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시 엔진 역전을 위한 테스트
미국과 캐나다는 그들 국가의 해역에 들어가기 12시간 전까지는, 기관을 사용하여 후진 전진을 써 보고, 조타기에도 이상이 없는지 점검하며, 기타 항해 장비에 대한 꼼꼼한 테스트를 시행한 후, 그 결과를 각각 갑판, 기관 항해일지에 기입하도록 법으로 정해 놓고 있다.
앞서 나가는 해운국으로서 그런 법을 먼저 시행하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이미 UN 산하 IMO에서 강제나 권고사항으로 시행하도록 요청된 사항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 법은 외국적 선박이라도 그들 나라에 기항할 경우에는 꼭 지켜야 하는 법이기도 하다.
특히 SEPARATION ZONE(통항 분리 구역)을 만들어 놓고 입출항 선박의 통항로를 따로 관리하는 좁은 해역 등에 들어서기 전에는 안전을 위해서도 이 일은 필수적으로 행하여야 하는 기본적인 일이다.
이번 캐나다의 로버츠 뱅크에 입항하기 위해서는 JUAN DE FUCA STRAIT의 통항 분리대를 통해 들어가야 하는데, 그들이 요구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엔진 테스트를 하여 이상이 없는 가를 묻는 일도 들어 있다.
예전 이 규정이 처음 발효되었을 때는 귀찮기도 하고,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생겨, 제대로 실시하지도 않은 채 적당히 시행했다고 항해일지에 적어 넣는 일로서 만 끝낸 적도 있었다.
오늘 아침 올라가 본 브리지에서 도착 예정보다 두 시간이 늦어진 점을 감안하니, 아무래도 30분 정도 도착 시간을 더 늦어지게 만들 수 있는, 사전 엔진 테스트를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고 싶은 유혹이 생겼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항사에게 기관실로 전화를 걸어 7시 30분에 기관의 전, 후진 사용 테스트를 하자고 전하게 했는데, 무슨 이유에 선지 기관실과 통화하던 일항사의 언성이 심상치 않게 높아지며 결국 전화의 통화도 끊기고 말았다.
통화 당사자인 일기사가 무엇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지는 몰라도 옆에서 통화를 흘깃 들은 말로선 일항사에게 왜 필요 없이 쓸데없는 잔소리를 하느냐며 자신의 당직시간에 그런 일은 안 하고 3 기사의 시간으로 넘기겠다고 응대하여 일항사를 화나게 한 것으로 짐작케 했다.
그냥 넘기기에는 석연치 않은 앙금이 남아 직접 내가 전화를 걸어 왜 그런 언성 높이는 일을 했는지 알아보았으나 별 뚜렷한 이유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나와의 통화에서도 자꾸 같은 말을 반복하며 되풀이하는 품이 요사이 일에 지쳐 있다는 심증만을 굳게 하니, 그 처지를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은 들었지만, 그래도 그냥 넘기기에는 불편하여, 실제로 테스트를 감행하여 이런 분란을 종식시키기로 작정하면서, 한 가지 일을 확인 삼아 물어보려는 데 전화가 끊겼다.
순간적으로 치솟으려는 화를 얼른 참아내며, 한숨을 깊이 들이쉬고 침도 삼켜준 후 나서 다시 전화 다이엘을 돌렸다. 잠시 후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일기사의 음성도 마음을 추스르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점잖게 응답해오는 언사로 바뀌어져 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은 것에 대해 유감스러운 이야기부터 하려던 마음을 접어주며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전화가 끊겨 다시 걸었다는 말만 했다.
그래서 기름을 바꾸지 않고도(주*1) 간단히 스톱/후진/스톱/전진의 테스트를 할 수 있느냐? 고 묻고 싶었던 말을 물었다. 그런 방법으로의 기관 사용이 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은 후, 그럼 즉시 그 일을 실시한다고 준비하도록 한 후 잠시 후 엔진 사용에 들어가도록 했다.
-대드스로우 어헤드!(DEADSLOW AHEAD!)
전진 속력을 초미속 까지 내리도록 하는 명령이다.
-대드스로우 어헤드(DEADSLOW AHEAD).
당직사관인 일항사가 복창하며 텔레그라프를 움직여 그 자리에 놓아주니 엔진룸에서도 응답이 왔다.
-대드스로우 어헤드 써.(DEADSLOW AHEAD, Sir)
게이지의 바늘이 급격히 눈금 중앙 0 의 눈금 자리로 가깝게 올라가 명령이 수행됨을 보며 일항사가 다시 복명해준다.
-스톱 엔진!(STOP ENG.)
눈금이 자기의 자리에 찾아 들은 것을 확인하며, 다시 내린 명령으로 이제 본격적인 기관 테스트가 실시되는 것이다.
-스톱 엔진 써.(STOP ENG. Sir)
엔진이 정지(사실은 프로펠러의 돌림이 정지) 되었음을 알리는 복명인데, RPM GAGE의 바늘이 제로에 접근하나 아직은 타력으로 인해 약간 도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스로우 어스턴!(SLOW ASTERN).
다시 반속의 후진 명령을 내려준다. 당직사관의 복명복창은 시간을 두고 다시 이어지고,
후진 엔진의 명령을 텔레그래프(TELEGRAPH)를 통해 받아들인 기관은 역전하는 힘을 소리로 과시하며, 게이지의 바늘을 휘청하니 끌어서 후진의 자리에서 멈칫거리게 하다가, 힘이 부친 듯 파르르 떨더니 다시 제로로 떨어지며 멈춰버린다. 아직 전진 타력이 남아 있어 단번에 걸리기에는 조금 무리였던 것 같다.
실패한 명령은 텔레그라프 신호를 원상으로 했다가 다시 내려줘야 하는데, 기관실로부터 스톱의 위치로 텔레그래프 신호를 역으로 보내오기에 그에 맞춰준다.
잠시 후 이번에는 시동에 자신이 생긴 듯 기관실로부터 못 받아 주었던 후진의 텔레그래프로 다시 신호를 보내오더니 제대로 후진의 위치에서 게이지의 바늘이 멈추어 선다. 정식으로 후진이 시작된 것이다.
잠깐 후진 상태를 살펴보다가 그 정도면 틀림없이 테스트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스톱 엔진!(STOP ENG.)
다시 명령을 내렸다.
-스톱 엔진(STOP ENG.)
1 항사가 복창하며 텔레그래프를 스톱위치에 놓아주며, 기관실로부터 온 앤서 백(ANSWER BACK)을 받아준다. 잠시 후 엔진이 서는 것을 확인한 후,
-스톱 엔진 써.(STOP ENG.Sir.)
하고 명령 이행에 대한 보고를 한다.
-스로우 어헤드!(SLOWAHEAD).
다시 명령을 내린다.
-스로우 어헤드(SLOEAHEAD)
복창하며 1 항사가 텔레그래프의 지시를 전진 미속에 놓아준다.
-스로우 어헤드 써.(SLOWAHEAD Sir)
엔진이 전진 미속으로 돌아가는 기미를 감지하며 복명한다.
이제 기관 전진도 되니 테스트는 잘 끝난 셈. 다시 우리의 갈 길을 향해 바쁘게 가야 할 시간이다.
-풀 어헤드!(FULL AHEAD),
전속으로 항진하여 계속 항해할 것을 명령하니
-풀 어헤드(FULL AHEAD)
명령에 대한 복창을 하며 텔레그래프를 쓰고 난 후 한참을 기다려 RPM 게이지상 바늘이 전속 전진의 위치에 접근 해 갈 때
-풀 어헤드 엔진 써.(FULL AHEAD ENG. Sir)
더 올릴 수 없는 최고 속력으로 달리게 되었다는 명령 수행에 대한 결과보고를 복명해준다.
테스트도 끝났고, 이제 도착할 무렵 다시 기관 사용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현상태를 계속 유지하도록 마지막 지시를 한다.
-렁업 엔진(RUNG UP ENG)!
-렁업 엔진 써.(RUNG UPENG Sir)
일항사는 즉시 복명복창을 하며 텔레그라프를 몇 번 흔들어 벨을 울려준 후 다시 FULL AHEAD ENG. 에 놓아준다.
기관실로부터도 같은 형태로 텔레그라프가 대답을 해주니 오늘의 기관 테스트는 순조롭게 끝이 났다.
흡족하게 테스트가 끝난 것에 대한 안도감을 가지며, 기관실에 전화를 걸었다.
-일기사, 수고했어, 테스트 결과 이상은 없지? 하고 상태를 물어보며,
-아침에 기분이 좀 상했었어도 흘려보내 버리고 으-응?. 하여간 수고했어!
위로의 말을 해주어 일기사의 기분이 풀리도록 배려해 주며 전화를 끊었다.
처음에는 시간이 바쁘다는 이유를 들어 테스트 없이 그냥 넘기려 다가 정식으로 실시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단 내려 엔진 사용을 시행하다 보니, 순항 시간이 좀 길어지긴 했어도 정식으로 사용하여 결함 없음을 확인했으니 오히려 자신감도 생기고 적당히 넘기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개운한 마음이다. 게다가 캐나다 해역에 진입하면서 엔진 상태를 보고할 때도 거짓보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니 얼마나 좋은 가?
다음부터는 이런 경우 꼭 정식으로 실시하여 그렇게 하는 이유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일을 해 나가기로 혼자 다짐을 한다.
주*1 : 통상적으로 항해 중 기관을 자주 사용하려 할 때나, S/B Eng. 이 필요한 경우에는 사용하던 벙커 C 유에서 효율이 좋은 디젤유로 기름을 미리 바꿔주어 기관사용에 무리가 가지 않게 준비를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