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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람들이 자꾸 내리려는 모양이군요.

재선의 의무가 부르는 불편함.

by 전희태


A62(6750)1.jpg 뉴캐슬 방파제를 들어서는 배의 선미부


뉴캐슬에 도착하여 투묘하고 무사히 하루 밤을 지냈다. 마침 보일러 수리 작업을 시행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비상시에 기관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으로 하룻밤을 보낸 셈이다.

평소 같으면 보일러를 가동하여 주기관을 비상시 언제라도 쓸 수 있게끔 하고 있었겠지만, 그 보일러를 수리해야 할 일이 발생하여 어쩔 수 없이 DEAD SHIP 상태의 투묘 상태로 지냈던 것이다.


내일모레 내항에 입항하여 접안할 예정이기에, 날씨만 좋으면 별일 없이 지날 일이지만 혹시 기상이라도 악화된다면, 엔진 가동이 필연적인 사항이 될 터이라 은근히 속이 타는 초조감을 앞세운 순간이기도 했다.

기상도를 봐서 별 이상이 없겠다고 판단하여 그 수리를 묵인하듯 인정하고 지낸 것이지만, 사실 수리 작업이 끝나는 순간까지 결코 마음 편한 상황은 아니었다.


이렇게 우리 배는 자체적으로 수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자주 생기어 평소 항해 중에도 하루 종일 그런 일들에 파묻혀 산다고 말해도 반박할 말이 없을 정도로 기관부의 수리사항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조기장으로 승선한 사람들이 매번 일에 치어서 자주 바뀌는 편이 된다고 여겨지고 있다.


이번에 승선한 조기장도 회사로부터 한 항차만 승선해 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연가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부임했던 원래 보수반(주*1) 출신이었지만 회사가 당분간 보수반 운용을 쉬고 있어서 우리 배에 정식 선원으로 승선하게 된 것으로 사실 우리 배와 같이 용접 수리할 일이 많은 배에는 그의 보수반 출신이란 경력이 아주 안성맞춤의 제대로 찾아온 셈이라 여겨지는 형편이기도 하다.


그는 승선 후 동료들과 어울리면서, 선내 분위기나 항로를 보아서는 계속 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앞으로 좀 더 승선 생활을 관찰해서 결정하겠다는 이야기도 했었단다.


지난 설날 선내 파티가 있었던 밤에 직장들과 기관장이 함께 술을 마시는 기회가 생겼었는데 조기장이 자신의 그런 생각을 토로하며 자신의 가정 사정도 이야기하는 걸 옆에서 들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아울러 아내가 유방암을 수술하여 계속 병원에 다니고 있어, 우리나라에 기항했을 때 배로 오라고 하기도 그렇고 하니, 낮에는 배에서 과업을 하고 저녁 때는 집에 가서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이 오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나왔단다.

그런데 약간의 술도 들은 자리에서 좀은 편하게 넘어가도 될 일인데, 그 자리에서 응대한 윗사람의 대답이,

-절대로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라는 식의 완곡하지만 거절하는 대답이었단다.


그때 진짜 섭섭했던 마음이 앙금으로 남아버렸는지, 나중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그래서 사람들이 자꾸 내리려는 모양이군요,

라는 말을 혼자 하는 말처럼 하더란다.


그의 입에서 나왔다는 이런 말을 전해 들으며, 어떻게 그런 말이 나왔는지 그 말이 나왔을 때의 대화 분위기를 알아보고 싶어 말을 꺼냈던 사람의 대답을 독촉했다.


말의 전파 과정에서 <아가 어로> 변해지는 변이의 가능성을 충분히 인정하여, 위의 이야기에 전달자의 일방적인 감정까지 이입된 경우도 염두에 두며, 다시 한번 공평한 입장으로 양쪽의 마음 씀씀이까지 유추해보았다.


결과적으로 내가 지금껏 보고 느꼈던 것이 보태지면서, 조기장이 씁쓸한 감정에 휩싸여 그런 말을 한 것이 당연하겠다는 결론이 나오기는 한다. 어쨌거나 이런 분위기가 나온 배후에는 재선의 의무가 있는 때문인 것 같다.


회사의 선원 운용 방침에 재선의 의무라는 게 있다.

선원으로 승선한 사람들은 모름지기 배에 승선할 때, 부두에 정박 중인 때 당직 중에는 꼭 승선해 있어야 하고, 특히 선장은 최소한 출항 24시간 전부터는 배를 꼭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식의 내규로 만들어진 룰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각 직장은 정박 당직에서는 제외되나, 주간에는 재선 하여 선무를 꼭 보라고 되어 있으며, 야간에는 부서장/당직사관의 허락을 받아 배를 떠날 수도 있는 정도의 융통성은 주워져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자신의 부하에게도 그런 의무가 있다는 점만 강조할게 아니라 융통성을 주어, 우선은 안된다는 이야기로 의무의 굴레를 같이 하려는 경향보다는, 의무에서 빼어주는 윗사람의 입장을 취했어도 좋았으련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사실 배를 지키는 재선의 의무를 완수하기 위해, 국내항 기항 시 집에도 한번 못 가보고 계속 배에만 있다는 것은, 그 일로 가족 상봉을 못하는 당사자에게는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게 하는 일이니, 결코 선내의 일을 제대로 완수하게 만드는 적절한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책임자로서 자신이 부하들의 원망(怨望)의 중심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 행동하는 무심한 지휘관이 되기 싫어서, 이렇게 시시콜콜하게 묻고 있는 내 앞에서 말을 전하던 사람은 좀은 당혹한 표정이 된다.


잘못하면 윗사람에게 고자질이나 하는 사람으로 동료들에게 보일 수 도 있다는 염려를 가졌기 때문일 게다.

여기에도 <아~해서 다르고 어~해 다른> 이야기가 또 숨어 드니 세상사 어디에도 쉬운 일은 없구나 절로 한숨이 나온다.


일 잘하고 일 머리도 잘 아는 조기장을 연가 때까지 계속 본선에 승선시켜서 같이 일하고 싶었든 내 마음이 만들어낸 작은 해프닝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주*1 보수반 : 회사에서는 나이가 많은 배의 정비를 위해 본선 선원 이외에 몇 사람의 정원을 더 승선시켜 수리만을 전담시키는 타깃팀으로 운용하던 수리팀 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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