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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사관직 임시교대

대신 당직 서주기

by 전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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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락가락하여 실내를 나서서 해야 할 일을 썩 내키지 않게 해주고 있다. 후덥지근한 체감온도까지 부추기듯 나서며 갑판을 돌아야 하는 걷기 운동을 잊어버리라고 꼬드기는 형국이다.


그렇듯 밖으로 나가는게 싫어 진 마음이 못이기는 채하고 선내를 돌기로 하며 단조로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브리지를 찾는게 가장 좋을 듯싶어 마침 밤사이 온 E-MAIL에 일항사가 해야 할 일이 들어있어 그 문서를 들고 브리지로 올라갔다.


새벽에 그 문서를 수신한 이항사가 사본을 떠서 일항사에게 주지 않았다고 하기에 내가 갖고 올라간 문서를 보이며 그대로 일을 처리하도록 하였다.

내용은 이번 항차 선적 사항에 대한 새로운 자료로서, 달라진 사항은 석탄의 선적이란 대명제는 변하지 않았지만, 석탄을 종류 따라 달라진 양 때문에 나눠서 실어야 하는 장소가 달라지고 싣는 순서를 다시 조정해야 하는 일이었다.


LOAD MASTER-본선의 선적에 관한 모든 사항을 입력하여 안전하게선적작업을 하도록 한 프로그램이 실려진 컴퓨터-가 있는 사무실을 찾아가서 자판을 두드려가며 계산을 하여야하니 시간을 좀 잡아먹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항사는 혼자서 당직에 임하고 있었으니 당장 사무실로 내려가서 일을 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내가 대신 당직을 서준다면 일의 처리를 빠르게 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과 나 또한 기왕에 운동을 하여야하는 입장인데, 밝아오는 바깥을 보며 항해 당직을 서면서도 걷는 운동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겠다고 판단하고 결단을 내려준다.


내가 당직을 대신 설 테니 인계하고 밑의 사무실에 가서 화물량 계산과 싣는 순서의 변경을 확인하여 오전 중에대리점으로 팩스를 넣어 줄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일항사가 내려가고 난 빈 브리지에 혼자 남겨진 후 우선 항해 계기등을 살펴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주위에 배가없다는 것도 레이더로 확인한 후 여명이 슬금슬금 다가서는 브리지 내부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한 바퀴 돌면 약 70보 정도 되는 거리를 착실하게 돌다가 좀 지루한 생각이 들어 윙브리지까지 거리를 늘이어(그렇게 돌면 한 바퀴가 140보 정도된다.) 돌다 보니 비가 와서 고인 물에 살짝 빠지며 신발이 적셔진다.


내가 예전에 항해사로 근무하였을 때 이런 경우가 생겼을 때, 당시 선장님들이 대신 당직을 서주며 일을 시킨 적이 있었는가? 갑자기 기억을 훑어 생각 해보나 결론은 없구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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