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느 말레시안이 호주인 된 이야기

호주 이민사의 한 단편 이야기

by 전희태


E22(5459)1.jpg : 파이로트를 싣고와서 본선에 내려 주려는 광경


오늘은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엊저녁에 알려 주었던 접안 예정이 변경 없이 진행된다는 포트 컨트롤의 확인이 있다는 연락이 브리지 당직사관으로부터 온다. 즉시 전부서 준비하도록 지시한 후 브리지로 올라가는데 ALL STAND BY 방송과 함께 벨소리가 길게 울린다. 새벽 4시 15분이다.


선수루에 집합한 일항사 팀도 별 이상 없이 닻을 감기 시작하여, 다섯 시가 되면서 내주었던 닻도 다 감아 들여졌다. 이어 기관실에 명령이 하달되어 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도선사를 태우기 위한 장소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의 변동은 그때마다 모두 항만 당국에 VHF 전화로 통보해 주면서 실시한 일들이다.


헌데 다섯 시 반에 승선하겠다던 도선사용 헬리콥터에서 항만 당국을 호출하는 소리가 바쁘게 흘러나온다.

아무래도 우리 배와 관계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예상되어 그들의 전화 내용을 열심히 청취한다.

짐작했던 대로 헬기의 도선사가 좀 늦어진, 여섯 시가 되어서야 본선으로 나가겠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항만 당국에서는 본선은 이미 닻을 감아 방파제 3 마일까지 접근해 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알았다고 대답하던 헬기에서도 할 수 없는지 잠시 후 본선을 불러 3분 후에 도착할 테니 본선이 받고 있는 바람의 상대 속도와 방향을 알려 달라고 한다.


상대 풍속 18 Knots로 우현 정황에서 불어 들어온다고 이야기를 해주는데, 다다다닷! 하는 헬리콥터의 다가오는 굉음이 어느새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한다.

도선사가 무사히 본선에 도착하여 헬기에서 내려 설 무렵이 되니 날이 약간씩 밝아오기 시작하려는 5시 40분이 되고 있다.


원래는 K-6 부두에 접안한다고 통보되어 왔었는데, 정작 부두 앞에 도착하고 보니 우리 배에 붙어 있던 터그보트들이 모두 K-4 부두 쪽으로 밀어 대기 시작한다.


부두에 대자마자 기다리고 있다가 즉시 승선한 대리 점원을 상대로 처음으로 통신사의 도움 없이 하는 단독 입항 수속을 진행하여 끝을 내었다.


더불어 하역 작업이 오늘 저녁 11시에나 시작될 예정이라는 좀은 편한 이야기를 듣고 보니 생각지 않았던 보너스라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역이나 다른 작업에 신경 쓰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PSC 검사만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해진 게 제일 맘에 드는 일이다.


지난 항차 이곳에서 지적되었던 PSC 결함 사항을 모두 정상으로 수리 복구하여 입항했으니, 재검 요청하는 마음이 가벼워진 것이다.

대략 몇 시쯤에 검사관이 오게 되겠는가를 물으니 나가서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며 수속을 마친 대리 점원은 하선했다. 그가 가고 잠시 후 텔렉스로 온 전문 내용은 오늘 10시를 전후하여 승선할 것이라 적혀있는데 시간은 이미 9시 30분이다.

잠시 후 또 한 번 울리는 텔렉스 수신 소리에 뛰어가 보니 이번에는 2일 23시부터 선적 작업이 시작될 예정이라는 선적 관련 전문이 석탄의 브랜딩 준비가 덜되어 있어 그렇다는 문구를 삽입하여 들어온다.


창밖으로 눈을 돌리어 부두 쪽을 가만히 살펴보니, 우리 배에서 당장 작업해야 할 LOADER를 손보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부두에 접안한 채 이렇게 작업도 없이 한가한 늘어 난 시간이 생긴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로 일 년에 한두 번도 없는, 어쩌면 선원들에겐 편히 쉬라며 시간으로 주는 보너스 같은 일로도 여길 수 있는 행운이다.


이런 때 가족 동승이라도 하고 있었다면 세계 3대 미항의 하나인 시드니도 충분히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텐데..... 말 태워 주니 견마 잡히고 싶은 욕심인가? 은근한 아쉬움까지 불러온다.

이번 항차 가족 동승을 하려다가 각자 사정이 생겨 다음 항차로 예정을 바꾸었던, 가족 동승을 생각하고 있든 사람들과 아까운 시간이라 이야기하며 웃는다.


10시가 조금 넘어 승선한 PSC 검사관은 자신들이 지적했던 사항을 모두 잘 해결하여 가지고 온 상황을 살펴보더니 기분 좋게 OK사인을 주며 관계서류를 크리어 되었다고 처리하여 서명을 해준다.

평소 어려움을 동반하는 일로 소문이 난 PSC 검사와 관계된 일도 이렇듯 일사천리로 처리되어 통과된 기쁨까지 겹쳐지니, 점심 식사는 상륙하여 육상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는 호사를 가져보기로 작정한다.


뉴캐슬에 있는 두 개의 클럽 중 하나인 PHOENIX CLUB의 뷔페식당에서 하기로 작정하고 상륙을 한다.

그 클럽의 멤버로 우리와 동행해 준, 선식의 J사장 말이, 그 식당의 매니저인 중국계 호주인은 지난번에는 WALKER'S CLUB에 있다가 다시 피닉스로 옮겨온 사람이라 했다.


그 친구가 그 두 곳의 클럽 식당을 왔다 갔다 하며 매니저 노릇을 한다는 걸 나도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원래는 중국계 말레시아 인으로서 호주에 공부하러 왔다가 그냥 눌러앉아 호주 국적까지 취득하며 대학과 전공을 바꿔버린 사람이란다.


어쨌거나 계약이 끝나는 대로 양쪽을 왔다 갔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를 따라 손님의 숫자도 늘었다 줄었다 한다니 계속 그렇게만 된다면 괜찮기는 하겠지만, 이 역시 우리들의 사고방식으론 좀 아리송한 일이다.

그가 이렇게 양쪽을 다니며 행한 일 중 가장 돈이 된 일 중 하나는, 음료수를 셀프서비스로 무료로 마시게 한 일이란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이곳을 처음 방문했던 시절에는 바텐더가 따로 있어서 음료수 종류는 돈을 받은 후 내주던 기억이 선명하다.

근래에는 종류별로 있는 음료수를 누구나 마음대로 자판기에서 컵에 따라내어 마시고 있는 풍경으로 변하였지만 어느새 당연한 듯 무심하게 보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하도록 한 후, 업주는 바텐더를 한 사람 안 쓰고 있으니 인건비가 절약되고, 또 손님들은 저마다 음료수를 맘 놓고 마시다 보니 뷔페 음식의 마구 소비량이 그만큼 줄어들어 거기에서도 이익이 남아, 소비된 음료수의 가격을 훨씬 넘는 이윤을 내고 있단다.


사실 음료수를 돈을 내고 먹게 하면 돈이 아까워서 어지간히 마시고 싶어도 참으며 물러나니 결과적으로 그만큼 뷔페 음식을 더 먹을 수 있는 뱃속의 자리를 확보시켜주는 셈이 되며, 또 돈을 받고 음료수를 내주는 사람의 경비도 생각 안 할 수 없으니 확실히 좋은 아이디어 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하며 식사를 하고 있는데, 마침 화제의 매니저가 옆을 지나가기에 웃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서 당신이 제일이란 표시를 해주니,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그도 이심전심으로 칭찬이란 느낌을 받았는지 같은 얼굴 색깔의 우리 인사에 웃음으로 답례하며 지나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고란 하나같이 모두가 도와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