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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더 받은 작업만 하세요.

참여자 모두가 한 번은 흉금을 털어 내어야 할 일.

by 전희태
B301(1026)1.jpg 역경속에서도 무지개는 뜨는 것

사진 : 보트 데크에서 밑으로 빠지는 스커퍼의 라인이 길게 지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렇게 직각 보행하듯 만들어져 있어 부근의 선체 정비에 많은 어려움도 주고 있었다.


내가 이 배와 인연을 맺으면서부터 생긴 일이니, 벌써 3년이나 이어져 온 이야기이다.

이 배의 보트 갑판에 고이는 빗물을 배출시키기 위해 설비된 SCUPPER의 위치는 주갑판으로 내려가면서 90도 꺾어짐을 두 번씩이나 해서야 하우스 옆 벽면을 타고 물이 떨어지게 만들어져 있었다.


신조 시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그 구부러짐으로 인해 자주 물이 막히기도 하고 너무 길게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수로가 이어지다 보니 녹이 나는 부분도 많아지는 모순을 갖고 있었다.


선체 미관상이나 물의 빠짐 상태로 보나 직각으로 구부러진 상황이 문제가 되기에 길게 되어 있는 파이프를 끊어내어 짧게 만들어 주자는 의견의 일치는 있었으나 그간 다른 바쁜 일에 밀려 실제로 작업할 사람들의 참여가 부진한 채 어영부영 오늘까지 미뤄오고 왔었다.


새로 올라온 조기장이 원래 보수반 출신에다가 젊고 의욕도 많으며, 특히 우리 배에 오면서 정식 조기장으로 진급하여 올라온 사람이기에, 그간 밀려 있던 그 일을 시간 나는 대로 해보자는 이야기를 하여 좌현 앞쪽에 설치된 SCUPPER를 잘라내고 제대로 이어 주어 내 마음에 들게 조처가 되었다.


마침 그 작업을 한 조기장에게, 앞으로는 자신의 오더를 받지 않은 작업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지시를 일기사가 강력하게 내렸다며, 우현 쪽의 동일한 작업을 미루고 있는 사항에 대해 언제 할 거냐고 묻는 나에게 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대답한다.


내가 이야기한 일을 하기 위해 과업 시간이 끝난 휴식 시간이지만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일한 조기장의 의욕을 머쓱하게 만들며, 그야말로 일한 공은 없이 꾸지람만 들은 것으로 여기게 되었음인지, 아주 기분 나빠하는 표정이었다.


이번 조기장은 우리 배에 올 때 회사로부터는 한 항차만 타고 하선한다는 언질을 받고 왔기에, 이번 귀항하면 내릴 생각이었다는 데, 막상 와서 보니 동료들이 다 잘 어울려지는 선내 분위기가 좋아서 같이 타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 계속해서 승선할 쪽으로 마음을 굳혀가던 중에 이런 일이 생기니 다시 내려야겠다는 생각 쪽이 우세해지는 모양이다.


왜 일기사가 마치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들과 같이 관료주의에 굳어져 규칙에 얽매인 방법만을 고수하고 자신의 체면만을 고집하는 것 같이 굳어졌는지 그 이유를 한번 알아봐야겠다.


아침 식사 시간에 알아보려 하다가 점심 식사 때로 미루기로 작정하고 방으로 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굳어진 이유를 짐작할 수가 없다.


점심 식탁에 일기사는 나타나지 않고 기관장만이 먼저 왔기에 차라리 그에게 말을 하는 것이 나을 듯도 싶어 말을 꺼냈다.

-조기장이 이번에 국내에 귀항하면 내린다는 데 기관장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운을 떼니

-두 항차 하고 내린다고 했었는데..., 이번에 내리라고 회사에서 연락이 왔나요?

기관장은 내가 묻는 말을 들으며 오히려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그런 말을 하는가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만약 그렇게 두 항차 하고 내린다면 내려주고 싶은 거요?

-더 탔으면 좋겠는데요.

조기장이 우리 배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의견을 밝힌 셈의 기관장 대답을 들으며 내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저 께였든가 어제 오후였든가, 보트 데크에서 내려가는 스커퍼의 이동 용접을 조기장이 했었는데, 그 일은 내가 이 배에 타던 3년 전부터 말이 나온 일로서 얼마 전 내가 직접 조기장에게 이야기를 해서 실시가 된 일인 건 아시죠?

-예, 알고 있습니다.

-그 일이 끝난 후 작업 보고 받는 자리에선가, 일기사가 앞으로는 자신이 오더 한 일만 하라고 이야기했다는데...

-자신의 쉬는 자투리 시간에 배를 위해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해준 말로는 좀 의욕을 죽이는 너무 지나친 말인 것 같아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고 싶어 말을 하는 거예요. 하고 운을 뗀 것이다.

-어제 일기사가 이야기할 때 저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런 뜻의 말은 아니었는데요.

하면서도,

-근데 어제 한말이 벌써 선장님한테 들어갔어요?

라는 말을 보탠다.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와 어제의 일인데 어느새 선장에게 보고가 들어갔는가 하는 좀은 기분이 언짢은 말투로 들리는 응답이다.

-언제 적 이야기라도 선장이 모르고 있다는 것도 문제가 있는 거지요.

나는 그런 나의 의견을 표명하며,

-도대체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건데요?

하고 다시 물어본다.

-앞으로 할 일도 많은데 될 수 있으면, 기관장이 관장하는 수리 스케줄에 따라서 해주었으면 하는 의미로 한 말로 알고 있습니다.

한다.

하기는 선내 전반에 걸쳐 생기는 여러 가지 수리할 사항 가운데 스커퍼의 이동 같은 일은 어찌 보면 급한 일이 아닐 수도 있어, 더 바쁘게 해내야 할 일로 인해 뒤로 미뤄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뒤로 밀리며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그간 비만 오면 보트 데크에 고인 물로 인해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기에, 이번 조기장의 교대에 즈음하여 이일을 더 이상 미루지 않고 끝내려고 내가 서둔 감은 있다.

그랬기에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하여 조기장은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이일을 완성시키려고 했던 것인데, 그런 나의 조치가 어쩌면 조기장을 감독하는 일기사의 입장에 불편한 심기라도 끼쳤던 것일까?

-이번 조기장이 우리 배에는 진급하면서 승선했지요?

말머리를 바꾸어서 대화를 재시도하기로 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래서 열심히 일하여, 의욕적인 모습도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컸던 것 같은 데...

-그렇듯 자발적으로 쉬는 시간에 일한 사람에게 그 한 일에 대한 칭찬은커녕,

-앞으로는, 나의 오더를 받은 일만 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선의의 자발적인 작업 풍토의 의욕을 꺾어 버린 일이 아닐까요?

길게 이야기를 하니 아무래도 그런 말을 선장으로부터 듣는다는 것 자체가 찜찜하여 어딘가 기분이 풀리지 않는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사실은 잘못했다고 질책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사‘아’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는 말과 같이, 부하들을 통솔하는 방법이 좀 서툴러서 그들의 기분이나 의욕을 꺾어버리는 일을 한셈이 된 걸. 고쳐보자는 의미로 내 이야기를 받아 주길 바라는 거요.

-예, 잘 알겠습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나의 말한 본때도 그렇게 나긋나긋한 모양은 아니었던 것 같으니, 아직도 약간의 언짢은 기색이 남은 기관장의 표정도 인정은 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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