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폐공간 드나들기
에어컨디셔너를 무색하게 만들어 주는, 후덥지근한 열기가 방안을 가득 채워주고 있다. 좀 짜증이 나는 점심 식사 후의 오후인데 느닷없는 기적소리가 선수로부터 울려오고 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세 번씩이나 장음으로 울려주고 있어,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라 짐작하며 부리나케 브리지로 올라간다.
마침 당직사관인 이항사가 윙 브리지에 나가서 선수 쪽을 향해 서서는 갑판에서 일하고 있는 승조원들에게 양팔을 벌려 흔들며 무슨 뜻인지 모를 수신호를 보내고 있다.
-무슨 일이야?
궁금함을 한껏 품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저어~ 적도를 지나가서요...
하며 이항사는 겸연쩍은 웃음을 짓는다.
-이 사람아, 그런 기적소리를 울리려면 나한테 미리 알려주고 하지 놀랬잖아!
하며 갑판 쪽을 살핀다.
평상시 적도를 지나는 날에는 적도제도 지내며 휴무를 하는 게 통상적인 일인데, 아무래도 Topside Wing Tank 점검은 물이 실리지 않고 비어있을 때 하는 게 제격이라, 다음 날 적도 통항의 하루를 쉬게 하고 오늘은 탱크 내부 검사를 강행하기로 했던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모양이다.
그런 예정에 의해 오후에 일항사가 Topside Wing Tank에 들어가서 검사를 하려고 밀폐된 구역의 진입 시 주의할 가스 중독이나 호흡장애 등을 생각하여 지금은 탱크 내부의 가스프리를 실시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런 경고 없이 울려 퍼지는 기적 소리는 나를 충분히 놀라게 할 수 있는 경보음인 것이다.
-일항사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
궁금증을 품은 질문을 하니
-아까 탱크에 들어간다며 VHF CH 15로 맞춰 놓고 기다리라고 했는데요.
-그래? 그럼 탱크에 들어간 거야?
-아니요, 그런 연락이 전화로 와서 VHF만 켜 놓고 있었어요.
-그럼, 전화를 켠 후 말을 맞추어 보았어?
-.......................
이항사는 자신의 무심함을 깨달은 듯 말을 못 한다.
안전을 생각하며, 밀폐된 탱크에 들어가는 일을 아무것도 아닌 쉬운 일로 생각지 말라고 백날을 이야기해도 그들은 들은 그때뿐인 사람같이 행동한 것이다. 이야기 듣고 시간이 좀 지나면 모두 잊고 무심해지는 것이다. 일항사의 현재가 아무래도 조심스러워지는 기분이 들어 한번 체크를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며,
-일항사가 지금 어디 있는지 방송으로 한번 알아봐.
하는 지시를 내린다.
-선내 계시는 일항사님!! 이 방송 들으시면 즉시 브리지로 연락 바랍니다.
방송이 나가기가 무섭게 전화벨이 울리는 걸 방금 방송을 한 이항사가 받더니,
-여보세요, 예, 알았습니다.
하고 수화기를 놓는다.
-누구냐?. 어디서 온 전화야?
다시 궁금증이 증폭되어 즉시 물으니
-예, 이기사 한데서 온 건데요, 일항사가 아까 탱크에 들어간다고 전화가 왔었대요.
-그래서 지금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 아니냐!
-탱크에 저 혼자 들어갔는데, 아무도 모르고 있다면, 탱크 안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경우 어찌 되겠어?
그런 말을 하며 갑판을 보니 방금 탱크에서 빠져나온 듯,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일항사가 눈에 들어온다.
-일항사 감도 있어요?
반가운 표정은 감췄지만, 안심한 목소리로 Ch15에 맞춰 놓은 워키토키로 불러본다.
-예, 일항사 입니다.
옆에 놓고 있던 워키토키를 집어 들며 응답하는 모습이 보인다.
-탱크에 들어간 후 연락이 없어서 걱정이 되어 부른 거야,
-아, 예, 더워서 좀 힘들기는 했어도 괜찮았습니다.
-그래? 알았어, 탱크 내부에 별 다른 이상은 없지?
-예, 몇 군데 미심쩍은 곳은 있었지만, 별다른 큰 이상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 다행이구먼.
-그런데 생각보다 무더워서 땀으로 목욕을 했습니다.
-알았어! 얼른 들어가서 샤워하고 검사 결과나 올라와 알려 주게나.
그렇게 대화하고 있는 동안에 시간은 오후 4시를 넘어가고 있다. 일항사의 항해 당직 시간이 이미 도래한 것이다.
일항사가 샤워를 끝내고, 항해당직을 위해 올라올 때까지 브리지에서 기다리 기로 한다. 탱크 검사 결과를 약식으로라도 빨리 알아 두려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