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회상

어느 뱃사람 아내의 이야기

by 전희태
A2(4257)1.jpg 69년 2월 하순, 보신각 앞에서. 자동 셔터 카메라로 찍은 신혼의 사진


오후에 연수 행사의 진행을 담당하고 있는 S대리가 찾아와서,

-선장님! 선주협회에서 연락이 와서 댁의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어요.

한다.


-선주 협회? 거기에서, 우리 집 주소를 왜?

얼른 떠오르는 이유가 없어 반문을 하던 순간, 퍼뜩 얼마 전 아내가 선주협회에서 선원 가족의 수필 공모에 응모했다던 이야기를 들었던 일이 기억났다. 아마도 그에 대한 결과를 우리 집에 알려 주려고 그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휴식 시간에 집으로 전화를 걸어, 아내의 수필이 입선된 모양이라는 내 생각에 덧붙여 집으로 연락이 갈 것 같다고 전해 주었다. 나중 장려상으로 입상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전문을 아래에 적어 놓는다.



회상

B. B Huh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마당을 바라보며 긴 숨을 한 번 들여 마셔보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에 우리 둘의 그림자만이 나란히 서있다. 꿈이었다.

그래... 그렇구나. 어느덧 30년의 세월이 내가 서있는 뒤쪽으로 그림자가 되어 지나가고 있었구나.


그날도 이렇게 하얀 눈이 많이도 내려앉아 있었지. 너무나 많이 온 눈 때문에 나 혼자 드레스 대신 양복을 입고 머리에 면사포를 쓴 남장의 여인이 되어 결혼식을 올릴 뻔하였었지.

결혼식 날 잡아 7일 만에 결혼을 해야 했는데, 신랑 될 이가 배는 입항하였으나 길이 눈에 막혀 못 올 뻔(?) 하다가, 이틀 전에 허겁지겁 달려와 결혼식에 참가(?)하고 이제야 고백이지 신혼여행이라고 호텔 예약도 못해서 정릉, 수유리를 헤매고 다니다가 남대문의 A호텔에서 첫 날밤을 보낸 기막힌 사연을 안고 출발을 해서 그때부터, 아니지 그전 연애시절부터, 기다림으로 점철된 세월이 여기까지 왔지. 그래도 말없이 항상 곁에 있는 듯 없는 듯 지켜주던 사람 덕에 나는 나름대로의 지금껏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큰 놈, 둘째 놈은 삼촌들 덕택에 사랑도 받고 잘 자랐지만 그 녀석들과 보내지 못한 시간을 보상하려는 듯이 입항하거나, 휴가 때마다 업어주고 안아주고 늦둥이 막내를 한시도 떼어놓지 않았던 당신. 그래서 그런지 막내는 특히 아빠를 많이 찾았다.

다른 아이들이 대문 밖에서 놀다 퇴근시간이 되어 아빠가 오면 달려가 안기고 하는 것을 보고 내 치맛자락을 잡고,

-엄마 우리 아빠는 언제 오세요? 하며 울먹이던, 그래서 다음부터 퇴근시간 되기 전에 막내를 불러들이던 그 시절. 그런 놈이 벌써 작대기를 이마에 단 군인이 되었다.


큰 놈은 초등학교 때 커서 어떤 사람이 될 거냐고 물으면 아빠처럼 선장님이 될 거라고 큰소리치더니 나이 들고 철이 들면서 선장은 절대로 안 한 단다. 왜냐고 물었더니 엄마처럼 혼자 살 마누라가 불쌍해서 라나? 그러던 놈이 30이 넘어도 장가도 못(?) 가고, 신부님이 되겠다고 노래처럼 외고 다니던 둘째 놈은 뒤늦게 아빠의 대학 후배가 되어 지금은 벤처기업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열심히 하며 지낸다.


세상 많이 변했지. 배 입항하면 항구마다 정을 두고 떠나온 사나이가 아닌, 입항해 뛰어나올 남편을 찾아가는 마누라가 되어 여관 잡아 기다리던 그 시절,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남편 얼굴 마주 보기 쑥스러워하던 그 시절이 지금은 입항하기가 무섭게 배에 올라 그냥 시간 맞춰 밥 먹고 또 밥 먹으면 밤이 찾아오는 단순한 시간으로 변했지.


귀 밑에 흰 눈이 내리고 눈 뚜껑이 약간은 처지는 지금까지, 천직으로 알고 한 우물 파며 걸어온 내 남편이 전선원들이 합심하여 만든 선내 신문을 펼쳐보며 좋아하는 모습이 -조금은 귀찮고 조금은 하기 싫어했을 또, 좋은 소리 듣지 못하면서도 만들어낸- 그 사람이 만들어 낸 작은 소망이 이루어 낸 결실이라고 생각하며 나 역시 도와준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졌었다.


몇 해 전에 동승해서 캐나다에 간 적이 있었다. 조금 상기되고 조금은 흥분된 가슴을 안고 처음 나가보는 외국이라 기대와 걱정도 약간 하며 태평양으로 향했다.

선내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서로 웃으며,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것도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시간이 가면서 친숙해지는 마음에 그들을 한 가족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식사 때 둥근 식탁에 둘러앉아 펼쳐지는 이야기 꽃은 항상 가족 이야기가 주가 된다.

지난번 항차에 크림을 사다 주었더니 좋아하더라며 이번에도 또 크림을 사다 주어야겠다던 그 사람,


-통신장님, 이번에는 크림 아닌 다른 것 사다 주셔요. 크림 한 통을 한 달에 다 바르겠어요? 일 년도 더 쓸걸요.

했더니

-참 그렇겠네요. 그럼 다른 건 무엇이 좋을까요?

하며 멋쩍게 웃어 보이던 사람 좋던 통신장-쌍둥이 부친-도 보고 싶다.


또 막내딸 생일이 가까웠다며 예쁜 잠옷을 하나 사서 선물하겠다던 기관장님, 쇼핑 가서 아주 예쁜 잠옷을 사 가지고 배에 와서 상표를 보니 Made in Korea라고 약간은 실망(?)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곧 우리나라 물건이 이렇게 좋은 거라고 멋 적어하시던 그분도 보고 싶다.


수많은 사람들이, 배 탄다 하면 항구마다 여자가 있고 가는데 마다 돈을 뿌리고 다닌다고 소문은 요란하던데, 내가 본 우리의 남편들은 한 푼의 돈이 아까워 선술집에서도 한 잔의 술과 한 컵의 맥주도 맘대로 사 마시지 못하고 있었다.


선식 회사에서 내어주는 차에 몸을 싣고 가족 선물 하나 사기 위한 한 바퀴 쇼핑을 마치고 돌아와 가벼운 술 한잔으로 입술을 축이며 집에 두고 온 처자식 생각하는 우리의 남편들을 집에 편안히 있는 우리들은 어떤 생각으로 바라보았는지.

-눈에 안 보이면 지가 무슨 짓을 어떻게 하는지 알게 뭐야.

집 떠나면 다(?) 야~ 하며 의심하지는 않았는지?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인 것을 생각이나 할 수 있었는지.


돌아오는 귀항 길에 들어선 선상생활에서 보여주던 부스스한 얼굴에 초점 잃은 눈동자, 수염도 깎지 않은 그 얼굴들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입항하기 일주일 전쯤이 되면서부터, 수염도 깎고 목욕도 열심히 하며 얼굴엔 윤기가 반지르르 흐르고 옷은 매일 칠면조(?)처럼 갈아입으며, 가족 만날 생각에 흥분하는 우리의 남편들을 우리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우리 남편들이 선상생활을 천직으로 알고 묵묵히 아무 말 없이 열심히 생활할 때 그들을 바라보는 땅 위의 사람들은 과연 어떤 말들을 할 수 있을까?


연가가 끝나 배로 돌아갈 때 말은 안 하여도 가기 싫어하는 그 마음이 내 몸으로 느끼고 마음속으로 전해져 올 때 나의 마음은 속으로 흐느끼고 있었지.


삶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열심히 더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의 남편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는지. 세상의 때 묻지 않은 순수 그 자체의 모습으로 그대로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항상 밝고 맑은 미소로 욕심 없이 살아가는 우리네 남편을 세상은 어떻게 바라보는지.


나쁜 일만 일어나면 죄 없이 당해야 하는 사람이 선원이다 싶게 성실히 사는 사람들에게 AIDS 다 뭐다 하며 이 검사, 저 검사로 진을 빼놓던 시절.......

이렇게 선원과 선원 가족들이 대책 없이 당해야 하는 마음고생에 대한 보상은 누가 해줄 수 있단 말인가?


이렇듯 땅 딛고 사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고 흘러가는 말과 행동으로 쉽게 내뱉은 이런 말들에 쉽게 상처를 받는 여리고 착한 그런 남편을 단 하나의 나의 하늘이다 여기며 살아왔다.

서러움에 한만 남기려는 지 세월은 빨리도 흘러 어언 결혼 30년이 지나지만 그간 함께 한 날은 얼마나 될까? 다른 사람의 1/10 정도 같이 살았을까? 속으로 계산하다 머리를 흔들어 지워 버리고 만다.


-그래 그렇게 살아도 우리 부부 큰 소리 한 번 없이 잘 살아왔잖아. 전화 목소리만 들어도 건강상태, 기분상태, 집안일, 자기 생활을 알아낼 정도가 되었잖아. 안 그래?


나는 누가 뭐라 해도 당신들의 수고를 안다. 삼디(3D)다 뭐다 해서 모두 힘든 직장을 떠날 때도 아무 말 없이 한 길을 걸어온 당신을 나는 존경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아껴주며 서로 존경할 수 있었기에 우린 행복하다.


태풍으로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며 차창에 부딪치는 빗줄기를 바라보니 또 걱정이 된다.

이렇게 무섭게 비바람이 부는데 출항한 남편은 괜찮을까. 무섭게 파도치는 날에도 배는 출항하고 모진 생활하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래 수필을 보내 당선되면, 내 남편에게 맛있는 김치와 싱싱한 야채를 드시게 해야 지.

하는 생각에 얼마 전 써보았던 이 글을 보내기로 작정했다.

하기야 이렇게 수필을 써 보내면 상금은 못 타더라도 회사에서 김치냉장고를 배에 실어주지 않을까? 하는 얌체(?) 같은 생각도 해 보면서,,,,,,,.


사족 : 두서 없는 글이지만 나에게는 30여 년을 옆에서 나를 바라보며 살아온 아내의 마음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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