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생각하던 어느 날
BOGASARI DUA
그런 알파벳으로 이름자를 새긴 상선이 호주 연안을 바짝 붙어서 남하해 오고 있다.
크레인을 네 대 장착하고 5개의 홀드(선창)를 가진 원목도 싣고 일반 화물도 실을 수 있는 핸디사이즈(주*1)의 다목적선이다.
이름으로 봐선 어느 나라의 배인지 도저히 알 길이 없어 옆을 지나쳐 갈 때 그 배의 꽁무니 쪽을 유심히 살폈다.
통상 배들은 선미에 선적항의 이름을 적어 놓고 있어서 그를 확인하면 좀 더 그 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적항 란에 JAKARTA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쓰여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저 이름은?
당장에 인도네시아 배라는 정보를 찾아 내게 되었다.
그러니 저 단어는 인도네시아 말이겠고, 앞의 BOGASARI의 뜻은 모르겠지만, 뒤에 있는 DUA는 문득 사뚜, 두아, 띠가~ 하며 한때 인도네시아에서 원목을 실어 나르던 시절에 그들의 숫자를 하나, 둘, 셋~ 하고 셈을 헤아리며 배우던 기억을 되살리게 하여, 둘이라는 뜻이 맞겠다는 잠정적인 결정을 내게 한다.
그렇다면 <무슨무슨 2호>랄까? 아니면 <뭐뭐 두 번째>라는 뜻이겠지.
누구 인도네시아어를 잘 아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속 시원히 그 뜻을 밝혀주련만.....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여 다시금 인연의 고리를 벗어나 슬금슬금 뒷걸음질 쳐 가는 그 배를 쌍안경까지 동원하여 관찰한 후, 잠시 생각에 빠지며 내어 본 결론이다.
그렇게 무료하게 브리지에서 지내고 있는데 정오 위치 보고를 내려고 통신실로 내려갔던 2 항사가 현대 그룹의 정주영 왕회장이 돌아가셨다는 빅뉴스를 가지고 돌아왔다.
매스컴이나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인구에 회자되는 단순한 이야깃거리를 떠나 우선 죽은 자에 대한 예의를 차려 경건한 마음으로 망자에 대한 묵념을 마음 가운데 차려본다.
그분 정도가 되니 이야깃거리라도 되어 얼마간은 소문을 타겠지만, 그분이 살아생전 그렇게 알뜰살뜰하게 이루었던 부의 축적에서, 작은 한 보따리 조차 짊어지고 가지도 못했을 거고, 그러다가 세월마저 흘러 버리면, 모두가 그에 따라 잊히게 되는 것.
그런 것이 인생이란 생각을 하게 되니, 空手來空手去가 입안을 맴도는 하루가 종일 내 곁을 지키고 있는 기분이 든다.
주*1 : 통상적으로 운용하기가 쉬운 2~4만 톤 급 크기의 선박으로, 일정한 항로에 구애됨이 없이 운항이 가능한 쓰임새가 가장 높은 사이즈의 선박 형을 일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