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에 따라 변하는 상황에 대한 심사
오늘도 접안 계획이 하루 밀려났다.
서해에 내려진 폭풍주의보가 아직 철회되지 않은 상태라 군산에서 올라 올 터그보트의 발이 묶여 늦어지는 것이다. 바람은 엊저녁을 고비로 많이 수그러들었건만 그 건 이 항구 우리가 투묘하고 있는 곳의 사정이고 서해 전체에 내려진 폭풍주의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또 허송세월하고 있는 것이다.
낮 두시쯤에 브리지로 부터 전에 나와 같은 배를 탔던 안 OO 통신장이 마침 VHF전화에 나와서 나하고 통화하고 싶어 한다는 전언이 왔다 . 브리지에 올라가 통화를 시작했다. 군산에 배가 입항해 있고 마침 우리배가 군산무선을 불러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을 듣고 나온 것이라며 안부의 수인사가 오고간 뒤 우리 배가 최다 응모를 이룬 지난번 사내 안전표어 모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자신이 승선한 배가 일등의 최다응모 배가 될 것이라 확신하며 340개의 표어를 출품하였는데 우리배가 722개를 내어 놓는 바람에 더블 게임으로 졌다며 웃는다. 아울러 우리 배에서 가작으로 두 편의 표어가 당선 되었다며 축하한다는 말을 하는데 그중 한 편은 바로 내가 낸 것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는데 우리 배의 선수 앞 쪽에 어선 한척이 나타나더니 안강망 어망을 들어 올려서 잡힌 고기를 걷어낸 후 그물을 들었다 놓았다를 몇 번 반복하며 서성거리고 있다. 잠시 후 눈이 내리기 시작하니 어항 쪽으로 들어가 버린다. 내일 우리가 양묘작업을 할 때 그 그물이 남아 있게 되면 약간의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 <항무보령>에다가 상황보고를 하며 그 배의 이름도 가리켜 주었다. 어선 유X 호였다.
우리의 뜻은 항로상에 어망을 놓고 있는 그 배가 나중 어망이 파손되는 피해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자신들의 범법으로 인한 손해이기에 다른 말이 없기를 바란 때문이며, 또한 잃어버리고 있는 우리의 권리인 항로상 안전항행을 보장 받고 싶은 심정 때문이었다.
밤이 되면서 날리던 눈발이 완전히 함박눈으로 변했다. 마구 퍼 붇기 시작하는 눈송이들로 갑판을 비롯한 온 배 위는 백설의 세계로 변해 경치로야 그럴듯하니 멋이 있다.
아침이 되니 눈은 그쳐있다. 밤새 쌓인 눈을 치우기 위해 갑판부 전 선원이 동원되어야 했다. 눈이 내릴 때에 느꼈던 정서는 팽개쳐지고 현실적으로는 치워야 할 쓰레기 보다도 못한 애물단지로 전락한 눈이 된 것이다.
열심히 쓸어내어 바다로 던져본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론 역부족이라, 해수를 방화 호스로 끌어 올려서 물로 때려내는 작업을 추위 속에서 진행하고 있다.
한 밤중 불빛에 비쳐 보이는 아름다운 눈발의 모습에 환호하던 밤사이의 정서가 날이 밝으니 치우지 않으면 미끄러지거나 하여간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필요 없는, 아니 필요 유무를 따지기 전에 아예 거추장스러운 일꺼리로 나타난 것이다.
모두들 해수를 끌어 올려 눈을 쓸어내는 일에 여념이 없는 아침에 오늘의 접안 계획을 대리점에 재삼 문의하니 아침 9시 현재로, 금일 오후 접안 예정이 유효한 상태란다. 오후로 들어서면서, 여러 명의 가족들이 부두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이 잦아지며 선원들의 심금을 안타깝게 해주던 중 그래도 예정 시간에 파이로트가 승선한다.
배는 그렇게 움직이기 시작하여 오후 1818시, 부두에 마지막 계류삭을 걸어 당기며 접안작업을 끝냈다.
부두 한 구석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서있던 선원 가족들과 함께 아내도 환한 웃음을 띤 안심한 표정을 흘리며 배로 올라왔다. 두 달 여만에 이뤄지는 재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