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어 산 그래도 꼭 넘어야 할 산

어려운 난관을 피해나가는 기쁨

by 전희태
DS1103(6196)1.jpg 흩날려지는 작은 파도의 뿌연 알갱이를 맞으면 입가는 절로 짭잘해진다.


새벽잠에서 깨어나 시계를 보니 0245시.

이르긴 하지만 일어나야 하는가 아니면 좀 더 자리에 누워 버티어야 할까? 고민 아닌 고민을 하고 있다.

갑자기 기관실의 ALARM 소리가 좀 길게 울리더니 다시금 조용해지는데, 낌새가 이상하여 브리지에 전화를 건다. 엔진 RPM이 떨어지고 있는 중이란다.


-그래 알았어,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주워 입고 브리지로 올라가는 이른 기상 쪽을 택할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알피엠으로 다시 올리던가 아니면 세우 던가를 엔진의 상태를 점검해 보고 결정하리라는 전언이 기관실로부터 와있다고 2항사가 보고 한다.


어제 배를 세우게 했던 바로 그 6번 기통에서 같은 일이 다시 생겨난 상황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란다.

저기압이 물러나고 좀 달려야 할 시간이 되었건만, 이런 일이 반복해서 생기면 또다시 지금 만주 지역에 있는 저기압과 기쁘지도 않은 만남을 되풀이하며 가져야 할지도 모르는 형편이 제일 먼저 골머리를 쳐 온다.

왜 이번 항차는 이렇게도 힘들게 이어지는가? 하는 서운함이 우울증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0415시. 상황을 살펴본 기관장이 일단은 다시 엔진 RPM을 올려 떠나는 쪽으로 결심을 굳혔다는 연락을 하면서, 모든 준비를 끝낸 기관실에서 점검을 병행하며 기관 알피엠을 다시 증속 시키기 시작한다.


-삼 기사, 감도 있나?

일기사의 목소리에 이어

-일기사님, 삼 기사입니다.

하는 삼기사의 대답이 나오니,

-삼기사, 5번과 6번 기통 온도가 얼마지?

-예, 6번 47도, 5번 42도 입니다.

-그래 알았어. RPM을 올리고 있으니 계속 체크해서 알려 줘.

-예,

씩씩한 대답을 삼기사가 한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는데도 삼기사의 보고가 없으니 다시 불러내어 물어본다.

-삼기사! 5,6번 기통 온도 얼마가 되었지?

-5번은 45도고 6번은 46도입니다.

-알았어, 이제 철수하여 컨트롤 룸으로 오도록 해.

주기관의 기통 옆에서 온도를 체크하던 삼기사를 ECR(엔진 컨트롤룸)로 불러들인다.


그리고도 두 시간 가까이 더 점검을 계속한 후인 0555시.

기관장은 이대로 속항 할 것이란 최종 결정을 한 보고를 해왔고 나는 브리지를 떠나 방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고장이 나서 엔진 출력을 낮췄던 장소는 북위 46도 00분 동경 152도 10분 위치로, 러시아의 Ostrov Simushir섬 남방 48 마일 되는 지점인데, 멀리 떨어져 있기도 했지만 어두운 새벽이었기에 섬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침을 지내고 한나절을 잘 달리어 오후 1645시가 되었을 무렵.

기관은 다시 똑같은 이상 상황을 반복하며, 감속을 시도하고 있다. 기관 정지를 몇 시간 하려고 작정을 한 모양인지 이번에는 연료유도 바꾸기 시작한다.

이렇게 서야 할 일이 시도 때도 없이 계속해서 발생한다면, 바로 저기압의 코앞에 내동댕이 쳐지는 상황과 또 조우할 수도 있고, 더하여 선박의 통항이 바쁜 일본 쓰가루 해협 내에서 정지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배들의 무해 통항으로 바쁜 쓰가루 해협 내에서의 기관 정지는 될수록 피하고 싶은 일이니 이번에는 완전하게 수리를 끝내고 떠나야 한다는 주장을 기관장에게 알리기 위해 기관실로 일부러 찾아 내려간다.


임시방편의 조치를 시행하려고 다시 세우려는 것 같지 만은 않았지만, 사정을 알리러 내려간 내 의견을 참작하여, 현재 배에서 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인 피스톤 링을 교환해 주기로 결정을 내렸다.


1940시 엔진이 세워졌다. 기관실에서는 6번 기통의 피스톤 링을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고, 브리지에서는 데드쉽 상태인 본선의 안전을 위해 항해 당직이랄 수 없는 항해 당직을 철저히 서느라 분주해졌다.

어느새 밤이 깊어져 자정이 지났지만 기관실에서의 수리 작업과 브리지의 드리프팅 항해 당직은 계속되고 있다.

0208시 드디어 피스톤 링 교환 수리가 마무리되어 엔진의 시동을 걸어 본다.

압축 공기가 힘차게 내쳐 주는 소리를 따라 지체 없이 단번에 주기관은 조용히 동작을 시작한다.


0224시 수리작업이 무사히 끝났음을 확인하며, RPM을 완전히 정상으로 올려 전속 항진에 들어섰다.

이틀에 걸친 1940시-2400시 사이에 한 시간 후진한 선내 시간을 합치면 5시간 20분. 거기에 다음 날이 된 18일 0000시부터 0208시까지 2시간 8분을 더하면, 정확하게 수리를 위해 정지했던 시간은 모두 7시간 28분이 된다.


조용하게 스타팅 되었고, 이상한 소리도 없이 증속도 이어지며, 빨리 달리기도 제대로 시작하는 배의 수리 후의 현상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아! 드디어 해내었구나.

마음은 안정 속으로 빠져 들지만, 몸은 녹작지근한 피로감에 젖어들었다.

앓던 이를 뺀 것 같은 후련한 기분으로 이제 가까이 지나가게 될 새로운 저기압의 출현도 겁나지 않는다는 뿌듯한 마음가짐까지 가져본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렇게 안하무인 격으로 저기압이 겁나지 않는다고 밝히는 경거망동은 삼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쭈삣거림도 들었지만, 수리가 너무나 시원하게 잘 된 조처로 생각되기에 절로 그런 태도가 나온 것 같다.

이번 항차 내내 마음 한구석 어디엔가 불안한 꼬투리를 감추고 있었던 심정에서 완전히 벗어나며, 이제 확실히 광양 항으로 돌아가는구나! 하는 확신에 찬 마음이 찾아든 것이다.


8시가 되면서부터 7시 반 방향의 바람이 불어와서 엊저녁 달리지 못한 것을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 선속을 12.6 knots까지 증속 시킬 수 있도록 밀어준다.


산 넘어 산을 무사히 넘어가게 해 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 주십시오. 저렇게 해주세요. 떼를 쓰듯 조르는 기도가 아니라 진짜로 감사의 애틋한 마음이 저절로

솟구쳐 오르기에 무심코 드리게 되는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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