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한 걱정들

입항을 앞두고 드는 직업이 낳은 이런저런 걱정거리들

by 전희태
황천-04.JPG 파도에 기우뚱거리는 선체

일주일 전부터 본선의 이티에이(ETA)(*1)가 29일 12시면, 2-4일 정도의 접안 전 대기가 예상된다는 연락을 계속해서 대리점으로부터 받고 있다. 그 보다 더 빠르게 도착 해 보려고 시도는 하지만 그리 쉽게 내 뜻대로 되는 일은 아닌 것. 오히려 14시로 두 시간 늦어지게 된 예상으로 다시 전보를 보낸다. 우리도 늦어지는데 다른 경쟁선 들도 늦어지는 경우가 생기겠지 기대하며 열심히 달리고 있는 중인데 우리 앞에 커다란 BULKER(*2) 한 척이 나타난다.


대양에서의 항해 중에 본선의 선수 앞쪽에 나타나는 배는 서로 지나치는 배가 아니라면 따라 잡히는 배이니 저 배도 틀림없이 우리 배 한데 떨어지는 배라고 단정 지으며 자세히 살피니 차츰 가까워지기 시작하는데 선미부터 먼저 보이니 틀림없이 떨어지려고 나타난 배가 맞다. 내일이면 입항인데 한 척을 젖히며 앞섰으니 그 만큼 접안 예정 시간이 단축 될 것이라 믿어지어 기쁘게 생각하는데 같은 방향에서 또 다른 배가 발견된다. 역시 BULKER이고 지금 이 코스, 이 항로면 리차드베이 기항이 거의 맞으니 또 한 척 따라낼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러나 이렇듯 늘 다니던 곳이라도 장기 항해를 마무리 짓게 되는 마지막 하루 이틀 전부터는 불안감 같기도 하고 소소한 걱정인 것도 같은 초조한 마음씀씀이가 생기며, 닥쳐올 모든 일에 대해서 좀은 과도한 신경이 쓰이는 경향이 들면서 괜스레 마음이 분주해지곤 한다.


무엇 때문에 그럴까? 곰곰이 따지며 챙겨보지만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냥 불안하여 어딘가 준비가 모자라는 것 같은 초조한 마음마저 드는 것이다. 오늘도 리차드베이 도착 하루 전이니 그런 마음 경향이 슬그머니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너무 그런 기분에 휩쓸려 우울해지지 말고 왜 그런 분위기에 빠져드는 건지를 조목별로 한번 꼼꼼히 되짚어 보기로 작정하고 항목별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본다.


*항해를 끝내고 항구에 도착하면 어떤 일부터 준비 하는가? :

1. 당항의 본선 대리점과 연락.

2. 당해 항만당국과의 연락

3. 부두에 접안 또는 정박지에 투묘 대기여부

4. 접안이냐! 투묘냐! 양쪽 중에 정해진 방향을 따라 각부서별 입항 사전 준비에 만전을 기할 것.


*투묘지에 대한 불안감? :

1. 그 항만에 대한 제반 정보를 다시 검토해 보고 정박 중인 선박들의 위치를 고려하여 투묘지를 예정하고 도착하면 포트컨트롤에 물어서 그 지시에 따라 최종 결정하면 되는거지.


*도선사 승선 준비는? :

1. 헬리콥터나 도선선의 도착 전 까지 쿠묘 준비나 발묘를 완료하고 항진하면서 승선 시킬 준비를 할 것.


*도선사의 조선에 불안감을 가졌나? :

1. 도선사를 잘 감시 감독하며 상황에 따라 즉시 대처토록 준비하고 입항 할 거야.


*접안 후 수속관계에 미비점이 있나? :

1. 모든 서류는 정확히 준비하고 관리에 대한 접대 및 협조를 잘 하도록 사전 준비 시킬 거야.

*잠깐 여기서 막연히 수속하는 관리 중 세관 관리에 대한 공포(?)증 같은 심경이 노출된다.


처음으로 배를 탔던 60년대 중반, 세관원에 대한 이미지는 어딘가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의 약점을 잡아 물건이나 영치시켜서 금전적인 괴로움을 끼친다는 거부반응이 우선되는 존재로 뇌리에 입력되어 왔었다. 물론 그런 부정적인 행태가 이제는 많이 개선되어 거의 없어졌지만 아직도 초창기에 입력된 그런 생각을 철저히 배제하기 어려운 눈치로 보건 데 그런 관행이 100% 완전히 근절된 상태는 아닌 것도 같다.


하여간에 앞으로 닥쳐 올 있을지 모르는 어려움에 대하여 미리 겁을 집어먹거나 또는 일을 당하여 힘들 것을 사전에 걱정하는 식의 생활을 할 게 아니라 어떤 일이 닥쳐도 순리로 해결할 수 있게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두는 식으로 일 처리는 마무리 해야겠다. 사실 요사이 수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PSC(*3)의 어려움이나 고충을 막연히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PSC에서는 이런 일을 주로 보니 이렇게 저렇게 대처 해야겠다는 식의 정확한 사전 방안을 강구하고 실행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아무런 조처도 사전 준비도 하지 않고 막연히 불안감에만 사로 잡혀있는 태도는 어쩌면 쓸데없는 긴장감- 스트레스-만 크게 하여, 즉 내 자신이 병에 걸리고 더하여 병을 키우는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입항이 가까워져서 6번 선창에 실린 발라스트 해수를 모두 퍼내고 항해 하려니 조그마한 옆 파도에도 기우뚱 대며 잦은 선체운동을 일으키어 힘들게는 하지만 속력은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다.


*1 ETA-Estimated Time of Arrival (예상 도착 시간)

*2 BULKER-살물선(撒物船) : 석탄, 철광석, 시멘트, 곡물 등의 단일품종 대량 화물을 포장 없이 그대로 선창에 실어 나르도록 만들어진 화물선, 원유등 기름만을 싣게 만든 선박은 TANKER(유조선)로 호칭함.

*3 PSC: Port State Control (항만국 통제)-유류나 폐기물 등으로 발생되는 오염을 방지하여 지구 환경보호와 선박 안전의 확보를 위해 선박의 기국과 관계없이 기항한 항구를 관할하는 국가의 관해관청에서 그 선박의 제반 사항을 검사, 통제 하도록 유엔에서 결정한 제도로 각국은 검사관을 양성하여 선박의 적정증서, 선체, 선원에 대한 검사를 기항한 선박별로 엄격히 시행하고 있다.


(1996년 11 월 28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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