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너무 하십니다.

그러면 어찌하라고?

by 전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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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연말이 되면 회사에서는 집을 떠나 생활하는 선원들의 가족들을 초청하여, 가장과 헤어져 살고 있는 가족의 어려움을 회사차원에서 위로해 주려는 연례행사로 <연말 모범 승조원 표창>이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행사에 구색을 맞춰 주기 위해 연말이 가까워지면 각각의 사선이 해야 할 과업 중에 <모범 승조원>이란 타이틀을 갖게 되는 선원 1 명을 선정하여 회사에 추천 통보를 해주는 일이 있다.


금년에도 그 행사가 기다리고 있기에, 추천하는 인물을 11월 3일까지 알려 달라는 공문이 접수되어, 오늘 직장 및 부서장들이 참여하는 선내 회의를 열면서 그 의제로 내놓았다.

회사는 이 타이틀로 추천된 각선의 선원들 가족을 식장으로 초청하여 은수저 한 벌 정도를 기념품으로 전달하며 여흥과 식사대접을 하여 하루를 즐겁게 해주면서도, 이 행사가 또 다른 인사상의 이익을 갖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살짝 부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해마다 연중행사로 하는 것이고 여기 추천되었다고 당장 진급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도 선원들은 영향이 있을 거라는 심증을 가지고 있지요.


-본선에선 작년도에 기관수를 추천하였었는데, 금년에는 우선적으로 타 부서부터 적합한 사람이 있으면 추천을 해주세요.

나의 말에 처음에는 참석자들 모두가 멀뚱하니 서로를 처다 보며 다른 사람이 먼저 나서 주기를 바라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제가 보기엔 우리 배 일항사가 일을 많이 알기도 하고 열심히 하는데, 추천했으면 합니다.

이윽고 기관장이 나서서 의견의 말을 내는데,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관장님, 참! 너무 하십니다. 지난 배에서도 일항사를 추천하시더니 이번에도 또 그렇습니까? 이거 일할 맛이 안 납니다.

옆에 앉아 있던 일기사가 정색을 하면서, 자신을 추천하지 않은 상사에 대하여 마구잡이로 불편한 심정을 토로해내었다.

-.........................

생각지도 못했던 반격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는 일순 숨죽인 채 전부 일기사를 쳐다보다가 눈길을 거둔다. 그리고 각자의 상념에 젖어 말을 하지 않으니 시간만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

회의에서 추천인 이야기를 처음으로 내면서 가졌던 나의 생각 역시 일항사가 가장 추천에 알맞은 사람이라 여기고 있었다.

단지 선내 타인들의 의견을 모두 워 낸다는 구색을 갖추기 위해 말을 꺼낸 셈이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니 나 역시 당장 뭐 라 할 말이 없지만 기관장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으니, 참조는 되었다.


선내에는 인정하기는 싫지만 일반 사회나 마찬가지로 학연과 인연의 고리가 있다. 아니 오히려 특수직이기에 더욱 그 골이 깊은 것으로도 여겨진다. 따라서 해대나 목 해대 출신이 아닌 일반 출신의 해기사들이 선내 생활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받는 소외감이나 불편함도 적지 않은 점도 짐작은 하고 있다.


그런 특수성으로 인해 일반 선원 출신의 해기사가 돋보이게 평가되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는바, 그런 점 역시 이미 차별이 크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


지금 일기사는 일반 출신으로 나이가 40대에 들어서 있고 몇 해를 보내면서 계속 그 직책에 머무르고 있었으니, 본인은 진급에 대한 초조감이 은근히 증폭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한 부서의 부하인 자신을 추천할 만도 한데, 지난 배에 같이 탈 때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또다시 타 부서 사람인 일항사를 거론하는 직속상관이 너무나 서운했기에 자신도 모르게 곧바로 받아치듯이 불만의 말부터 나왔던 모양이다.


그러나 엄연한 사회생활에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남한 테 보여주질 못하는 태도와 일 솜씨이면서도, 진급이나 뭐 그런 달콤한 과실만 탐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일기사는 아닌 채 하려는 모양이다.

지금껏 배를 타며 만났던 많은 일반 출신의 해기사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제일 큰 약점이 이런 마음 가짐이 었다고 믿어진다.

기관장이나 내 생각도 그렇기에, 오늘의 일기사가 보인 태도는 정당하지 못한 불만과 불평의 표출로 치부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동료들보다 나이가 많은 것만 앞 세우며, 일에 대한 정열이나 지식은 도외시하는 경향으로 연공서열만 고집하는 태도가 그렇게 환영받을 수 있는 현실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가진 가장 큰 실력은, 일을 어찌 처리하는 가에 달려있는 평가의 잣대를 들이미는 선상생활에서 남 앞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두 번의 트러블 슈터로서의 해결사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실력도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화를 제일로 앞장 세우는 모습이, 고립된 이 사회에선 가장 큰 덕목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운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되면,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혐오자 일 순위로 매도되기가 쉬운 것이다.

자신의 직속상관이 자신을 제치고 타 부서의 인물을 우선 추천하는 케이스를 두 번씩이나 당하게 된 일기사는, 심기가 불편한 그 결과에 대해 가타부타하기 전에, 겸허하게 자신을 반성하는 태도로서 임할 수는 없었을까?


가장 교과서적인 결과를 우선적으로 생각해 보는 내 심정에는, 근래 일기사가 본선의 일에서 주위 동료들과 일으켰던 여러 가지의 작은 마찰을 떠 올리면서, 어쩔 수 없는 일기사의 형편에 입맛을 다시는 형편이다.


그렇기는 해도 일반 출신이라 분류되는 일기사의 입장을 내가 제대로 파악하고, 그의 가슴속 마음까지 똑바로 이해하고 있는가? 발상의 방법을 되돌아볼 필요도 한번 생각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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