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이 방문

교포와의 만남은 늘 반가운 추억을 만들어 주고

by 전희태
DS0030(8078)1.jpg 흐린 날씨 속에 진행되는 로버츠 뱅크 부두에서의 선적작업.



아침 11:40시.

캐나다의 로버츠 뱅크에 기항하면서 생겼던 수리 할 일이 모두 완료된 후, 연락을 받고 아침 8시 30분쯤 승선한 선급 검사관은 선급 유지를 위한 모든 점검까지 무사히 마친 후, 관련 증서에 이서 작업까지 끝내 준 후 배를 떠났다.


짐을 싣고 출항하기 전에 수리를 완전히 끝내야 한다던 단서를 가졌던 임시 항해 허가서는 이미 만족되어 시효가 끝났고, 이제 정식으로 출항해도 되는 서류로 모두 대체된 것이다.

며칠째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며, 무사한 타결을 위해 노력했던 결과로 다른 지적이 없이 순조롭게 마무리된 것이다.

그 간의 일이 많은 힘들었던 사정을 갖고 있었던 만큼, 홀가분 해진 기분 역시 말로 표현할 바 없는 뿌듯한 성취감에 느긋한 여유를 가져본다.


우리 배의 수리 건 때문에 멀리 미국 포틀랜드에서 출장 온 주재원도 무사히 일이 끝나니, 즐거운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더니, 통화를 마치고 나서는 같이 외출하여 밖에서 외식을 하자고 청한다. 전화에 연결했던 사람이 나도 잘 알고 있는 학교 3년 선배로서 이곳 밴쿠버에서 선식 회사를 경영하다가 지금은 은퇴하여 한가로운 생활을 즐기고 계신 J 씨란다.


이번에 우리나라에 다니러 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지금쯤 은 아마 돌아와서 집에 계실 거라 예상하며 걸었던 것인데 마침 전화를 받으며, 당장 배로 찾아온다고 하니, 그분이 오는 대로 밖으로 나가자고 하는 것이다.


하늘이 회색으로 변한 채 빗방울도 이따금 떨어지고 있으니, 외출 하기에는 별로인 날씨였지만, 이곳에 입항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한 목에 날려 보내게 끔 점심 전에 모든 일이 잘 풀렸으니, 기꺼이 상륙하기로 마음먹었다.


벤즈 승용차를 타고 나타난 J 선배는 거의 일 년 넘은 오래간만에 만난 얼굴이다. 본인은 퇴직하고 나서, 건강도 괜찮아지고 마음도 편하다고 이야기 하지만, 얼굴을 본 순간, 나이 든 표정이 돌기 시작한, 현역을 떠난 사람들이 갖는 어딘가 쓸쓸한 구석도 엿보이는 느낌이 들어 잠깐 애잔한 심정이 들었다.


시내에 나가 일식집에서 점심을 들고 난 후, 주재원은 포틀랜드로 귀가한다고 해서 공항에 데려다주고 둘 만이 남았을 때 J선배는 White Rock이란 미국과의 국경 가까운 동네로 이사를 간 자신의 집에 가자고 초대하여 그냥 따라나섰다.

그분의 먼저 살던 집은 밴쿠버 북쪽 지역의 주택으로 그야말로 저택으로 이따금 곰도 출현하는 숲 속의 집이었는데, 지금의 집은 두 부부만이 늘그막에 같이 지내려고 새로 개발되는 지역의 새집으로 이사를 간 것이라고 집 소개를 한다.


뒤 편으로 작은 마당이 있어, 그곳에 정원수를 심었는데 비료를 주어야 한다면서 가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려 9 킬로그램 짜리 비료 포대 15개를 사서 싣고 집으로 갔다.

현관이 있는 앞 쪽으로 가면 뒷마당까지 나르는 쓸데없는 일을 해야 하니, 뒷문을 열어 놓으라고, 도착하기 10분 전쯤에 집에 있는 부인에게 전화를 한다.


도로는 잘 포장되어 있지만 아직 짓고 있는 집들이 드문드문 있고 어떤 곳은 집터만 공사되어 있는 구역도 지나며 막다른 골목길로 들어섰다. 열어 놓고 기다리는 걸 믿어 의심 안 하는 태도로, 닫힌 채 막다른 담에 붙어 있는 작은 쪽문을 미니 그대로 열린다.

준비해 간 비료 포대를 차의 트렁크에서 들어내어 마당 한편에 옮겨 쌓는 일을 거들어 준 후, 다시 차를 타고 앞쪽 현관 옆의 차고로 가는 데 한참이 걸린다.

새로 지은 집의 깨끗함이 배어 있는 현관을 들어설 때, 아! 이 정도는 하고 사는 것이 집을 지니고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어선다.


벌써 지나간 뉴스가 된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뉴스를 보고 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의 이야기를 텔레비전으로 보다가 영화나 한 프로 보자며 지하실로 안내한다.

여러 명의 가족이라도 충분히 즐길 만큼 넓은 실내이다. 스크린을 펼쳐지게 조작한 후 DVD 플레이어로 스크린에 화면을 비추어 주며 실내조명을 끈다.


영화 <SOUND OF MUSIC>의 장면이 그 옛날 중고등학교 시절 단체로 가서 관람했던 극장 화면을 아련히 떠 올리게 하며 풀려 나온다.

수려한 경치를 배경으로 한 화면 안에서 불러지는 도레미송, 에델바이스 등의 노래 또한 옛날을 추억 나게 해주며, 코끝을 찡하니 만드는데 갑자기 콧물 한 방울이 똑 떨어져 내려 얼른 손으로 가려준다.

온도가 7도라는 좀 싸늘한 실내에서 별 움직임 없이 화면만 보고 앉아있었으니,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던 추운 감각이 몸을 움츠리게 하였고, 추억의 찡함 까지 더해지면서 저절로 흘러나온 생리 현상이다.

사실 넓은 공간을 가진 지하방으로 들어설 때, 난방을 하려면 제법 전기가 들겠구나! 지레짐작으로 난방 요청은 할 생각도 않은 채 한기를 참던 중이었다.

이제 그대로 더 있으려니, 움직이지 않으면 감기에 걸리겠다는 마음부터 들어선다.


회사에 제출할 서류를 만들어야 하는 일이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 염두를 벗어나지 않았지만, 점점 추워지는 감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일어나야 할 형편이다. 끝맺어야 할 서류 작성을 핑계 삼아 중간에 일어났다. 그리고 배에 데려다 주기를 청하였다.


부부 두 사람만의 주거 공간으로는 우리네 사고방식으로 야 좀 넓어 보였지만, 땅은 넓어도 주민 수는 적은 캐나다 이기에, 그 정도 꾸며 놓은 생활공간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들기도 한다.

집이 아늑하고 참 좋아 보여 부러운 마음 떨쳐낼 수가 없다는, <집들이 초대>에 응당 따르기 마련인, 들어설 때의 인사말을 다시 한번 깍듯이 전하며 안주인과의 작별 인사를 나눴다.


배에 데려 다 주려는 J 씨의 차를 타고 골목길을 빠져나와 어느새 큰길로 들어섰다. 차창을 통한 바깥의 도로는 새로 만들어진 길이란다.

아스팔트가 모두 말라 있는 뽀송뽀송한 모습에 내가 그 집에 머무르던 몇 시간 동안은 비가 오지 않았음을 짐작한다.

한참을 달려 야트막한 고갯길 하나를 넘어서는데,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빗방울이 앞창을 사정없이 두드리기 시작한다.

주인 만난 커다란 털북숭이 애견의 반가워 달려드는 모습쯤은 저리 가라 하게 비교가 되는 환영이 지극한 비이다. 젖어가는 바깥을 편안한 마음으로 구경할 수 있는 차 안의 나른한 여유에 침잠할 무렵, 시꺼멓게 윤이 나며 젖어가는 아스팔트 위로 반대편에서 질주해 오는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높게 낮게 흔들리며 반사되어 춤추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신의 집을 이곳 White Rock에 장만하여 이사 온 이유가, 먼저 살던 동네보다 강우량이 40%가량 적은 곳이라서 노인네들 건강에 좋다는 이유가 크게 차지한다고 했던 말이 믿을 수 없도록, 그 집을 떠날 때는 안 오던 빗줄기가 도로를 따라서는 점점 더 굵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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