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고 하고 싶은 마음.
밤 열두 시 심야에 올라온 도선사는 All S/B 벨을 울리는 우리 더러 우현 선수와 선미 센터에 터그 보트를 다 잡으면 스턴 라인과 헤드 라인부터 걷어 들이겠다는 이안 계획을 이야기한다.
-브리지! F'CL.(훡슬), 우현 선수에 터그-라인 잡았습니다.
-F'CL.(훡슬)! 브리지, 선수 우현에 터그-라인 Madefast, 생큐.
-브리지, POOP. 선미센터에 터그-라인 Made fast 되었습니다.
-POOP, BRIDGE. 선미 센터에 Tug Line, Made fast. Roger Thanks.
이제 계획했던 대로 계류 브이(Mooring Buoy)에 각각 네 가닥 씩 내어주어 묶어 두었던 선수 계류삭(Head Line 또는 Bow Line)과 선미 계류삭(Stern Line)을 걷어 들이기 위해 줄을 늦춰준다.
평상시 부두에 계류시킬 때는 선수부와 선미부에서 각각 여덟 가닥 씩인 로프를 내어서 줄을 잡는데 그중의 반이 되는 네 개의 줄이 직접 선수와 선미에서 육상이나 계류 장구로 내주어 건다.
그것을 다시 걷어 들이라고 했으니 벌써 반이 넘은 출항 작업이 진행 중인 거다.
-먼저의 줄들을 모두 감아들이면, 브레스트 라인 렛고 할 것!
하는 명령을 내리려는 데,
-브리지! 브리지! 잠깐만 줄을 렛고 하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
지금 한창 계류삭을 걷어 들이며 출항을 서두르고 있는 선, 수미 부서와 브리지 간에 통신용으로 쓰이고 있는 워키토키에 뛰어 들은 다급한 기관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속이 철렁한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일이 발생해서 서두르는 출항을 막고 나선 단 말인가?
-무슨 일이 난 거요?
-병렬 운전하는 발전기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아서 잠깐 점검해 볼 겁니다.
순간적으로 지금 여기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인가?
만약 출항 작업을 중단하고 묶어 둔다면, 다른 때와는 달리 지금은 입항 때부터 비상상황을 발생시켜 주목받고 있던 입장이니, 수월찮은 일이 뒤 따르리 란 예감을 갖는다.
거기에 방금 모든 기계와 장비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대답으로 파일럿의 도선사 체크리스트에 의한 점검에 응해 주었고, 그 대답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발전기가 고장이 나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은 끔찍한 사항이 아닌가?
이곳 로버트 뱅크 입항 전에 발전기 한 대에 이상이 발생하였다며 걱정을 하던 기관장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때 고장이 나기는 했지만 병렬해서 쓸 수는 있다는 말까지 했었기에 안심하는 마음을 가졌었는데 지금 그런 계통의 고장이 또 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기관실, 기관실 지금 상태 어떻습니까?
그런 말 밖에 더 할 말이 없음이 안타깝다.
옆에 서있는 파이로트는 어서 줄을 벗겨내어 출항하자는 듯 나를 쳐다보고 있으니 기분은 더욱 죽을 맛이다.
-기관실 어찌 된 거요? 이제 괜찮습니까?
윙 브리지 갑판에서 이야기해 보다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조타실로 들어서며 다시 묻는다.
-브리지! 브리지! 발전기 상태가 괜찮아 보입니다.
갑자기 들려오는 기관장의 목소리가 제일 듣고 싶었던 구세주의 응답이라도 되는 양 반갑기만 하다. 우선 배의 출항 모션부터 지시해준다.
-선수, 선미, 브레스트 라인 렛고!
주저함이 없이 계류삭을 걷어 들이도록 명령을 내리며 다시 윙 브리지 도선사가 있는 곳으로 나간다.
브리지의 명령에 다시 활기찬 부산스러움이 재개되며 배는 부두에 묶어졌던 신세를 훌훌 털어 내고 대양으로 나갈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한 번씩 사람의 애간장을 타게 만들어 내는 C/E의 이런 식의 보고 때문에 실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내가 받고 있는지 그는 모를 것이다.
자신의 선에서 해결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그 선을 지키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마무리 지으면서도, 그는 무슨 일이든지 발생하면 상황을 알리는 보고부터 하면서 원인 파악과 해결에 나서고 있다.
따라서 보고 받는 입장에서는 발생한 일의 여파를 최대로 줄이면서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이야 가지지만, 그런 연락을 받을 때마다 받게 되는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다.
벌써 그런 보고를 몇 번씩 받고 보니, 이제는 그가 말하는 상황이 대부분 크리티칼(Critical)한 상황이 아닌 것도 있다는 느낌을 가지며, 보고 사항을 좀 줄여주면 안 될까? 하는 내 입맛대로의 욕심도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새벽의 일은 지난 25일, 이곳 로버트 뱅크를 찾기 위해 들어서려던 Juan De Fuca 수로 입구에서 났던 사고로 인해 노이로제 증세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초조해하는 조바심이 커져 있던 상황이라 순간적으로 별일이 아닌 일인데도 우선 보고부터 한 것이란 생각도 든다.
좀 더 확실하게 된 다음에 이제는 할 수 없구나 하는 때에 이야기(보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괜찮게 해결할 길을 빨리 찾아 일을 해결하면서도, 우선 보고도 먼저 하는 것, 양쪽 모두 일장일단이 있는 방법이지만, 우선 너무 잦은 상황의 발생 빈도를 갖게끔 배가 노후화되어 있다는 게 문제이다.
이제 나에게는 그를 보기만 해도, <어! 저 사람,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며 속부터 철렁하니 떨어지는 심정이 되니 아예 상종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다.
그렇다고 같이 한솥밥을 먹는 선내 생활을 하는데 안 보고 지날 수도 없는 일, 하여간에 야속하고 화도 나는 묘한 감정을 열심히 일하는 그를 향해 눈을 부라릴 게 아니라, 나이가 제법 들어 자주 고장을 일으키는 우리 배를 향해 눈흘김을 해야, 제대로 하는 행동이 아니냐는 마음 씀씀이로 돌려주기로 한다.
사실 그는 나를 큰 형님처럼 믿고 의지하며, 배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장에 대해 한건씩 해결하면서 바쁘고 힘든 생활 속이지만, 그때마다 그 상황을 나에게 알리고 있는 아주 가까운 사이인 것이다.
그런데, 도와주지는 못 할 망정, 오히려 내 편함만 추구하여 그의 보고 사항이 적어졌으면 바란다는 것은 너무 내 이기심만 치켜세우는 행동이 아니냐?
그 사람 목소리가 나를 찾걸랑, 또 무슨 말로 내 가슴을 철렁하니 만들려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억하심정은 버리고 자기반성에 들기부터 다시 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