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일지

겨울 철 북태평양을 서진하며

by 전희태


Ȳõ1(8483)1.jpg 한번씩 갑판으로 올라왔던 파도가 다시 쏟아져 나가는 모습.


예상한 대로 한 밤중부터 앞바람에 앞 파도로 세어지기 시작하는 기상으로 배는 4-5 knots의 속력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할 터인데 계속 붙들리면 저 아래 일본의 동쪽 해상에서 맹렬한 속력으로 북동진 하면서 몸피를 키우기 시작하는 새로운 저기압을 한 번 더 만나야 하는 경우도 생각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다음 변침점(變針点)인 ATTU 섬이 아직도 400 마일 이상 남아 있어 곤혹스러운 심정이 든다.

이제 저기압의 오른쪽을 지나치어 중심부와 멀어져 가고 있다는 증거로 987 hpa로 까지 실컷 내려가 있던 기압이 다시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는 걸로 확인해 본다. 기압의 상승세로의 복귀가 날씨 회복의 희망이 되는 건데, 한몫 더하여 맑은 하늘에 초롱초롱한 별들과 밝은 달까지 볼 수 있다는 희망을 꺼내어, 현재의 풍파를 당하면서도, 위안으로 삼아 본다.


한 번씩 구름의 짙어지는 색깔 따라 어둠이 덩달아 나서는 게 싫기에, 어서 빨리 날이 새어 환한 태양과 함께 내 마음도 밝아져, 초조감으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란다.


KS Weather에서 아침에 보내준 제안대로 0745시에 북위 53도 40분, 서경 176도 10분, 위치에서 270도 코스를 새로이 잡아 동경 170도 선까지 Parallel로 항해에 임하고 있다. 이렇게 같은 위도선을 따라 서진하는 추천은 새로이 발달하고 있는 저기압을 본선의 왼편 아래쪽으로 지나가게 하여, 폭풍의 왼쪽 가항 반원에 본선을 위치시키기 위한 배려를 품고 있는 것이다. 그랬는데도 여전히 숙이지 않고 있는 서풍으로 인해 속력이 7 knots선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Noon Report 위치에서 36시간 안에 300 마일 이상을 달려 놔야 지금 고속으로 동북동진하면서 크고 있는 새로운 저기압을 어느 정도 피해 볼 수 있겠는데 지금의 7 knots로서는 위험한 거리에 들게 될 것 같아 안달이 난다. 저녁 무렵부터는 바람이 잦아들면서 속력도 올릴 수 있게 될 것으로 현재 기상상황의 추이를 이해하고 있지만, 이따금 나타나는 비구름이 돌풍을 몰고 오곤 해서 그야말로 마음속엔 바람 잘 날이 쉽지가 않은 상태이다. 기압도 998 hpa 까지는 잘 올라가더니 더 이상의 상승은 보류한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어서 1000 hpa을 돌파하라고 응원을 보내 본다.


1000 hpa로 올라서면, 그 후엔 이름도 착해 보이는 1004(천사) hpa도 될 터이고 그쯤 되면 저기압이 아니라 고기압으로 되어 날씨도 맑아질 텐데 하는 혼자만의 간절한 바람을 가진 응원인 것이다.

1004 hpa만 되면 고기압이 될 거라고 믿어보는 것은 결코 정확한 사항은 아니다.


사실 고기압과 저기압이란 게 숫자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주위와 서로 비교하여 높은 곳이 고기압이고 낮은 곳이면 저기압이 되는 상대적 비교의 결과인 것이다. 따라서 1004 hpa이라도 주위가 모두 1004보다 높으면 자동적으로 저기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요사이 이곳의 기상에서 그 정도의 숫자이면 고기압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믿어 보는 것이다.


회사에서 다음 항차에 필요한 연료유를 빨리 청구하라는 독촉의 전문이 와 있지만, 현재 만나고 있는 황천에 너무 얽매이어 그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려워 아직 연료유 청구의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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