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판 화덕에 대한 욕심
새로 보급받은 컴퓨터를 내 방에 설치하기로 했다. 보급받아 놓기야 벌써 한 달이 넘어 선 물건이었지만, 어디에 장착할 것인가를 따지며 재어보다가 최종적으로 내 방에 장착시켜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이 오늘이다.
하루 종일 성능이 좋아진 새로운 기종에 대한 기대로 약간의 흥분조차 생겨서 들뜬 기분이다.
공용의 물건이긴 하지만 내 방에 설비해서 거의 나 혼자 사용할 수 있는 상태이니, 마치 어린애가 자신의 장난감을 처음 만나 어쩔 줄 몰라하는 듯한 그런 기분으로 하루를 보낸 것이다.
CPU CELERON-633, HDD 20 GB, MEMORY 64MB. 이란 사양을 가진 물건인데 어느 정도의 위력을 가진 물건인지를 정확히 꿰뚫어 보지는 못하고 있다.
평판으로 된 모니터 화면의 환한 모습에도 혹하여, 지금껏 쓰던 화면과 비교를 하면서 새삼스럽게 오늘 아침까지도 흡족한 마음으로 쓰던 컴퓨터가 너절하고 뒤떨어진 한 물 간 모습으로 눈에 비친다.
이렇듯 아주 얄팍한 내 마음 씀씀이에 나도 나 스스로를 그 정도의 수준밖에 안 되는 거야? 하는 스스로를 딱해하는 심정으로 다시 봐야 할 지경이다.
대충 넣을 정보는 넣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먼저 있던 컴퓨터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정보를 거의 모두 새 컴퓨터에 옮겨주는 일을 끝내고 난 후, 식사를 하려고 식당을 찾아 나선다.
참 오늘의 저녁 식사는 야외(선실 바깥 갑판)에서 하는 걸로 오전에 결정을 보았으니, 후부 갑판으로 내려가야 하는 거지 퍼뜩 떠 오르는 생각에, 발걸음을 선실 밖으로 나서며 후부 갑판 쪽을 향한다.
오래간만에 후부 갑판에서 불 갈비를 구우며 소주도 한잔 곁들이는 주말의 오후로 지낼 수 있게, 벌써 며칠 전부터 불판과 화덕을 새로이 만들고 있었다.
이번의 불판과 화덕은 지난번 포항을 출항할 때 승선한 조기장이 철판을 오려내고 용접으로 붙이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만들어 낸 것이다.
난로 위에 올려놓을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불판 석쇠까지 만든 것인데, 어제 오후부터 마지막 손질을 가하며 시간에 쫓기다 보니 오늘 오전까지도 특수 용접 불꽃을 날렸던 것이다.
조기장의 만드는 솜씨가, 육상에서 용접 일 한 가지로는 회사를 차려도 남에게 떨어지지 않을 만큼 실력이 좋으니, 바퀴까지 달아주어 쉽게 굴려서 이동할 수 있는 화덕은 일종의 작품으로 생각해도 될 물건으로 보인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잘 다듬어진 석쇠형 불판과 불고기용 화덕은 무겁기는 해도 우리 집에 갖다 놓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조차 부추길 수 있는 튼실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가든파티라도 하면서 마음 놓고 풍성하게 고기를 구워 낼 수 있는 그야말로 튼튼한 철판으로 만들어진 화덕이다. 그 무게 자체만으로도 듬직한 물건으로 아직 그런 야외 행사를 할 만한 장소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훗날 퇴직 후 시골 살림도 생각해 보는 입장에선 필요해 보이는 물건이라 욕심을 가져 보는 것이다.
어쨌거나 우스개의 농담을 한번 던져 본다.
-이것 잘못 만들어 쓸모없는 것 같으니, 이번 포항에 가면, 밖에 내다 버려요.
정색을 하고 내뱉는 내 어조에 모두들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어지는 만든 이의 표정이 야속한 눈길마저 떠올리고 있다.
-버리면 내가 가지고 가려고.
다시 정색을 하고 내뱉듯이 이어지는 내 말에 그제야 모두는 농담을 받아들이며 마음껏 웃어준다. 나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