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냉장고 사는 데 보태 써요.

상금을 타면 그런다고 하더니

by 전희태


선내생활12.JPG 동승중 브리지에서 커피를 준비하며


지난 8월 중순경 회사로부터 온 공문에 선주협회에서 선원 가족들에게는 수필을, 우리들에게는 해운 홍보 및 해상 안전에 대한 표어를 모집한다며 많은 응모를 홍보하여 온 적이 있었다.


마침 국내에 기항한 우리 배를 방선하여,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서 한번 응모해볼 생각이 있는지 의사 타진을 했더니 선뜻해 보겠다며 지나가는 말처럼 하는 말이,

-만약 상금을 타게 되면 당신이 타는 이 배에다 김치 냉장고를 올리는데 보태 써 달라고 회사에 부탁하겠어요.

라고 했다.

-무슨 이야기야?

느닷없이 나온 김치 냉장고 이야기에 얼떨떨한 기분으로 물으니,

-배에서는 좋은 김치를 못 먹잖아요, 그래서 맛있게 담근 김치를 잘 보존했다 먹을 수 있게 김치 냉장고를 배에 올려 달라고 하고 싶단 말이 예요.

그렇게 말을 받아주었다.


사실 김치라는 음식이 이제는 세계 속에 이름을 떨치는 특별한 음식으로 자리매김할 만큼 유명해졌지만, 막상 배를 타고 있는 우리 선원들의 식탁에 오르는 김치는 그 이름에 걸맞을 만큼 질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른 물가에 비해서 아무래도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부식이라 공급을 신청할 때 계절을 벗어난 시점이나, 내용이 좋은 김치를 원하면, 그 가격이 워낙 비싸짐으로 감히 엄두를 못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격에 타협하여 올라오게 되는 김치는 아무래도 질이 떨어져서 싱싱하지도 맛이 좋지도 못한 채 식탁 위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이다.


배에 와서 이런 김치로 식사를 해 본 아내는, 자신의 남편 밥상 위에 항상 싱싱하고 맛이 알맞게 익은 상태의 김치가 놓이는 걸 바라는 마음에서 김치 냉장고라도 준비되면 아무래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런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사실 얼마 전에도 항해 중 점심 식탁에서 우연히 김치가 화제에 떠올랐고 이야기가 길어지다 보니 김치 냉장고까지도 언급이 있게 되었다. 그때 누군가가 우연히 회사 직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 참석하였었는데, 김치 냉장고를 본선에 일괄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의견도 듣게 되었단다.


그때 앞에 나선 회사의 담당자가 일차 고려해보겠다는 말은 하면서도, 그 억양이나 태도에서는 오히려 거절하는 느낌이 크게 보이더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아내야 그런 내막까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상금이라도 타게 되면 그 돈을 남편이 승선하고 있는 배에 김치 냉장고를 올려주는 데에 보태 달라는 수상소감이라도 피력하여서 회사 역시 그런 가족의 마음을 알아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수발 못하는 승선 기간에도 집에서 와 똑 같이 정성이 깃든 김치를 남편이 먹었으면 하고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이라 나는 짐작해보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아내는 몇 년 전부터 김치 냉장고를 사고 싶어서 안달을 하면서도 그 가격이 만만치 않기에 결단을 못 내리고 있었는데, 그런 속에서도 생길 수 있는 돈을 쾌척(快擲)하여 남편을 위하겠다는 사랑의 마음을 보이는 게 나로서는 더없이 고마울 뿐이다.


기왕이면 나도 아내의 글이 당선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당선이 되고 상금을 타게 된다면, 그 상금을 몇 년을 벼르기만 하고 사지 못하고 있던 우리 집에서 쓸 김치 냉장고 사는데 보태 쓰라고 강권을 하고 싶다. 물론 모자라는 액수는 나의 비상금을 다 털어서라도 꼭 보태 주겠노라 다짐을 해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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