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식사 시간이라지만

서로 간에 남을 배려할 수 있는 시간 되기를 바라면서

by 전희태


SNB10008.JPG 드골공항에서 환승을 기다리며 한끼를 때우던 모습-이런 끼니도 있지만...

집을 떠나 바다 위에서 승선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네 선원들은 <한 솥 밥을 먹는다.>는 말이 자연스레 통하는 형편으로 매일을 시작하고 또 끝내는 좀은 특별한 생활인-직업인이다.


하루 삼시 세 때의 끼니를 따뜻한 밥을 해서 같이 나누는 식사 관습은 생판 남이었지만, 한길 철판 밑이 지옥일 수도 있는 환경마저 같이 공유하는 운명 공동체로서 살아야 하는 때문에, 어떤 때는 가족 이상으로 가깝게 지내는 정을 나누며 사는 것 역시 당연한 일로 여기는 생활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배가 제아무리 크다 해도 한정된 공간이며, 그런 곳을 생활의 터전으로 삼고 있으니, 끼니때뿐만이 아니라 선상의 생활 자체가 뒤섞인 삶이니, 가족보다도 더욱 많은 시간을 같이 복 닦이며 살다 보니 어떤 때는 불편함 역시 그만큼 증폭되기도 한다.

그러니 즐거우려면 한없이 즐거울 수도 있지만, 지루하고 불편하려면 또 그만큼 힘든 시간도 될 수 있는 게 선상 생활이다.


아주 가까운 가족 간에도 갈등이 있는 건데, 사실은 생판 남인 동료들 간에 아무런 일이 없으라고 기대하는 건 좀 무리한 일이랄 수도 있는 건데, 배에서 이런 소소한 선내 분위기를 제일 먼저 감지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식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같이 앉아 식사를 하고 싶은 사람도 있는 반면에, 식사시간에 얼굴 마주 보는 것이 아주 싫어 기피하고 싶은 사람 이야기도 들려오는 다른 이들의 소식에 종종 묻어오기도 한다.

그런 정도로 마음이 힘들었던 것은 아니라 해도, 오늘의 점심식사는 문제가 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아침 기상에는 참여하지 않아 방문을 닫아 놓은 채 기척을 안 하고 끼니도 거르더니, 점심식사 때에는 잠자리에서 방금 일어난 부스스한 얼굴을 한 채 제멋대로 뻗친 봉두난발(蓬頭亂髮)의 모습으로 윗도리의 단추도 제대로 잠그지 않은 남방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슬리퍼까지 질질 끌며 식당에 나타난 동료가 있은 것이다.


물론 공식적인 항해에 관한 일과를 빼놓고는, 모든 일과가 휴무인 휴일이므로, 어느 정도 편한 복장이야 말릴 수 없는 상황이라 하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예의는 차려야 할 건데 그게 많이 모자라 보이는 모습이었다.


차려 다 주는 음식을 받아 한마디 말도 없이 열심히 꾸역꾸역 입에 담듯이 식사를 끝내고는 숟가락 놓기가 바쁘게 금방 이쑤시개를 꺼내 들어 이를 쑤신다.


마지막 치아 사이에 있던 것을 뽑아내어 만족한 듯 우물거려 씹어 삼키며 이쑤시개는 음식 먹고 난 그릇의 남은 잔반 위에 꽂아 버린다. 그 정도로서 앞에 앉아 보기가 좀 민망했던 일들이 끝이 나는가? 고대하고 있는데, 우물거리던 입안에 불편한 무엇이 더 남아있는 듯, 아마도 치아 사이에 음식 찌꺼기가 끼인 것이 또 있었던 모양이다.


그 버렸던 이쑤시개를 다시 찾아내어 잠시 살펴보더니 역시 잔반에 버려 놓은 종이 냅킨에다가 쓰윽~쓱 문지르더니 그대로 입안에 넣어 다시 치아 사이를 쑤셔대기 시작한다.


식탁에 나타나서 그렇게 식사가 끝날 때까지의 시간이 고작 10분 정도 걸렸을까? 그동안 나는 먼저 와서 식사를 하고 있던 중, 그의 식사하는 모습을 중계방송이라도 하는 양 수시로 살피며 먹다 보니 나중에는 별로 식사하고픈 마음마저 멀어져서 그냥 수저를 놓게 되었다.


사람들이 세상살이를 하면서 친한 사이일지라도 보이지 말아야 하는-아니 친한 사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할 광경에, 자고 난 후 손질하지 않은 끄시시 한 모습과, 큰 것을 배설하는 모습이 들어있다는 이야기를 돌아가신 아버님으로부터 교육적으로 들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참 곤혹스러운 광경이었다.


진짜 자고 난 이불이나 제대로 걷어 놓고 나왔을까를 의심 나게 하는 모습으로 식탁에 앉은 사람을 보니 입맛이 싹 가시며 혹시 나는 저런 모습으로 같은 식탁의 다른 사람들에게 실례한 적은 없는가를 새삼 뒤돌아보게 한다.


예전에 어떤 배의 선장님은 식사가 끝난 후 아직 다른 사람들이 식사하고 있는 와중에 코딱지를 후벼 파서 손가락 끝으로 튕겨내는 재주를 부려서 앞에서 식사하던 사람들에게 울분(?)을 가지게 했다더니, 세상에는 이렇게 식사하는 모습이 제멋 대로인 몰상식한 사람들이 생각보다는 많이 있는 것 같아 보여 곤혹스럽다.


무신경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아니라면 이기주의의 극치를 달리기에 남을 배려할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어서 그런 것일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식해서 그런 것일까?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고 잠시 눈길을 돌리고 있는데, 아뿔싸 이번에는 끄-윽! 하고 신나는 트림까지 뱉어 내고 있다.


어 휴! 절대 미워하지는 말아 야지 다짐은 하지만 더 이상 그곳에 앉아 있다 가는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다는 생각조차 들어,

-먼저 실례합니다.

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사실 힘이 좀 들더라도 그 일의 고쳐주어야 할 점을 당사자에게 이야기해주는 게 참된 순서겠지만, 그리하려면 번거롭게 시간도 빼앗기고, 상대의 기분도 망치게 할 수가 있으므로 나는 싫은 내색도 안 하고 그냥 못 본 채 넘기며 빠져나온 것이다.


그런 우유부단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내가 어쩌면 더 나쁜 사람이거나 못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남에게 싫은 소리는 하기 싫어하는 성질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있는 나는, 결국 양약고구(良藥苦口) 충언역이(忠言逆耳)라는 좋은 말씀을 그대로 따르지 못하는 조금은 용맹 없는 사람이 아닐헌지...


그도 저도 아니라면 이야기는커녕 아예 보는 것조차 역겨운 상태로 그 사람을 싫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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