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전화 통화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

by 전희태
순간적으로 변화가 무쌍한 구름의 모습

책상에 앉아 비몽사몽간을 헤매고 있었나 보다.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엉겁결에 수화기를 들어 응답하니 브리지의 당직사관이다. 본사 영업부의 S대리로부터 위성전화가 왔단다. 지금이 점심 먹은 후의 시간이지 하는 마음으로 정신을 차리며 시계를 보니 2시 35분 정도 지나고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궁금증이 증폭되어 몸을 일으켜 세운 채 그대로 브리지로 올라간다.


브리지 문을 밀고 들어서니 해도실과 조타실 간에 설비된 야간 등화관제용 커튼이 두텁게 쳐져 있다.

-뭐야 벌써 밤이 왔단 말이야? 왜 커튼을 치고 야단이지?

등화관제용 장막 자락을 걷으며 내다 본 조타실 안쪽은 진짜로 캄캄한 암흑이다. 벌써 밤이 온 것이다.

아까 시간을 2시 35분으로 본 것은 비스듬히 시계를 보며 바늘의 길이를 반대로 인지한 때문에 착각한 시간이었다. 저녁 7시 10분이 맞는 시간이었다.


우리나라는 여름철이 한창으로 저녁 8시도 아직 어둡지 않은 상황일터인데 남반구에 들어선 지금의 이 항행은 저녁 시간이 조금 지났는데 이미 어둠이 사방을 꽉 채워 놓고 있는 것이다. 시간만 나면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졸음을 청하는 나이가 벌써 나를 사로잡고 있단 말인가? 확실히 아까 전화벨이 울리기 바로 전에는 반쯤은 깰락 말락 한 상황의 잠속에 있으면서 깨어있는 생각은 점심 먹고 이게 무슨 일이야? 하는 좀은 자조적인 심정이 식곤증에 잠겨있다고 스스로를 진단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브리지의 일항사는 나를 맞이하며, 내가 선교로 올라오는 시간을 감안하여 끊었다가 다시 전화를 걸어주겠다는 서울과의 통화가 있었다는 말을 전한다. 현재는 전화가 끊겨 있는 상황이다. 통신실로 들어섰다. 잠시 후 위성전화 벨이 울린다. 우리 배의 위치 보고가 이번 항차 평균 예상속력으로 계산하여 18일 1830시에 도착한다고 전보로 보고 한 것을 토대로, 최대 두 시간을 그보다 더 당겨서 도착할 수는 없겠냐는 이야기를 하려고 걸어온 전화였다.


그렇게 당겨서 근무 시간대에 도착하게 되면 그만큼 NR TENDER(주*1) 시간과 ACCEPT 시간도 앞 당겨지니 그 시간만큼의 이익을 가질 수 있는데, 17시를 한 시간 넘긴 도착은 다음날 아침 9시까지의 15~16 시간을 카운트가 안 되는 로스타임으로 만드니 그를 막아보자는 이야기를 하려고 걸어 온 전화였다.


아내가 암수술을 하려고 입원했을 때, 문병을 가려했는데 회사 일이 바빠서 못 가봐서 미안하다는 인사를 제일 먼저하며, 용건을 이야기하여 오니 나의 말도 자연히 부드럽게 응대가 된다. 현지 대리점에는 이미 15시 도착으로 통보를 해놓고 있다며 입항 예정이 처음보다 당겨지어 짐도 900톤 정도는 더 싣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는 말까지 해주니 전화 걸어온 S 대리도 아주 흡족해 하며,

-전화를 안 해도 되는데 했군요.

하며 미안하다는 발언을 한다. 그런데 인사치레가 아닌 실제 미안한 마음의 표현으로 들린다.


통상적으로 배를 타면서 지금까지 겪었던 상황으로는, 본사로 부터의 지시를 위한 전화라는 것이 사실은 현장의 우리에게는 무엇인가 좀은 껄끄러운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오늘의 전화는 서로가 알게 모르게 정이 흐르고 마음이 통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으며 부탁 하고 싶은 이야기도 다하고 더하여 좋은 결과로서 매듭짓고 있다. S 대리가 용건에 앞서 인사 차려준 안부로부터 시작 되었지만, 나에게는 고마운 마음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는 사안이니, 회사가 원하는 바가 뭐라는 걸 알아채는 즉시 발 빠르게 그에 응답해 주는 기쁨으로 이어진 것이다.


더하여 짐도 더욱 많이 싣도록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해주게 되었으니 상대도 그런 협조를 받는데 대한 고마움이 곁들여지어,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며 훈훈해질 수밖에.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 동안을 기분 좋은 느낌을 가지고 통화를 되씹어 보았다.


주*1 :NR.(NOTICE OF READINESS)

본선이 항구에 도착하여 적양하 및 모든 작업을 해낼 수 있는 준비된 상태임을 시간을 명시하여 용선주에게 알려주는(TENDER) 서류로 용선주가 ACCEPT(서명)하면 선주와 용선주간에 합의된 약정된 시간부터 용선주의 LAYTIME이 시작되는 용선료 산출의 기본이 되는 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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