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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오랜만에 써보는 아빠 편지다

몸무게가 타인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것이라면

by 전희태
DSCF0319.JPG 둘째의 어렸을 때 우량아의 모습




둘째에게


글쎄 이 편지(便紙)가 너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쓰긴 하지만 직접 너에게 띄우는 코스가 아직은 없어 일단은 아빠 회사(會社)의 통신망(通信網)을 이용(利用)하여 보내기로 하겠다.


앞으로 일주일 남아있구나, 오는 14일에 있을 너의 대학(大學) 졸업(卒業)을 축하(祝賀)한다는 말을 먼저 써 놓고 시작(始作)하려 했지만 어딘가 한 구석 쑥스러운 마음이 들어 빼어 놓았구나, 하지만 사실 속내로야 축하한다는 말을 열 번, 백 번이라도 계속해주고 싶은 심정(心情)이란다.


고등학교(高等學校)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의 그 긴 방황(彷徨)하던 과정(過程)이며, 이제 졸업을 한다는 시기(時期)에 이르도록 그동안 네가 심적으로 받았을 수많은 고통(苦痛)도 감내(堪耐)해내었음을 난 겉으론 모른 척하고 있었을 뿐이지 마음으론 이해(理解)하려 했고 이해도 했다고 믿는다.


그런 것을 다 성장(成長)해가는 인생 과정(人生過程)이거니 여기고 남보다 늦게 시작했고 졸업까지의 햇수도 길었지만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 그렇다고 믿었기에 다른 사람들 보기에 네가 부끄럽다거나 못났다고 생각한 적은 결코 없었단 말을 얼마든지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단다.


둘째야. 이미 사회인(社會人)으로서 또 직장인(職場人)으로 사회생활을 시작(始作)한 너에게 새삼스레 이러쿵저러쿵 푸념을 늘어놓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구나. 좋은 말을 들어도 이미 귀찮게 여길 만큼 훌쩍 커버린 너이지만 이 잔소리 한 소절만은 꼭 짚고 넘겨야 될 것 같아 부연(敷衍)하는 거다.


우선 세상(世上)이 아무리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고 살만한 즐거운 곳일지라도 그걸 차지할 수 있는 건강(健康)을 놓치고 있다면 모두가 한바탕의 일장춘몽(一場春夢) 일뿐이라고 이 아비가 이야기한다면 동의(同意)하겠니? 동의했다 치고 나나 너의 엄마가 너를 보면서 생각하는 너에게서 가장 얻고 싶은 한 가지의 큰 일을 말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말할 것 같니?

빙긋이 웃고 있구나? 웃지만 말고 진짜 아빠와 엄마가 말할 단어(單語)를 입속말로 말해 보아라. <살 좀 빼어라.> 그렇지?


그래 바로 맞힌 것 같구나. 너의 부모(父母)인 우리는 너를 너무나 큰 몸무게로 낳아서 옛사람들이 말하던 <자그맣게 낳아 크게 키워라>는 말을 따르지 못했던 점을 지금껏 후회(後悔)하는 편이란다. 물론 그게 전적으로 우리 둘의 뜻대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튼튼해 보이는 우량아(優良兒)로 자라던 네가 좋아 보였기에 네 나이 벌써 30에 들어선 바로 이 시점에 몸매가 그렇게 불어난 게 건강(健康)함만을 의미하는 상황(狀況)이 아니라는 사실(事實)을 뒤늦게 깨우치면서 왜 네 몸이 그리 되도록 방치(放置)하며 키웠는지에 숙연(肅然)한 반성(反省)을 하게 되는구나.


너의 잘못이 반이 넘어도 부모가 자식을 바르게 이끌지 못한 잘못 또한 큰 것이니 결국(結局) 너의 비만은 너 혼자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잘못한 때문이란 느낌마저 가지고 있단다.


둘째야! 너의 날씬한 몸매를 분발(奮發)하여 이룩해 보자꾸나. 마지막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너밖에 없으니 부탁하듯이 하는 것이란다.

이 아비가 너를 볼 때, 너에게서 가장 모자라는 심성(心性)은 결단(決斷)의 지속성(持續性)이 조금 아주 조금 부족(不足) 해 보인다는 점이란다.


어떤 일을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그대로 밀고 나가야지, 중간에 슬며시 베잠방이에 방귀 새어나가듯 유야무야(有耶無耶) 해버린다면, 세상에서 건질 수 있는 알갱이로는 무엇이 우리 앞에 남아 있어 주겠니?


비만 퇴치(肥滿退治). 그것이 너의 건강과 직결되는 명제(命題) 이건만, 해야지 하면서도 하지 못하고 있는 네 실정(實情)은 무슨 말을 보태어도 구차한 변명(辨明)밖에 더 될 것이 없어 보이는구나.


더욱이 너의 건강이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하고 함부로 굴리기까지 한다면 너는 너의 나이가 영원(永遠) 히 지금대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망상(妄想)에 빠진 바보 천치(天痴) 일 수밖에 없단다.


언젠가 네가 그랬지? 너의 몸이 지금보다 날씬하다면 아니 10 Kg만 덜 나간 다해도 많은 여자들이 달려들 거라며 농담(弄談)했다던 어떤 아가씨 이야기를, 그리되면 자신이 제일 먼저 프러포즈하고 나서겠다는 식으로 첨언(添言)했다며 너는 웃기까지 했었지?


아무리 농담이라도 그 애의 이야기는 너의 부족(不足)한 점과 더해야 할 점의 정곡(正鵠)을 찌르듯이 표현(表現)한 말이라 생각하여 도대체 어찌 생긴 아가씨가 그런 말을 했을까? 궁금하기조차 했단다.

너야 별 볼일 없는 네 마음에도 들지 않는 아가씨라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제 대학을 졸업하는 너에게 아빠가 주고 싶은 선물(膳物)은 살과의 전쟁(戰爭)을 과감(果敢) 히 선포(宣布) 한 후 목표 달성(目標達成)을 위해 애를 쓰는 너에게 힘을 보태 주는 것이다.


그리고 너에게서 받고 싶은 선물은,

어느 날 그러고 보니 날렵해진 네가 그에 걸맞은 예쁘지만(왜 이런 주문을 했겠느냐? 너희들은 예쁜 엄마를 당연시(當然視)하며 자랐으니까 그런 거고...) 수수한(남들 보다 유별(有別) 나게 튀는 것은 싫어하니까) 그리고 너를 사랑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아가씨를 데리고 와서,

-어머니, 아버지 인사받으세요.

라는 말을 듣게 되는 일이란다.


결국 세상 여염(閭閻) 집 여느 부모와 똑 같이 자식 앞에서는 그저 내리사랑에 눈먼 그런 평범(平凡)한 부모이고 싶구나.

그래서 나는 할 수 있다! 외치면서 적극적(積極的)으로 주어진 모든 일에 대처(對處)하며, 마음먹은 일은 전부다 좋은 결말(結末)로 끝장을 보여주는, 옆에 있음이 항상(恒常) 즐거운, 그런 생활인으로 거듭 태어났으면 한단다.


둘째야! 세월(歲月)은 결코 기다려주지 않는 이웃집 처녀와 같은 것이란다.

저 혼자 믿고 사랑한다고 여겼는데 어느 날 보니 그녀는 다른 먼 곳으로 시집을 가버렸다는 그런 이웃집 처녀 말이다.

그렇게 세월은 너만을 기다려주며 알뜰하게 너를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챙기는 사람에게만 보상(報償)을 주며, 언제나 저 혼자 훌쩍 떠나버리는 매몰(埋沒) 찬 면도 가지고 있단다.

이 세월이 하루라도 덜 갔을 때 <비만과의 전쟁(戰爭)>에서 이긴 네가 그 자신감(自信感)으로 세상사(世上事) 모든 일을 멋지게 처리해 가는 그런 통쾌(痛快)한 과정(過程)을 기다리고 또 그런 광경(光景)을 그려보면서, 세월 역시 너를 도와주도록 하느님께 간절히 간구(懇求) 드린다.


자 그럼 여기까지로 줄이련다.

부디 살을 빼거라.

스트레스는 받지 말고.

스트레스는 받지 말고..

스트레스는 받지 말고...


-요건 사족(蛇足)-


둘째야! 정말로 졸업을 축하한다. 그리고 네 그 세월 안에서 참으로 가족을 위한 수고도 많이 했구나!

2001년 2월 7일.

21세기의 첫 정월 대보름 밤. 남반구 산호해에서 둥근달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둘째에게 아버지가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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