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은 즉시 해결하라.
선박을 부두에 접, 이안을 시킬 때 주로 이용하는 윙 브리지는 특히 접안 시 부두와의 거리등을 감안할 수 있도록 본선의 길이를 윙 브리지 외벽 내부에 그려 넣어주어 도선사들도 즉시 참고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사진의 십자 표지의 중앙 위치에서 앞쪽 선수 끝까지 245.25미터, 뒤쪽 선미 끝단까지는 41.6미터라는 뜻임.
오늘따라 새벽 모습이 여느 때와 달리 어둠이 짙은 것 같아, 깜깜함에 빨리 익혀지기 위한 예비 운동을 위해 브리지로 올라간다.
모든 구조물의 위치를 휑하니 꿰뚫고 있는 윙 브리지를 돌면서 눈을 어둠에 익힌 후 주갑판으로 내려가려고 작정한 것이다.
서너 순배 양현의 윙 브리지를 오가며 눈이 완전히 어둠에 동화되었다고 느껴졌을 때, 주갑판으로 내려가 본격적인 운동에 돌입하며 열 바퀴 정도를 돌고 나니 어둠이 슬슬 깨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열심히 도는 숫자를 헤아리며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걷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을 파고드는 생각 하나가 있어서 결국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지금 올라가고 있는 항로의 침로 선상에 얕은 곳이 있다고 빨간 색연필로 동그랗게 표시해둔 곳이 해도상에 있는데, 그곳의 수심이 갑자기 의심스러워지면서 다시 한번 확인해야겠다는 심증이 드니 그대로 운동을 계속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운동을 중단하고 실내로 들어서서 전화기가 있는 공용실을 찾아들어 브리지로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아! 나 선장인데, 지금 올라가고 있는 침로 선상에 빨간 색연필로 표시해 둔 곳의 수심을 다시 한번 확인하여 위험하다면 피해 가도록 해.
전화를 받아 드는 일항사에게 바쁘게 지시를 했다.
-예, 저도 미심쩍어 다시 한 번 확인했었는데요. 얕은 곳의 수심 숫자가 13인데 미터가 아니고 패덤(Fathom 주*1)입니다.
-그렇지?, 그래도 다시 한번 확인하도록 해 봐.
하는 말로 전화를 끊고 원래의 운동으로 복귀하였다.
13 미터라 해도 현재 우리 배의 흘수 보다 큰 숫자이고, 게다가 잔잔한 날씨이니 더욱 안심이 되는 수심이다. 그래도 산호 등의 활동으로 수심이 줄어들 수도 있으니 하는 생각에까지 미쳤던 생각도 깊이의 단위가 패덤이라면 미터로 환산해도 거의 배에 가까운 숫자이니 걱정은 놓아도 될 듯싶다. 아니 기우였던 것이다.
원래 출항 전에 내 명령에 따라 항해 장인 2 항사가 설정하여 그려놓은 침로 선을 따라 확인하던 중 누군가 그곳을 검토하면서 붉은 색연필로 위험 표지를 해 놓은 걸 보고 물어보기도 했었다.
당시 2 항사의 말이 수심을 걱정할 상황은 아니라는 보고를 믿고서 끝까지 확인하지 않고 그냥 슬쩍 지나쳤던 기억이 운동 중 문득 떠올라 혹시 제대로 보지 않고 넘겼던 그 일로 인해 나중에 큰 일을 당하는 수도 있겠다는 강박관념에 쫓기게 되어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안전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이런 확인이 꼭 필요한 것이기에 헛걸음이나 헛일을 했다는 생각은 없고 잘했다는 그래서 마음도 편하게 되었다는 쪽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정확하게 20시에 그래드스톤 정박지에 도착 투묘하였다. 먼저 와서 기다리는 배는 모두 6척이었고 그중 한 척은 우리가 도착할 때 닻을 뽑아 들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주*1 패덤(Fathom) : 길이의 한 단위로 미터 시스템으로는 1미터 83센티, 즉 6피트를 말하며 우리나라 단위로는 깊이를 나타내는 길로 표시되어 수심이 한길 두길 하는 식으로 쓰임.