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쉬던 자리에서 다시 공중으로 떠 오를 무렵의 갈매기
보름을 이틀이나 지나쳐간 달이지만 아직도 둥글고 그 빛이 환하여 그야말로 새벽에 아니 한밤중에 일어나 갑판을 돌아도 어둠에 다칠 염려가 없어 좋다.
선수루에 도착하여 열심히 가장자리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는데 앞쪽 갑판상에 하얗게 달빛에 바래지는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갈매기들이 실례를 범해준 배설물들이 밝은 달빛에 반사하여 환하게 보이는 것이다.
틀림없이 부근에 녀석들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살펴보니 바로 한 녀석이 수에즈 운하용 데릭 포스트 (주*1) 위에 앉아서 그 하얗게 변한 갑판 쪽을 향해 꽁지를 두고 있는 것이 보인다.
새들은 어디에 앉든 간에 나중에 날아갈 때를 대비하여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라든가 하여간 그렇게 배설물을 남기는 습성이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지금의 모습을 보니 바로 그런 말을 증명하기 위해 벌려 놓은 상황 같다.
사실 저렇게 쏟아 놓은 배설물은 어지간한 비에도 씻겨 나가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있어 모처럼 배를 깨끗이 정비하고 있는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별로 반갑지 않은 행동을 하는 친한 손님으로 그들을 보게 된다.
갈매기와의 인연을 그냥 무심히 보아 넘길 수 없는 뱃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을 귀한 손님이라 여겨야 하지만, 그들이 지금 배에 와서 행한 배의 한 부분을 더럽히어 선원들로 하여금 가외의 일을 하게 만드는 상황이 좀은 껄끄러운 것이다.
하기사 그런 바닷새들이 배설하여 쌓인 것이 흙으로 덮이어 오랜 세월 후에 광물이 된 것이 인광석(燐鑛石 Phosphate rock)이라고 하니 그 배설물의 응집력이라 할까 하여간 알아줄 만한 가치는 있는 물건 같다.
녀석이 어찌하나 눈치를 살피며 혹시 배설물을 찍하고 낼지 모를 녀석의 꽁지가 향하고 있는 밑을 약간은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지나지만, 아직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기에는 어둠이 남아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단지 달리는 배의 속력에 의한 바람에 밀리지 않고 몸을 곧추 세우기 위해 녀석은 날개를 다리 쪽이 좀 벌어진 M자형으로 펼치며 데릭 포스트 꼭대기를 유유히 지키고 있다.
나의 운동 방법에서 이제는 손바닥을 두드리며 돌아야 할 시간이 찾아와 열심히 박수를 치며 그 밑을 지나가도 경계하는 별다른 태도를 보이지 않고 계속 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아마도 반복해서 그 밑을 지나치는 내 운동을 보면서 자신에게 해를 끼칠 위인이 아니라는 확신이라도 얻었는지 너는 너, 나는 나 식으로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어 혹시나 녀석이 날아오르면서 배설물이라도 깔기고 떠날 때마침 그 밑을 지나가지는 말아야 할 터인데 하는 걱정 같지도 않은 걱정을 은근히 가진 내가 오히려 너무 속물 같은 생각이 든다.
사그러 드는 달빛과 함께 어둠이 사라져 가는 시간이 찾아올 무렵, 나도 이제는 마지막 한 바퀴 더 도는 것으로 그곳을 떠날 생각을 하며 갈매기의 밑을 지나쳤는데 문득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척이 느껴진다.
몇 발자국 더 움직인 후 뒤돌아 보니 녀석은 있던 자리를 차고 올라 어느새 같이 있게 된 녀석인지 모를 다른 한 녀석과 쌍을 이루어 공중에서 갈매기의 활강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침 식사 감을 찾는 물고기 사냥에 나선 모습을 보며 나는 마무리 운동을 하며 천천히 방으로 왔다.
주*1 수에즈 운하용 데리크 포스트: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때 선수 앞쪽을 비치게 하는 탐조등을 설치하려고 할 때 갖고 있는 등을 선수 창고에서 꺼내거나, 다 사용한 후 다시 선수 창고로 수납하려 할 때 쓰이는 도르래를 장치하게 되어 있는 철제 기둥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