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운동 중 부상당함

조심한다면서도 잘 안다고 생각하는 과신 때문에

by 전희태
DB(7508)1.jpg 먹은 오렌지의 씨앗을 발아(發芽)시켜 심어 놓은 화분을 브리지내 선수창 앞에 놓아둔 모습.



창밖으로 보이는 갑판의 가장자리 쪽을 따라 걸으며 배를 한 바퀴 돌면서 만나게 되는 선체의 구조물의 가지 수는 발밑, 머리 위 가리지 않고 많기도 하기에, 새벽 운동을 위해 어둠 속에서 움직일 때엔 각별한 주의가 요망되는 것이다.


새벽 운동을 위해 버릇처럼 이른 새벽 시간만 되면, 언제나 시계부터 들여다보면서 잠에서 깨어나곤 한다.

그리고 어슴푸레하니 떠 보이는 시곗바늘의 야광 속에서 숙달된 눈길은 몇 시쯤 되었구나. 알아내곤 한다.

어떤 날은 아직 일어나기에는 이른 시간이니 조금 더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냥 누운 채로 있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까딱하면 기상 예정의 시간을 넘기는 일이 발생될 것 같은 우려가 떠오르기에, 다시 깊은 잠을 잔다는 것은 이미 물 건너간 일이란 걸 잘 알고 있다.


그런 포즈로 비몽사몽 간의 시간을 우물거리다 보면 이건 잠자는 것도 휴식을 취하는 것도 아니라는 이성이 정신을 차리게 하면서 차라리 일어나는 게 낫겠다는 결단으로 머리맡의 불을 켜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확실한 시간을 알려고 다시 시계를 들여다본다. 어떤 때는 꾸물거리고 있던 시간이 두 시간이나 지난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매일 아침을 거의 이런 식으로 기상하는 게 다반사인데 오늘은 그렇게 일어난 시간이 평소보다 더 이른 새벽 4시였다.

아까 불을 켜기 전 어둠 속에서 창을 통해 비쳐 드는 빛으로 봐서 좀 뿌옇기는 해도 갑판 상 걷는 운동은 조심하면 할 만한 어둠이라 생각했기에 옷을 주섬주섬 차려 입고 후부 갑판(Poop Deck)으로 내려갔다.

달리는 배의 속력으로 인해 생겨난 바람에 휘날리는 빗방울이 몇 방울 얼굴에 떨어지는 속에 찬찬히 발밑을 조심하며 배의 고물(선미) 쪽 끝머리를 돌아 다시 이물(선수)로 향했다.


천둥소리도 없이 한 번씩 비치는 수평선 너머의 먼 번갯불에 순간적으로 환함과 어둠이 교차하는 갑판의 모양이 오히려 조심해서 걸어 보려는 시선을 흩뜨려 주고 있다.


이물인 선수루에 도착하여 그곳을 계속해서 맴도는 운동에 들어서서 이제 어느 정도 타성에 따르게 되었는데, 갑자기 서쪽 하늘 수평선 부근에서 구름에 갇혀있던 달이 불쑥 얼굴을 내밀어 환한 빛을 보내어, 열심히 발밑을 살펴가며 걷던 걸음을 오히려 주춤하게 만든다.


달은 요 며칠 초저녁에 이미 반공중에 있다가 사라져 주었기에 아직도 하늘가에 머무르고 있으리라는 기대는 전연 하지를 않고 있던 중이라 처음에는 밝아지는 불빛을 다른 것으로 오해하여 놀랬던 것이다.

아직도 두텁게 싸여있는 구름 속에서 달만이 삐쳐 나온 듯 둥근 모습을 보이는 걸 확인하며 오늘의 음력 날짜를 짚어본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음력 보름으로 14일의 달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아직 여명이 올 때 까진 시간이 좀 남아 있지만, 저렇게 달이 다시 나타나 주니 잘됐군! 하는 마음으로 운동을 계속하는데, 그동안 오는 둥 마는 둥 몇 방울 스치던 빗방울이 가는 빗줄기로 바꿔지면서 달을 다시 구름 뒤로 숨겨 버린다.


사라진 달과 함께 갑자기 어둠이 밀려오니, 발밑을 그런대로 잘 보면서 가던 눈길이 머무를 곳을 찾아내기가 마땅치 않은 깜깜한 상태로 변해 버렸다.


여기는 오른쪽으로 살짝 비틀어서 두 가지의 장애물 가운데를 통과한 후, 다시 왼쪽으로 돌아한 두 걸음 안에, 완전히 오른쪽으로 90도 이상 돌아가야 한다고, 그동안 머리 속에 입력돼 있던 위치를 따라 지나치는, 어림짐작의 행동을 시작하는데, 갑자기 왼쪽 다리의 정강이 부분에 부딪치는 물체가 있다.


방금 피해가려고 생각했던 전부 마스트 스테이(MAST STAY, 마스트를 세워진 대로 지지하기 위해 마스트 상부에서 갑판 간을 묶어서 잡아준 지지 와이어)를 적절하게 피하지 못하고 부딪친 것이다.


좀은 쓰라린 감촉에 약간의 피도 나는 모양이지만 꾹 참고 운동을 계속하려고 몇 바퀴 더 돌았지만, 비도 그치지 않고 좀 더 심해질 눈치로 어둠 조차 더욱 짙어져 코앞까지 다가서야 겨우 앞에 무언가 있다는 식의 감각을 느끼게 하는 상태라 더 이상 선수루에서의 오늘 운동을 하지 말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기로 하여 계단을 내려서기로 한다.

그 발길이 앞을 보여주지 않는 진짜 어둠으로 인해 공포감마저 슬며시 찾아들어 일부러 가다듬은 마음으로 계단을 세며 발길을 옮기기 시작한다.


하나, 두울, 세엣... 드디어 열셋이란 이미 알고 있는 계단의 수를 세고 난 후, 발밑의 어둠은 걱정 안 하고 그대로 주갑판으로 내려선다.

왜 하필이면 열셋의 계단으로 했을까? 이곳을 통과할 때면 항상 셈을 세며 갖게 되는 13 이란 숫자의 께름칙함에 그건 서양 애들의 이야기야!라고 손사래 치는 마음이 들면서도 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 발판의 숫자이다.


어쨌거나 선내의 모든 계단의 숫자는 각각의 계단 별로 머리 속에 입력되어 있기에, 어떤 곳을 지나치더라도 혹시 정전으로 갑자기 눈앞이 보이지 않는 경우에도 셈을 세어 그곳을 빠져나오는 훈련 아닌 훈련이 되어 있는 선내 생활이다.


거주구가 가까워지니 선내에서 새어 나오는 약간의 불빛에 그나마 선수 쪽보다는 나은 편이긴 해도 불빛의 사각지대에 서면 깜깜하기는 이물이나 마찬가지이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거주구의 외부 계단을 통해 일층, 이층 계속 오르다 보니 5층의 윙 브리지에 올라섰으려니 여기고 있던 계단이, 실은 이미 6층의 톱 브리지에 오르는 마지막 꼭대기 계단에 오른 것이다.

너무 열심히 운동에만 신경을 세우며 빠르게 올라가다가 층수 계산이 헷갈려 한층을 더 올라간 것이다. 황급히 돌아서서 한층 아래의 브리지가 있는 윙 브리지 갑판으로 내려선다.

주갑판에서의 운동은 포기했지만, 좁기는 해도 그야말로 눈 감고도 거칠 것이 없는 윙 브리지 갑판에서 마무리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평소에 걸리적거리는 게 없는 장소라 왼쪽으로 먼저 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도는데 갑자기 발끝을 걷어차듯 달려들어 뒤뚱하게 만드는 장애물이 있다.


순간적으로 화분이로구나! 하는 마음에 얼른 몸을 숙여 발 앞의 상태를 손으로 살피니 다행히 꺾어지거나 떨어져 나온 잎새도 없이 화분만 좀 건드려서 움직인 모양이다. 화분 받침대를 잡아 한옆으로 밀어주며, 비를 좀 맞아 싱싱해지라고 누군가가 브리지 안에서 밖으로 내놓은 모양인데, 너도 이 새벽 나만큼 고생하는구나 싶은 생각을 해 본다.


다시 내 발길을 찬 화분 덕분에 진짜로 오늘의 운동을 마감하라는 신호로 생각하고 브리지의 문을 밀었다. 당직 중이던 일항사가 마중해 준다.

좀 전 선수루에서 와이어에 스치며 다친 왼쪽 다리의 상처가 쓰라린 듯싶어 해도실로 들어서며 바짓가랑이를 들쳐 불빛에 비쳐보았다. 와~ 제법 피도 나왔고 다친 범위도 세 군데로 와이어가 비스듬히 서있는 것과 부딪쳤으니 상처 부위도 그렇게 비스듬히 긁히고 약간 찢어진 부위가 넓게 자리 잡혀서 생각보다 좀 심하게 다친 상황이다.


-상처에 바르는 소독약이 있는가?

-과산화 수소수와 요오드가 있습니다.

-과산화수소는 말고 요오드를 좀 가져오지.

-다녀오겠습니다.

일항사는 나를 남겨두고 배의 의무실로 약을 찾으러 내려갔다.


어둠 속의 새벽 운동을 할 때마다, 선내 구석구석을 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벌써 이런 소소한 사고를 심심찮게 당하고 있었음을 상기해 내게 되니,

-에이 참!

혀를 끌끌차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입맛을 다시며, 약을 찾으러 자리를 비운 일항사를 기다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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