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을 하면서도 세대 간 격차를 느끼는 마음
쓰는 양만큼의 청수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본선 조수기(造水機)의 형편상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금 항차 출항지에서 양쪽의 청수 탱크에 모두 물을 가득 채우고 떠났었다.
그러나 너무 한쪽 탱크의 물만을 사용하다 보니 물속에 섞여들은 녹 가루와 불순물이 많이 남아 그 물에 옷을 담그면 그대로 깨끗이 세탁되는 게 아니라 벌겋게 녹물이 들어 오히려 더 큰 빨래 감을 만드는가 싶은 우려가 들었다.
그런 이유로 그간 빨래를 미루었는데, 그저께부터 탱크를 바꿔 물이 훨씬 깨끗이 나오는 걸 확인하면서 빨래를 시작하려다가, 이번에는 황천으로 돌변한 날씨 때문에 빨래할 마음을 앗겨 버려 미적이던 중 날씨도 좋아졌고,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어 저녁 식사 후 빨랫감을 잔뜩 안고 세탁장을 찾았다.
나와 같은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 여럿이 있었던 듯 몇 무더기의 이미 해 놓은 빨래 뭉치가 세탁기 옆에 수북이 쌓여 있건만 그것도 모자란다는 듯이 한쪽의 작업복 전용 세탁기는 연신 앓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다.
마침 일반 옷들을 위한 세탁기에 세탁 과정을 모두 끝낸 빨래가 그대로 들어 있어 얼른 꺼내어 서 탈수기에 넣어 돌아가게 해 준 후, 그 자리엔 내 빨래를 넣어 세탁을 시작하였다.
그곳에서 계속 기다리기도 무엇 해 방으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 한참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세탁 과정이 이미 끝났을 것 같아 서둘러 세탁장으로 내려갔다.
마침 먼저와 있던 실항사가 내가 누구의 세탁물 인지도 모른 채 탈수기에 넣어준 빨래를 꺼내어 털어 내더니, 옆에 있는 건조기 안에 넣고 스위치를 돌려준다.
-그것 자네 빨래였나?
-네엣!
기합이 바짝 들은 실습생답게 힘차게 대답하는 걸 들으며 헹굼 과정에 있는 내 빨래에 린스를 넣어주었다. 그렇게 늦지 않게 세탁장을 다시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방에 와 있는데 실항사가 찾아왔다.
3 항사의 심부름으로 내방을 찾아온 것이다.
-무슨 일인데?
-예, 삼항사님께서 이것 갖다 드리라고 해서요.
하며 두 장의 컴퓨터 디스켓을 내놓는다.
(존대 말을 쓰는 방법이 틀린 것을 말해줄까 하다가 말이 길어질 것 같아 나중으로 미루었다.)
-그래? 알았어, 참! 네 빨래는 건조기에서 다 꺼내 갔니?
이제 내가 건조기를 사용할 차례가 되어와서 미리 상황을 물으니,
-아니요, 지금 내려가서 꺼내려하고 있습니다.
-그래 알았어, 나도 빨래를 건조기에 넣어주러 내려가야겠군.
하며 일어서려는 나를 보더니
-제가 넣어 드리겠습니다.
하며 내가 내려가지 않아도 되게 일을 만들어 준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주렴, 그런데 양말이 많으니 짝을 잃지 않게 조심해라.
어느새 노인성 잔소리로 치부할 수 있는 말까지 덧붙이며 부탁한다.
-예, 잘 알았습니다.
녀석은 요새 아이들의 모습 그대로 씩씩하니 대답을 하며 떠나갔다.
한참이 지나 이제 건조가 끝났을 시간이 넘었다 싶어 슬슬 아래층으로 내려가 본다.
건조기가 돌아가며 내는 좀은 굉음인 기계음은 이미 멎어 있다.
그렇게 건조기는 쉬고 있지만, 그 품 안에 담고 있는 내 빨래들은 아직도 따끈따끈한 감촉과 린스의 향으로 기분 좋게 나를 맞아준다.
얼른 바스켓에 주워 담아 방으로 돌아와 하나씩 정리를 하는데 내일 새벽에 당장 써야 할 운동용 양말 한 짝이 외톨이가 되어서 나를 쳐다보듯 남아있다.
-기어코 내 잔소리가 맞아떨어지는 구만...
하는 마음에 양말 한 짝을 손에 들고 다시 세탁장으로 가는 길에 실항사도 불러 내었다.
-실항사, 양말 한 짝이 없는데 아까 모두 잘 꺼내어 건조기에 넣었는가?
-예,
하며 좀은 머쓱한 표정으로 내 손에 남아있는 한쪽의 양말을 살펴본다.
-봐라, 양말 한 짝이 없어졌잖아.
건조기 안을 다시 살폈으나 그곳은 텅 빈 깨끗한 상태이다.
이번에는 세탁기를 살피는데 이미 다른 세탁물이 들어가 돌고 있어 혹시 그 안에 남겨진 채 도는가 싶어 세탁을 중지시키어 그 빨래를 들어 올린 후 그 아래를 살펴보려는데, 마침 세탁장 안에 들어서던 일기사와 눈길이 마주치게 되었다.
일기사는 내가 하든 일을 보며 좀은 미심쩍은 표정이 되어 빠르게 다가와서는,
-제 빨래는 저쪽 세탁기에서 이미 한번 씻어 깨끗해진 것을 다시 빠는 겁니다.
하며 내가 들고 있는 빨래를 보며 변명성의 발언을 해 온다.
도둑놈이 제 발 저리다든지 하여간 그런 투의 일이 된 게, 그는 배에서 더러워진 작업복을 빨 수 없도록 약속해 놓은 일반 세탁기 안에다가 자신의 작업복을 넣고 빨고 있는 현 상황을 납득시키려고 그랬던 것이다.
세탁기 안에서 돌고 있는 자신의 작업복을 일부러 들어 올리는 광경을 보게 되니 작업복을 빨지 말라고 약속한 세탁기 안에 들어있는 벌칙품 조로 세탁되고 있는 작업복을 적발당하고 있는 상황으로 오해한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진짜로 찬찬히 그 작업복을 살펴보니 이미 깨끗하니 초벌 빨래가 되어있어 그 세탁기를 사용해도 괜찮을 모양이기도 하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내 양말 한 짝이 떨어져서 혹시 이 안에 남아있나 살피는 거야.
하는 말로 그가 오해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뜻을 전하듯 손에 든 양말 한 짝을 흔들어 보이니,
-아, 예, 그 안에 양말은 없던데요. 한다.
-그래 그럼 이 부근 어디에 떨어져 있겠지.
하며 세탁기 한쪽, 탈수기 옆을 보니 마침 없어진 찾고 있는 내 양말 한 짝이 아직 젖어있는 상태로 숨어 웅크리듯 떨어져 있다.
-봐라, 여기 있지?
얼른 양말을 들어 실항사에게 보이며,
-노인네 잔소리도 필요한 것이지?
하고 물으니 실항사는 멋 적은 웃음을 띠면서도,
-예,
하고 또 한 번 힘찬 대답을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