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도 당신 생일은 어김없이 찾아왔네요.
예전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까지는 당신의 생일을 군의 날이라며 공휴일로 쉬었었죠. 그때까지는 마치 당신을 위해 공휴일로 정해준 날인 양, 한껏 기분 내며 잊지 않고 기억할 수가 있어 좋았었죠.
설사 내가 집에 없었을 경우에라도, 전보를 넣어가며 축하할 수가 있었건만, 요새는 그 전보라는 제도 자체가 근본적으로 없어져 버린 셈이고, 더하여 당신의 생일날 마저 공휴일에서 철회되어 여간 섭섭한 게 아니라오.
그러구러 다시 찾아온 오늘, 당신의 나이가 그렇게나 들어버렸다는 점을 재삼 이 바다 위 달리는 배안에서 확인하며, 그동안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그 시간들을 보냈단말인가? 잠깐 서운한 기분에 젖어 봅니다.
여보! 부부라는 가요(주*1)의 가락에 실려진 부부간의 사랑에 대한 가사가, 그 곡조의 애잔함과 어울려 다가오는 감회가 새롭군요. 이미 그런 나이를 나도 넘고 있으니 당신의 나이 들음을 경계한들 무엇하리오.
다른 이들의 결혼 생활은 밉건 곱건 간에, 그래도 함께 생활한다는 당연한 일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결코 당연 치 못한 일로 받아들이며, 떨어진 그리움 속에 나날을 채우며 살아온 게 아쉽지만, 그것이 우리 두 사람의 전 결혼 생활을, 이렇듯이 신혼 같은 세월로 보내게 해 준 고마움도 있는 거지요.
이제 남아있는 우리들의 앞날이 지난 세월보다 더욱 짧아진 이 시점에 그래도 후회 없이 살았노라 큰소리 칠 수 있게 만들어 준 당신께 감사합니다.
당신이 이날 이때까지 사랑과 참을성으로 우리 집안 모두를 감싸 안으며, 스스로를 땅으로 낮추고, 나를 하늘로 여겨주는 조화 이룬 삶을 꾸려준 그 고마운 마음, 어찌 한시라도 잊을 수가 있겠소.
우리가 처음 결혼하던 날. 큰 조카와 그 조카며느리를 위해 큰 아버님이 알려 주셨던 가훈 기억하시죠?
인애 근검(忍愛勤儉) : 당시 속마음에선 인이란 글자를 어질仁자가 아니고 왜 참을 忍자를 쓰셨을까?
이제쯤 살아오며 그 깊으신 뜻을 조금은 알아챈 듯싶군요.
오늘 당신한테 11시가 넘어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통화 음질은 별로였지만, 당신이 명랑한 응대로 전화를 받아 주었기에, 평소보다 두배 이상 껑충 뛸 만큼 기뻤답니다.
또한 즐거운 마음으로 당신의 생일 축하를 받아주면서, 군에 있는 막내도 엄마 생신을 축하한다는 전화를 해 왔다며, 어머니와 우리 아이들 모두의 근황을 전해 주었죠.
또 집의 대문도 멋지게 고쳐놨고,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들어오게 되었다는 등 집안의 대소사도 자세히 알려주니, 같이 살고 있는 경우보다도 더욱 가깝게 느껴졌답니다.
그러나 지리상 거리는 좀 더 가까이 접근해야 통화 음질이 나아질 거라, 그때 가서 다시 전화를 걸겠다며 시계를 보니 바쁜 30초도 안 남았습디다.
전화 요금도 배 이상 올라, 괜스레 말 몇 마디 더 하다가 요금만 늘겠다 싶어,
-이제 끊읍시다,
하였더니
-빨리 끊어요!
하는 나의 말하는 의미를 재빨리 알아채는 당신,
-예, 그럼 건강하세요, 끊습니다.
여지없이 수화기 놓는 자리를 손가락으로 눌러주어 내가 재고 있던 스톱워치의 초침 바늘이 55초 자리에 머무르게 하였죠. 5초 남은 3분, 즉 2분 55초 한 통화로 경제적인 전화를 하게 한 당신의 순발력이 기특하여 흐뭇하게 웃으며 수화기를 제자리에 놓았답니다.
며칠 동안 혈당치가 120 에서 148 까지 사이에 머무름을 보여서 좀은 조심스러운 생각 속에 잠겼던 내 마음에 당신이 차분하게 감응하는 대처로 씻어준 셈이 되었고 그래서일까요? 점심식사 후 재어 본 혈당치는 100 이하로 내려간 98을 보여주어 절로 흥이 나는 아주 좋은 기분까지 덤으로 받은 당신의 생일날 하루였습니다.
어느새 50대 중반을 훌쩍 넘어서버린, 그래서 흘러간 세월이 마음 한구석 아쉬운 점으로 남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화를 끊으며 절로 웃음 지어지는 이 기분.
오늘을 당신의 아주 특별한 생일날로 기억하게 만드는구려.
내 사랑이여! 생일 축하합니다.
며칠 후면 만날 수 있는 날이 될 거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부부의 노래를 우리 두 사람의 마음 삼아 여기에 붙이어 부쳐드립니다.
주*1 : <부 부>
부부 부름.
1. 정 하나로 살아온 세월 꿈같이 흘러간 지금
당신의 곱던 얼굴 고운 눈매엔 어느새 주름이 늘고
돌아보면 구비구비 넘던 고갯길 당신이 내게 있어 등불이었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하면서 이 못난 사람 위해 정성을 바친
여보 당신에게 하고픈 말은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 한마디뿐이라오.
-夫의 노래-
2.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 당신을 사랑하면서
살아온 지난날이 행복했어요 아무런 후회 없어요
당신 위해 자식 위해 가는 이 길이 여자의 숙명이요 운명인 것을
좋은 일도 궂은일도 함께 하면서 당신의 그림자로 행복합니다
여보 당신에게 하고픈 말은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婦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