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배려하는 맘 조금만 가진다면

한솥밥을 먹는다는 의미를 생각하며

by 전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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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밥솥에서 밥을 푸기 전에 물그릇에다 밥주걱을 적시어 밥알이 주걱에 늘러 붙지 않게 해주는 모습.

(동승 기간 중 아침식사를 위해 밥을 퍼주던 아내 모습)


예전 내가 처음으로 배를 타던 시절만 해도 사관으로 승선을 하면 경제적인 면도 타 직종에 비해 앞서 있었지만 선내 생활에 대한 처우 역시 만만치 않은 예우가 있었다. 식사할 때 거들고 도와주는 취사부의 인원만 하더라도 메싸롱, 싸롱, 쿡, 그리고 조리장이 있어 밥을 해주는 일만이 아니고, 식탁의 배식(配食)까지도 그들이 도와주고 있었다.


세월이 우리의 그런 좋았던(?) 시절을 앗아갔는지, 아니면 우리 스스로 아까운 시간을 허송했는지, 지금엔 그런 서비스는 선장이라 해도 누릴 수 없도록 메싸롱이나, 싸롱이란 직분 자체가 배안에서 아예 사라져 버렸다.


식사를 하러 가도 셀프서비스로 전기밥솥의 밥을 스스로 퍼서 먹어야 하니, 그렇듯이 예전을 생각해 그리워(?) 해보다가도, 제 먹을 만큼 풀 수 있어 좋다는 견강부회(牽强附會)의 이론으로 얼버무리듯 웃어넘겨 버려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이가 밥을 퍼내는 일을 스스로 하게 되면서, 밥주걱에 밥이 늘러 붙지 않도록, 물이 담긴 그릇에 주걱을 담가주며 사용하도록 배려해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따라 일찍 일어났건만 컴퓨터 관계의 일로 운동까지 좀 빼먹으면서 우물쭈물하다 보니 그만 식사에 일등을 놓친 순서가 되어 식당에 도착하게 되었다.


당연히 누군가 나보다 일찍 와서 먼저 식사를 하고 간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밥을 푸면서 밥주걱에 밥풀을 잔뜩 칠해 놓듯 붙여 놓은 채 그대로 물그릇에 넣어주지 않아, 많은 양의 밥알이 물에 퉁퉁 불어나도록 해 놓고 간 것이다.


식기건조기에서 꺼낸 뜨거워져 있는 밥그릇을 조심스레 꺼내 들어 밥을 푸려고 주걱을 드는 순간, 아직도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밥주걱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는 아쉬운 마음에 끌~끌 혀를 차려는 입을 다독여주며, 물그릇의 가장자리에 주걱을 문질러 밥풀을 떼어내 본다. 그렇게 묻어 있는 밥풀을 제거해 준 후 밥을 푸기 시작한다.


조금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좀 늦어 식탁에 간 죄(?)로 남들이 써서 지저분하니 만들어 놓은 그런 주걱을 쓰면서 받게 되는 불쾌감을 생각해서라도, 자신이 쓰고 난 주걱은 자신의 밥그릇에 철저히 마지막 한 알까지의 밥알을 긁어 담아준 후 물그릇에 담가야 하는 게 아닐까?


그것은 결국 남을 위하는 이타(利他)의 길이기도 하지만 언필칭(言必稱) 되돌아오는 부메랑의 모습을 봄과 같이 자기 자신도 덕을 보게 되는 일인 것을, 왜 사람들은 그런 당연함을 못 보고 지나치는지 마냥 안타까울 뿐이다. 누구나 한마음 한 뜻으로 작은 일에서부터 고쳐 나가도록 동참을 할 때, 우리 사회는 살만 한,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뀔 것이라 여기며 오늘도 작은 행동부터 고쳐 나가자는 잔소리 같은 이야기를 데이워크팀이 작업 전에 모여서 행하는 TBM 시간에 일부러 참여해서 토로해 본다.


내가 예를 들어 말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틀림없이 깨닫고 있을 최소한의 한 사람만이라도, 귀가 번쩍 뜨여서 앞으로는 조심스레 나쁜 습관을 고쳐주었으면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아니 그렇게 될 거라 믿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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