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공원에서 하루를 즐겁게
뉴캐슬 시 외곽 공원 내에는 그 사용 요금을 받지 않는 무료로 가스나 전기로 프라이팬을 쓸 수 있는 설비가 되어 있는 휴식 공간이 여러 곳에 배치되어 있다.
하역 작업이 계속 늦어지고 있다. 그 때문에 부두에서의 시간이 많이 남아도는 형편이 되었다. 그간 수시로 발생한 수리 작업에 고생깨나 한 기관부원들을 염두에 두고, 어제 오후 혹시 정비차 하는 수리 작업이 또 있는가를 물었다.
마침 더 이상의 정비 작업은 없다는 대답을 하기에, 그들의 사기를 진작 시킬 겸,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즉흥적인 아이디어로 오늘 전 승조원이 피크닉을 가도록 하자는 의견을 내었다. 그 말을 듣고 박수까지 치며 환영한 사람도 있었다.
오늘 이른 아침 식사를 끝내고 준비 상황을 살펴보니 이제나저제나 빨리 피크닉 가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눈치를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몇몇 사람들은 아직 아침조차 거른 채 침대에 있는지 보이지 않고 있다.
10시가 되어 피크닉 갈 사람들은 빨리 모이라고 선내 방송을 하고 나니 몇 사람이 더 나타나긴 했지만, 엊저녁 밤늦게 피닉스 클럽으로 상륙했다가 새벽에 들어온 사람들로 인해서인지 당연히 피크닉을 가겠다고 이야기했던 사람 중에서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 두 사람이 생겼다.
떠날 사람들이 차에 타고 있으면서 그래도 마지막 확인 차 보낸 사람을 기다리느라고 한참 동안을 차를 붙잡고 있다가, 몸이 불편해서 못 나가겠다는 전언을 가지고 되돌아온 찾으러 갔던 사람을 태우면서 차는 출발했다.
KING'S PARK의 야외 바비큐 설비가 있는 곳을 향해 부두를 떠난다.
평소 뉴캐슬을 방문했을 때마다 차로 그 부근을 드라이브를 하며 눈여겨보았던 장소였는데 도착하고 보니 벌써 몇 팀의 현지인들이 진을 치고 있어 처음에 노렸던 정자가 있는 자리는 포기하고 좀은 후진 곳으로 자리를 옮겨 잡아 내려주며 기다리도록 한 후, 바비큐용 물건을 사러 슈퍼마켓을 향했다.
조리장과 함께 J 사장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왔던 길을 돌아서 찾아간 슈퍼마켓에서 미리 메모를 해서 정리해둔 내역을 짚어가며 물건을 하나하나 사서 카트에 실었다.
피크닉의 부식으로 한차 가득 채워진 카트를 끌어 계산대 앞에 서는데 한 가지 덜 산 물건이 있다며 J 사장이 다시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는데 어느새 앞사람들의 계산이 모두 끝나고 우리 차례가 돌아왔고 30 여 가지가 넘는 물건을 확인하며 계산을 끝내 가지만 당장 돈을 지불해야 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
일단은 지불을 해 놓고 보자며 돈을 내렸는데, 빼놓은 물건을 사러 갔던 J 사장이 갖고 온 일회용 포일 접시를 계산을 끝내 가는 계산대 위에 추가하여 올려놓는다. 나의 계산이 끝나도록 뒤에 서있던 사람에게 눈으로 양해를 구하여, 그 물건 값 7.59 호주 달러를 보태어 토털 금액을 내도록 하니 모두 130.40 호주 달러이다.
구렁이 알 같다고 하던가 하여간 아끼던 호주 돈 100 달러짜리 플라스틱 지폐를 지갑에서 꺼내고, 나머지를 잔돈으로 보태어 지불하면서 각오는 했었어도 은근히 섭섭한 마음도 생긴다.
하지만 먼저 자리 잡고 있으라고 기다리게 해 놓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서둘러야 하므로 다음 음료수를 사는 곳으로 급히 자리를 옮겨 그곳에서 맥주 한 박스와 저알콜 맥주 두 병을 사서 합치니 35.29 달러다.
이미 그렇게 하기로 작정한 혼자의 생각을 그대로 밀고 나가려고 그 돈도 내가 지불하였다.
사실 나오는 차 안에서 피크닉의 경비 문제를 생각 안 할 수 없어 왈가왈부하는 이야기들이 나왔을 때 참석자들에게 회비 조로 조금씩만 보태라고 이야기하면서 나는 호주 돈 100불을 내놓는다 했었는데, 사실은 그 액수가 많아서였을까?
공동 경비면 조금씩 내면 되겠다고 생각했던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100불을 부담하겠다고 내놓은 말은 순간적으로 분위기를 이상하게 딱딱하게 만들어 주는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말을 한 꼴이 되었던 것이다.
중간에 나선 조리장이 공동으로 하는 행사이니 차후 부식 선적할 때 계산토록 하자며 돈을 되돌려주기에 너무 버티기도 무엇하여 우선 받아 들긴 했지만 그때 이미 오늘의 행사는 내 돈으로 진행하여야겠다는 각오를 은근히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조리장의 이야기는 부식 조달 업자인 J 사장의 도움을 요청하는 일인데, 시드니에서 와서 며칠을 계속 무료로 우리 배 동료들의 상륙을 거들어 주는 통차 역할을 톡톡히 하는 서비스로 우릴 대하고 있는데, 거기에 덧붙여 이런 경제적인 부담감까지 지운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의 부하들을 데리고 나가는 즐거운 피크닉에서 책임자인 내가 그렇게 한 번쯤 한 턱을 쓰는 것도 나쁘진 않은 행동이라 믿으며 마음을 편히 가지려 하니 진짜로 심정이 편해진다.
벌써 12시가 넘어가는 시계를 보며 우릴 기다리는 동료들이 있는 자리를 향해 바쁘게 달려가니 그들은 이미 잡은 터에서 전기를 사용하는 바비큐 불판을 데우고 있었다.
불 판의 스탠드는 두 곳이 있는데 모두 우리가 사용하도록 준비하고 있어 갖고 간 마가린으로 우선 불 판을 닦아준 후 쇠고기, 양고기, 돼지고기, 소시지를 구워 내어 한 판 벌려 놓았다.
이제 제대로 열이 오르기 시작하는데 손에 그릇을 든 남녀 한 쌍이 불판을 쓰려는 눈치를 보이며 우리의 뒤에 멀찍이 서서 기다린다. 참가 숫자가 많기는 하지만 계속 양쪽 불판을 다 쓰면서 그들에게 줄 선 채로 기다리게 만들어 놓고 있기에는, 내 머리 뒤에 있는 신경 줄이 자꾸 당겨지어 안 되겠다.
한쪽의 불판을 양보해주라고 말을 하여 그쪽에서 고기를 굽던 사람들과 물건을 불 판 성능이 좀 좋은 다른 쪽으로 모이게 지시했다. 소시지를 굽기 위해 와서 기다리던 두 사람은 고맙다며 자신들의 소시지를 이미 잘 데워진 불 판 위로 올려놓는다.
평소의 점심시간이 이미 지나고 또 공기가 좋은 야외에 나왔으니 입맛이 당긴 사람들이 고기가 익기 바쁘게 저마다 젓가락을 들이대어 먹다 보니 좀 덜 익은 것을 먹으면서도,
-고기는 이렇게 살짝 구워진 것이 맛있는 거야.
하며 익살을 피우는 사람도 있다.
이제 불 판도 제대로 뜨겁게 달아 있고 고기도 잘 익어지는 때쯤 되어갔는데 어느새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가 채워진 경우를 당해 잘 익혀진 남은 고기를 보면서도 슬금슬금 뒤로 물러선다.
결국 구워진 고기를 갖고 가야 하느냐 아니면 버릴 것인가를 논하게 되었을 때, 음식물 남은 것을 버리면 죄를 받는다며 안된다는 늙은 세대의 일방적인 훈시 같은 이야기에 오히려 하나 둘 자리를 비켜나는데, 마침 음식물을 해 먹으려고 나타난 사람이 둘 있다.
퀸스 랜드의 골드 코스트에 산다는 두 여자 애들이 차를 가지고 무전여행을 다니는 모양인데 우리가 남긴 고기를 먹겠느냐고 물으니 쾌히 들겠다고 해서 같이 서서 먹게 되었다.
3항사가 그 애들 나이를 물으니 한 애는 18세 또 다른 애는 19세라고 하는데 그래도 처녀들이고, 자기는 총각이라 선지 열심히 이야기하며 젓가락 사용법도 가르쳐 주면서 사진도 찍었는데, 나중 배에 구경 가자니까 시드니로 가야 하기 때문에 바빠서 안된다고 거절을 하드란다.
-그래도 어떻게 잘해 보지 그래?, 혹시나 알아? 잘되면 호주 아가씨와 로맨스라도 있게 될지 알게 뭐야?
마침 우리의 피크닉에 동참한 현지 교민인 C 씨 부인이 거들며 하는 말이다.
C 씨는 이곳에 살면서 우리 선원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교민으로서 뉴캐슬에 정착한 후 처음으로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본격적으로 우리 배의 피크닉에 참여하게 되었다며 김치를 싸들고 온 분이다.
우리 승조원을 상대로 이번 피크닉을 생각해낸 나에 대한 칭찬을 하는 말에 귀가 간지러울 지경인데, 나이가 들은 사람이 보이는 잔소리 성 횡설수설일 수 있는 이야기로 들려 난처하던 중, C 씨의 부인이 현지인 아가씨와 우리 3항사를 엮어서 농담 아닌 농담으로 말머리를 돌려준 것이다.
그런데 들려온 소문에 의하면 아마도 초청했던 친척들과의 사이에 영주권 취득을 돕는 과정에 한이 맺힌 심정으로 살고 있는 상태라 그런 소리를 했던 것도 같다.
-어 여~ 필요 없어요, 생김새가 별 볼품이 없고요, 이다음 잘 생긴 사람을 만나면 그때 하면 되지요.
3항사는 너스레를 치며 웃어넘긴다.
모처럼 배로 초청을 했는데 응해 주지 않으니 기분이 좀 상했던 모양이지만, 그게다 철없는 애들의 생각이지, 아무리 개방된 나라라고는 해도 여자 애가 생판 처음 보는 외국인을 따라 그들의 배에 가려고 하겠는가?
그런 저런 별일이 없다고 해도 나로서는 배에 올라온 외부인이 혹시 배 안에서 다치기라도 하면 큰 일인 점을 감안할 때, 그런 애들이 철없이 올라오는 것이 다 부질없고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직은 젊고 자신이 있으니 이성으로서 예쁜 애를 이야기하며 그런 애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몇 년 만 더 지나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런 소린 쑥 들어갈 것이라 짐작하며 혼자 고소를 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