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입항 후 만나게 되는 별 탈 없이 점검에 패스한 경우의 그 성취감이랄까, 하여간 은근한 그 기쁨의 맛을 기대하며, 육지에 닿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항해에 임하는 그 자체가 우리들의 생활인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